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즈한남의 ‘스틸북스’
동네서점은 찾아볼 수 없고 한동안 많이 생겼던 작은 독립서점들은 운영난 때문에 문을 닫고 있다. 대형서점은 원하는 책을 발견하려면 너무 긴 시간이 들고 인터넷쇼핑은 내가 뭘 찾는지 모를 때에는 혼란스러우며 작은 서점은 보유한 책이 너무 적고. 그래서 ‘관점있는 중형서점’을 내세운 사운즈한남의 ‘스틸북스(Still Books)’ 오픈이 반갑다.
레시던스와 레스토랑, 갤러리와 꽃집, 카페와 편의점 등을 단지로 엮은 사운즈한남의 건물 4개층을 통째로 쓰는 120평 규모의 이 서점은 7월 1일부터 개장이다. 브랜드 전문잡지 ‘매거진B’와 식문화 전문지 ‘매거진F’를 발행하는 JOH에서 기획하고 운영한다. 가오픈 기간이라 운영시간이 짧았지만 궁금해서 서둘러 가보았다. 1층은 <매거진 B>를 비롯해 다양한 독립잡지가 진열되어 있다. 사람들이 여전히 잡지를 사랑해주길 바라며 솔선수범하는 의미에서 잔뜩 잡지 구매.
2층은 생활과 일, 3층은 예술과 디자인, 4층은 사유와 사람에 관한 책들로 큐레이션했다. 각 층은 꽤 넓고 쾌적하다. 곳곳에 문구와 생활용품이 적절히, 지나치지 않은 정도로 함께 놓여있다. 각 주제, 층을 담당하는 큐레이터들이 수많은 책 중 의미있고 추천할 만한 책을 고른다는데 지금까지 보았던 그저그런 큐레이션에서 한발 더 나아간 느낌. 환경, 음악, 페미니즘, 소설, 디자인 등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많아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오픈을 맞아 첫번째 큐레이션 주제는 음식, ‘A Meal of Book’. 이미 집에 사놓고 안읽은 책이 잔뜩인데 여기서도 책을 엄청나게 사들였다. 남의 개업식에 와서 빈손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이 비싼 땅과 건물에 이렇게 큰 서점을 열면 처음엔 구경 오는 사람들로 소셜미디어에 소개되고 화제가 되겠지만 ‘오픈발’이 끝난 후에는 어떻게 될까. “서점 매출을 크게 기대하는 건 아니고 이 서점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기대한다”는 말에 좀 슬퍼졌다. 임대료에, 인건비에, 매장꾸미고 책 사들이는 비용을 고려하면 책을 파는 돈으로 운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쇼핑몰이나 호텔, 은행, 기업 사옥에 라이브러리나 서점을 들여놓는 것이 유행이다. 왜 이런 책을 이렇게 모았을까 잘 모르겠는 구성에, 가짜책을 장식으로 꽂아두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읽는 책’이 아닌 ‘보이고 꾸미는 수단인 책’의 시대가 된 것 같다.
일본의 츠타야를 보고 온 사람들이 많아지며 그것이 서점의 유일한 미래인 듯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든 서점이 츠타야처럼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되지 않을까. 근사한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팬시상품으로 책을 판다면 무겁고 지루하고 투박하지만 의미있는 책들은 자리를 잃게 된다. 디자인이 별로여서, 트렌디하지 않은 주제여서, 제3세계 작가의 작품이어서 서가에 꽂히지도 못하는 좋은 책들은 어떻게 할까. 이제 시작하는 스틸북스가 ‘서울의 츠타야’가 아닌, 뭔가 특별하고 의미있는 서점이 되었으면 좋을텐데 세련되게 잘 만들어 놓은 공간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사고 회원가입을 하고 기념으로 서표를 몇 장 얻고 종이봉투 두 개 가득 책을 담아나오는 길. 다른 대상과 다른 공간이 줄 수 없는 종이책과 서점 특유의 여유와 긴장과 설렘이 집에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니 책, 그래서 책, 여전히 책이다.
용산구 대사관로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