<여행의 공간>
일본의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우라 가즈야는 풋내기 건축가 시절이던 1978년 첫 해외여행으로 뉴욕 유엔본부 앞에 있는 유명 호텔에 묵게 된다. 이 호텔은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 미국 건축가이자 건축가에게 영예로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케빈 로체(Kevin Roche)가 설계한 호텔이었다. 우라 가즈야는 이 호텔에서 첫 출장의 밤을 보내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하게 된다.
건축가는 호텔을 어떻게 지었을까 궁금해 자기가 묵게 된 게스트룸의 모든 부분을 줄자로 측량하고, 평면도로 그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만들기 시작한 평면도(1/50)가 조금씩 쌓이자 그림물감으로 색을 입히고, 설비, 가구, 기구, 비품까지 조사하고 양탄자 털끝을 자르거나 천장까지 검사한다. 끝내는 자료를 늘리기 위해 하룻밤에 호텔 두 곳을 머무르거나 한 호텔에 연이어 묵는 경우에는 방을 바꾸는 등 호텔룸 기록을 늘리기 위해 열을 올리게 된다. 심지어 신혼 첫날밤에 아내에게 줄자 끝을 잡아달라고 했다니. 아내가 동종업계였기에 망정이지…
호텔 체크인을 하면 방에 있는 어느 것이라도 건드리기 전에 깨끗한 상태애서 사진을 찍고 실내를 측량한 뒤, 게스트룸에 비치된 편지지에 1/50으로 그리고 색을 입힌다. 이렇게 1시간 반에서 2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제서야 욕실을 쓰고, 옷을 갈아입고, 바에 가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26년에 걸쳐 20여개 국 120개 호텔의 실측도가 쌓였고, 이를 모아 낸 책이 <여행의 공간>(북노마드, 2012) 1권과 2권이다.
이 책으로부터 배운 호텔 디자인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
1. 호텔방의 문은 대개 원칙적으로 안으로 열린다. 몸으로 부딪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영화 장면을 생각해보면 된다. 건축가들은 “오른손은 밀고, 왼손은 잡아당겨라”고 말한다고. 오른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고, 안에서 열어줄 때는 왼손으로 당겨 열어야 오른손으로 악수하기가 좋다고 한다. 호텔방에서 악수 나눌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마는…
2. 호텔 욕실에 있는 샤워부스는 안쪽으로 열리는게 좋을까, 바깥으로 열리는게 좋을까? 뇌졸중 등으로 쓰러지는 사람을 고려해 밖으로 열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3. 호텔 욕실에서 배수 구멍을 디자인할 때에는 반지가 빠지지 않는 정도로 한다고.
4. 건축가가 보는 호텔의 미래는 욕실이 전체 공간에 녹아든다고… 요즘 침실과 욕실 사이에 창문이 있어 경계가 과거에 비해 허물어졌는데, 앞으로는 욕실, 거실 구역구분이 힘들 정도로 하나로 통합될 것 같은 예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요즘 효리네 민박집을 보면 2층 침실에 욕조와 침대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이 욕실의 일부가 방에 녹아들어 있다.
‘호텔탐험가’를 자처하는 우라 가즈야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릎을 친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는 요즘처럼 사진을 일상에서 흔하게 찍게 되면서 오히려 우리가 잘 볼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연을 보기보다는 공연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으며 정작 공연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 특별히 나중에 보지도 않을 것이면서 일단 찍고 보는 우리들. 사진 기록에 비해 스케치는 눈과 머리, 손을 사용, 몸을 쓰게 되므로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나도 종종 스케치를 하게 되면 사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상물을 상세하게 보게 된다. 이 책을 보고 내게 남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오히려 내가 주변의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 또 하나는 역시 무엇이든 끝까지 지속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 나는 무엇에 집요함을 발휘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