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시센도
케이분샤에서 나와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엔코지와 만슈인 등 아름다운 절이 많다. 오늘의 목적지는 시센도(詩仙堂). 작고 예쁜 문을 지나면 도쿠가와 정권의 무장이자 시인이었던 이사카와 조잔(石川丈山)이 은거하던 아름다운 산장이자 불당이 나온다. 중국의 36시선(詩仙)의 상을 사방의 벽에 걸어 놓은 방이 있어서 시센도라고 불린다.
일본의 사찰에서 아쉬운 것은 부처님을 불상으로 직접 뵐 수 없다는 것. 사진을 대신해 절을 하고 주실인 시센노마에 앉았다. 나무로 된 건물틀이 풍경을 담는 프레임 역할을 하는 것을 ‘액자 정원’이라 하는데 시센도 주실은 일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액자 정원 중 하나로 꼽힌다. 오래 전 이곳을 방문했던 다이애나 비와 찰스왕세자 사진이 붙어있는데 사진 속 모습도 서먹하다…
단정한 정원에는 등나무와 단풍나무를 심었고 작은 연못과 폭포도 자리한다. 대나무 마디에 물이 채워지면 바위를 치며 소리를 내는 ‘시시오도시’ 소리가 고요한 풍경 속에 울려퍼진다. 무사직을 떠난 조잔은 이곳에서 살다 90세에 세상을 떠났다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시를 쓰고 서예를 연습하고 차를 즐기면 누구라도 무병장수할 것 같다. 모처럼 아무 생각 없이 호젓하게 경치를 오래 구경했다. 에이칸도, 조잣코지와 더불어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인데 정작 단풍철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려우니 역시 인생이란 무얼 하나 얻으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