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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Mar 11. 2019

“Boys Be Ambitious”의 탄생지

홋카이도 대학교


여행 가면 일정의 중심은 레스토랑과 바(Bar)다. 그 와중에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시장과 서점, 대학교. 삿포로에서도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요리책을 몇 권 사고 시내에 있는 홋카이도대학 캠퍼스 구경에 나섰다. 홋카이도 대학은 세상 많은 캠퍼스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은 멋지지만 지나친 자부심이 부담스럽고 서울에 있는 대학은 건물들이 잔뜩 들어서 답답하고 상업화된 느낌이다. 거기에 비해 홋카이도대학은 뭐랄까, 넓고 시원하고 수수하고 소박하다. 우리가 ‘학교’에 대해 갖고 있는 오래 전 로망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876년 농학교로 시작해 지금은 국립대가 되었는데 지역적인 특성상 농학, 임학, 수산학 등이 유명하다. 개교 초기에 홋카이도 농학교에 부임했던 미국 출신의 윌리엄 클라크 교수가 제자들에게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남기고 귀국했는데 이 말은 지금 홋카이도대학의 교훈이란다. 성문영어책에도 나와서 익숙한 말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 공부하며 “야망은 개뿔, 이 지겨운 수험생 시절만 끝나면 소원이 없겠다” 했는데 끝나고 다니 또 다른 고생문이 열리더구만…


정문을 지나면 바로 인포메이션 센터가 나온다. 이곳의 스타는 단연코 클라크 박사. 와인에도 초컬릿에도 그의 얼굴이 가득하다. 이어서 펼쳐지는 넓은 잔디밭. 이 풍경 때문에 이 학교를 좋아한다. 숲속에 있는 듯 공기가 맑다. ‘대학 마르쉐’에서 농대생들이 만든 우유와 햄, ‘홋카이도대학 산’ 감자와 사과, 아이스크림을 구경하고(물론 먹기도 하고)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다녔다. 크고 작은 건물 옆에 농장과 꽃밭이 있다. 홋카이도 대학의 최고 명소는 길게 이어진 포플러 길인데 10여 년 전 엄청난 태풍으로 나무들이 많이 쓰러져 지금도 생태 회복을 위해 통행을 막고 중간쯤에 잠깐 분위기를 맛볼 수 있게 통로를 열어놓았다.


15년만에 다시 와보니 볼이 발그레한 학생들이 바쁘게 오가는 모습에 기분이 묘했다. 나는 저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을까. 다시 저 시절로 돌아가면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돌아간들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미래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게 될까. 스스로를 반성하다 우리의 젊음은 그냥 아무 것도 모르고 흥청망청 탕진하고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는 시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힘든, ‘탕진’이 사치가 된 요즘 대학생들 생각이 나서 이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모든 것이 미안해졌다. 클라크 박사도 살아있다면 이 친구들에게 황무지를 개척하고 모험을 하고 야망을 가지라고 말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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