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Pause’
27박 28일의 휴가를 시작하면서(아내는 주말 포함 달랑 3박 4일의 휴가이지만) 전주에 내려왔다. 올 상반기는 유난히 프로젝트가 많아 정신없이 보냈다. 휴가 전날까지 워크샵을 한 후 모처럼 긴 휴식에 들어갔다. 원래는 아내 안식월 휴가로 한달간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했는데 갑작스런 아내 직장 사정으로 항공사와 호텔에 패널티까지 물어가며 모두 취소를 해야했다. ㅠㅠ 어쩔 수 없이 이번 휴가는 책읽고 밀린 번역하고 목공소에서 지낼 예정이다.
지난번 출장와서 동료의 소개로 갔었던 가맥(가게 맥주의 줄임말) 전일슈퍼에서 갑오징어와 황태포에 맥주 한 병하고는 전북대 근처에 있는 서점 북스포즈(Books Pause)에 들렀다. 이 곳은 사업상 협력관계인 소셜프레임 전상민, 성재민 대표가 고향인 전주에 연 아담하고 조용한 서점이다. 아내와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사고 시원한 아이스라떼를 시켜 편안한 소파에 앉아 두 시간 정도 읽었다.
아무말 없이 책을 한 시간쯤 읽었을 때 문득 이게 쉬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가 쉰다는 느낌을 주었다. 학부시절 중국철학 시간에 ‘진정한 쉼은 혀가 쉬는 것’이란 말을 들었는데(그래서 ‘쉴 게憩’ 자에 ‘ 혀 설舌’자가 들어간다는 말도) 북스포즈에는 몇 사람이 앉아 각자 자기 책을 읽을 뿐 주위가 온통 조용했다. 책읽기에 방해되지 않는 음악이 나지막히 흘러나왔다. 서울에서처럼 전화기를 연신 들여다 볼 필요도 없었다.
모든 분야에 걸쳐 엄청나게 많은 책 대신 신경 써서 고른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책방. 소설, 인문, 자연과학 등 천편일률적인 구분이 아니라 ‘다른 생각/다른 시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전주’ ‘여름휴가N 책 속으로 풍덩’ 등 그때그때 적절한 주제에 따라 책을 소개한다. 편안한 공간에 친절한 스탭이 사려 깊게 도움과 조언을 더해주니 전주를 찾은 이방인인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휴식이 되었는지 고마운 마음이었다. 전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전동성당과 북스포즈라고 하면 과장일까. 30대 젊은 사업가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이 서점이 전주에서 오래오래 잘 버텨주기를 바라며 신경 써 고른 책 8권을 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서점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