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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은 무료, 기부는 환영!’

런던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대부분이 무료 입장

by HER Report

이번 런던 여행을 다니며 원 없이 미술관과 박물관 구경을 했다. 그 와중에 놀랐던 것은 국가와 시에서 운영하는 거의 대부분의 국박물관과 미술관에 ‘Admission Free’라고 붙어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대영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 등 몇 곳만 무료 입장이었는데 이젠 거의 모든 곳이 특별전시를 제외한 기본 상설 전시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가는 곳마다 사람이 붐볐다.


영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의 무료 입장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고 정부에 따라서 정책도 바뀌었는데 이전 보수당 정권에서는 유료 입장을 권했다. 이때도 대영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 테이트 모던 등의 몇몇 박물관과 미술관은 대중의 예술 향유를 위한 무료 입장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저항’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을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이사회를 구성해 운영을 하고 정부는 직접 운영에 개입을 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고 2001년 무료 입장이 마침내 실행되었다. 평균 20~30파운드 정도의 입장료는 경우에 따라서 부담스러운 비용일 것이다. ‘운 좋은 몇몇 사람이 아닌,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예술과 문화’를 목표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영국이 이 정책을 시작하고 유럽 다른 나라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된 이후 2008년 박물관과 미술관 무료 입장을 실시해 어떤 곳은 전부 무료 입장을, 또 어떤 곳은 요일을 정해 무료 입장을 실시했지만 6개월 만에 무위로 돌아갔다. 스웨덴 등 다른 유럽 국가 역시 마찬가지.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원이다. 갑자기 줄어든 입장료를 대체할 만한 대안이 없으니 고스란히 적자로 남고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영국도 시행 17년이 지난 지금 여러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입장료 수입이 사라지며 작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중에는 재정 문제로 문을 닫는 경우도 생기고 유료 입장으로 전환했다 관람객이 오지 않아(무료 입장 가능한 대형 미술관을 두고 굳이 돈을 내고 작은 곳을 찾을 이유가...) 난처해진 곳도 많다. 좋은 전시를 의해서는 그만큼 비용도 필요한데 예산 제약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입장료라는 장벽을 허물었다고 해도 다른 장애가 남아있다. 유료일 때보다 두 배 넘는 관람객들이 오고 있는데 이 숫자는 한 번도 안 와봤던 새로운 방문자들이 아닌, 기존 관람객의 중복 방문인 경우가 많다. 예술에 대한 관심과 지식의 부족과,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 관람객의 40%는 해외관광객이 차지하고 대영박물관의 경우는 60%에 달해서 정부 보조금의 혜택이 영국 시민이 아닌 해외 관광객들에게 활용된다는 지적에는 괜히 주춤했다. 무료 입장이 예술과 문화에 대한 접근을 넓혀주는 유일한 방법이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을 보는 일은 당연히 무료로 여기며 모차르트의 음악이나 셰익스피어의 연극 관람에는 무료 좌석을 요구하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막연히 ‘무료면 좋은 거 아냐?’ 하고 생각했는데 그 뒤에 이렇게 다양한 문제가 자리한 줄은...

그럼에도 영국은 입장료 무료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카페나 레스토랑, 상점 운영을 통해 수익 구조를 다양화하고 기업의 후원 유치에 적극적이다. 전시가 지나치게 상업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포기해야 할 것도 생긴다. 부자들은 컬렉션을 기증하거나 기부금을 낸다(예술품을 상속할 경우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니 차라리 컬렉션을 기증하는 편을 선택한다). 입장료를 무료화한 대신, 무료 배부하던 전시장 소개 자료는 1~2파운드에 판매한다. 관람객에게도 적극적인 기부를 요청해 입구 기부함 통에 ‘5파운드를 기부해달라’ ‘10파운드를 기부해달라’고 적어 놓았다(가능한 금액을 기부하라는 게 아니고 미술관마다 아예 금액을 구체적으로 써놓은 이유는 아직 나에겐 수수께끼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맞아준 것은 다양한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전시장을 안내해주고 궁금한 것에 답을 해주고,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 안에 세계 최초의 뮤지엄 카페가 있는데 그곳 갬블 룸에서 꼭 차 한 잔 마셔요.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하고 조언도 잊지 않는다. 무료 개방을 하면서 관람객이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스태프도 더 필요하지만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충원이 어려워서 부족한 부분을 자원봉사자들이 해결하고 있다고.

공평한 기회와 지속가능한 운영 사이의 고민은 어느 곳이든 이어진다. 모두를 위한 예술에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접하고 문화적 장벽을 낮추는 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찬성할 것이다. 나 역시도 찬성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 시간과 노력과 돈을 보탤 준비가 되어있을까. 이 질문에는 바로 대답이 안나온다. 난 역시 멀었다.

#her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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