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1호
금문교도, 케이블카도 아니다. 나에게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은 작은 독립 서점. 차이나타운의 한자 가득한 붉은 간판을 해치며 걷다 보면 노스 비치 한쪽, 컬럼부스 에비뉴에서 만나는 ‘시티 라이츠(City Lights Bookstore)’이다. 미국에서 최초로 페이퍼백만 파는 서점으로 1953년 그 자신도 시인인 로렌스 팰런게티(Lawrence Ferlinghetti)가 문을 열었고 출판사도 겸하며 지난 65년 간 200여 권이 넘는 책을 냈다.
1955년 앨란 긴스버그의 시집 <Howl>을 펴내 외설죄 논쟁이 벌어졌고 재판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 잭 케루악과 윌리엄 버로우즈 같은 작가들이 함께 화제가 되며 기존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비트 세대가 관심의 중심에 놓였다. 아마도 미국 역사상 문학이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기 있는 사회운동이 된 경우라 할 수 않을까.
1층은 소설과 문학 분야 책이 지하층에는 많고 정치, 이민자, 소수인권, 예술과 어린이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2층은 이 서점의 상징인 ‘The Poetry Room’인데 30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규모에서 신간 발표회, 저자와 대화 등 행사가 열린다. 케루악과 버로우즈의 저서로 가득한 ‘비트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각 층 귀퉁이 곳곳에 놓은 의자에 앉아 종일 책을 읽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아니, ‘Have a seat, read a book’이라는 안내문으로 독서를 장려한다. 세상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책들 중 엄정하게 고른 책들로 서가를 꾸렸기에 한 권 한 권 확인하는 즐거움이 크다. 이곳 스탭은 책이 꽂혀있는 위치뿐 아닌, 책에 대한 추천과 상의가 가능한 사람들이다. 덜 바쁘고 시간 여유가 있다면 계속해서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려 할 것이다. 독서욕과 지식욕에 불을 당기는 분위기의 서점, 아니 자신들이 붙여 놀은 문구처럼 ‘책을 팔기도 하는 도서관(A kind of library where books are sold)’이다.
독립출판과 진보적 사상의 수호자로 미국의 양심과 지성에 큰 영향을 행사한 곳이니 정치적, 사회적 참여는 이 서점의 존재 이유기도 하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입지를 활용해 2000년부터는 건물 전면에 5개 패널로 ‘Storefront Banner’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금은 트럼프 당선 후 이민자 규제의 문제를 제기하는 배너를 내걸었다. “당신 지역사회의 이민자들에게 귀를 기울여 보라. 그들은 왜, 어떻게 여기 있게 되었는가.”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창 진행되어서 새로 생긴 주위 세련된 카페와 바에는 맥북을 든 손님들이 가득하다. 오래된 클럽과 토플리스 바와 타투숍은 관광객 사진 배경이 되었고 낡은 비트 뮤지엄만 쓸쓸하게 과거를 기록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문학사에나 남아있는 비트 세대의 시와 소설이지만 몇몇 독서광, 문학 애호가, 아직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은 사회운동가와 ‘그 유명한 비트닉’에 호기심을 느끼는 몇몇 관광객이 설레는 마음으로 서점 문을 연다. 반스 앤 노블도, 보더스도 사라져 버렸지만 시티 라이츠는 살아남았고 위엄을 잃지 않았다. 여전히 ‘작가와 시인과 급진적인 사상가들이 세상을 더 낫게 바꿀 수 있다’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261 Columbus A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