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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Mar 15. 2019

‘겐로쿠엔’

일본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서 깊은 3대 정원 중에 한 곳


HER Travel_가나자와


이 지역의 옛 이름은 ‘가가(加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던 마에다 도시이에가 영주로 봉해져 이후 14대, 300여 년 간 마에다 가문의 후손들이 다스리며 ‘가가백만석’의 신화를 이어갔다. 오래전 NHK 대하드라마 <도시이에와 마츠>를 열심히 보았는데 그때의 기억이 가나자와 일대의 역사와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나름 도움이 된다. 역시 드라마에 빠져 산 보람이 있다!


가나자와의 중심이자 상징은 가나자와 성과 부속 정원인 겐로쿠엔이다. 2차 대전 때 미군의 공습을 겪지 않았고 크고 작은 지진도 피했던 덕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작고 평안한 도시. 흰색으로 빛나는 가나자와성은 몇 차례의 화재로 유실되고 가나자와 대학 캠퍼스로 사용되던 것을 학교 이전 후 복원하고 있다. 적의 공격을 대비해 나중에 총알로 쓸 수 있도록 납을 섞은 기와와 벽을 만들어 은회색이 난다고. 복원 과정을 공개하고 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형으로도 보여주고 있다.


성을 한 바퀴 둘러보고 겐로쿠엔으로 향했다. 오카야마(岡山)의 고라쿠엔(後樂園), 미토(水戶)의 가이라쿠엔(偕樂園)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서 깊은 3대 정원으로 불리는 곳이다. 가나자와에 3번 왔는데 묘하게 방문 시기가 1월 말에서 2월 초였다. 나에게는 눈이 쌓여있거나 녹기 시작할 때의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이 정원은 봄에는 매화, 여름의 녹음,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으로 사철 모두 아름답다고 한다. 겨울을 피해 오고 싶었는데 해산물은 겨울철이 가장 맛있으니…


‘겐로쿠엔’은 송나라 시인 이격비가 <난양명원기>에서 노래한 광대(宏大), 유수(幽邃), 인력(人力), 창고(蒼古), 수천(水泉), 조망(眺望)의 6가지 미덕을 겸한다는 말에서 지은 이름이다. 1676년 5대 영주 마에다 쓰나노리(前田綱紀)가 렌치정(蓮池亭)을 지어 그 정원을 렌지테이(蓮池庭)라고 불렀던 것이 시초이다. 연못을 한가운데 파고 그 주변을 걸으며 산책하는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치센카이유시키) 정원인데 겨울이면 폭설과 바람으로부터 나뭇가지가 잘라지지 않게 대나무와 새끼줄로 지지해주는 ‘유키즈리(雪吊り)’를 볼 수 있다. 눈이 많이 내리는 호쿠리쿠 지역 일대에서 볼 수 있는데 겐로쿠엔에는 오래되고 귀한 나무가 많은 덕에 유키즈리에도 더 신경을 써서 그 자체로 멋진 구경거리가 된다. 매년 11월 1일부터 시작해 한달 반 동안 작업이 이어지고 눈이 다 녹고 나면 철거한다. 가장 큰 소나무의 경우는 새끼줄이 800개까지 필요하다니 보통 일이 아닐 듯하다. 사실 가나자와는 눈보다 비가 더 많이 오는 곳이다. 오죽하면 이 동네 농담 중에 “도시락은 잊고 가더라도 우산은 꼭 챙겨 간다”는 말이 있을까.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도 내내 비가 오락가락. 다행히 너무 거세게 내리지 않고 금세 사그라드니 비가 오면 그런가 보다 하고 카페에 들어가 잠시 쉬며 지나가길 기다린다.


폭포에 매화 정원에 다실에… 산책하기 좋고 볼 것 많은 겐로쿠엔의 상징은 ‘고토지 등롱(고토지토로, ことじ灯篭)’. ‘고토지’는 거문고의 줄을 고르는 기러기발을 뜻하는데, 한쪽 다리가 부러져 있는 이 석등을 버리지 않고 돌에 걸쳐 놓은 것이 오히려 매력이 되었다고 한다. 관광객을 위한 무료 가이드 투어가 있으니 시간 넉넉히 잡고 투어를 따라 둘러보아도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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