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for thoughts; 교토 그랑벨호텔에서 마이코쇼를 보고]
교토 여행 중 기온에 있는 교토 그랑벨 호텔에 묵게 되었는데, 여행 가기 일주일 전쯤 호텔로부터 안내 메일이 왔다. 우리가 투숙하는 동안 교토 사람들도 보기 힘든 진짜 마이코쇼가 호텔 로비에서 열린다는 것이었다. 희귀한 기회라는 말에 궁금해 1인당 4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친구와 일찍 저녁을 먹고 로비에 만들어진 특별 무대 제일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이코'는 '게이샤'가 되기 위한 견습생을 뜻한다. 수년에 걸쳐 배운 전통 춤과 악기 연주를 들려주고 우리로 말하면 '쌀보리' 정도에 해당하는 간단한 일본 전통 게임도 보여주었다.
관객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는데,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마이코와 직접 질의 응답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통역과 사회는 어떤 질문도 좋다고 했고, 나는 손을 들고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첫 번째로 왜 마이코가 되고 싶었는지, 미래의 꿈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이에 대한 대답은 다소 싱거웠다. 일본의 전통 문화를 배우고 싶어 마이코가 되었고, 향후 꿈은 게이샤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로 개인 삶이 어느 정도 있는지 물었다. 참고로 이날 공연을 한 마이코는 4년 차로 이제 19살이었다. 그에 대한 답변에 나는 조금 불편한 마음이 되었다. 자유시간은 하루에 30분만 허용되며, 1년에 가족은 두 번 볼 수 있고(그 중에 한 번은 가족이 일터로 구경을 오는 것이었다), 한 달에 하루를 쉴 수 있다고 한다. 마이코 특유의 머리는 일주일에 한 번 미장원에 가서 힘들게 손질을 하는데, 머리가 망가지지 않게 높은 베개에서 자야 한다고. 남자 친구는 사귈 수 없으며, 결혼하면 직업을 그만두어야 한단다.
한국의 아이돌도 연애가 금지된 경우가 있는 것은 알고 있고, 마이코 역시 자기의 판단에 따라 직업의 자유를 행사한 것이라 믿지만, 15-20세의 젊은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노동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불편한 마음을 갖고 나는 친구에게 '지나친' 일반화를 했다. 미투 운동이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고, 일본의 성평등은 우리보다 뒤진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러자 친구는 최근 나온 성평등 지수를 살펴보라고 했다.
World Economic Forum에서 발행한 The Global Gender Gap Report 2018년판을 살펴보았다. 149개국 중 종합순위에서 한국은 115위였다. 이 순위를 보면서 나의 선입견이 얼마나 틀린 것인지를 깨달았다. 중국이 103위, 인도가 108위, 일본은 110위였다. 세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성평등 지수에서 경제적 참여와 기회는 124위(일본은 117위), 교육성과는 100위(일본은 65위), 건강 87위(일본은 41위), 정치적 권한은 92위(일본은 125위)였다. 마이코 쇼를 보고 느낀 불편함은 결국 낮은 우리의 성평등지수에 대한 불편함으로 이어졌다. 경제는 세계 10위권이지만 성별격차에서는 100위권을 넘어서 있는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여행이기도 했다.
이런 성 불평등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 현실 속에서 성 불평등이 벌어지는 모습에 대해 더 민감해지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최근 <언어의 줄다리기>(신지영 지음)를 읽으며 느낀 점들이 많다.
남자만 다니는 학교는 그냥 학교이지만, 여성만 다니는 학교는 여학교인 경우가 많다. 전국 중고등학교 중 여학생만 입학이 허용되는 학교 중 성별 표시 단어가 없는 학교는 중학교가 1%, 고등학교 11%라고 한다. 초중고에서 여성 교사가 많아지는 것(2017년 초등학교의 여성 교사 비율은 77%)에 대해서는 언론이 문제를 삼지만, 대학 강단에서 남성이 압도적인 것(2017년 대학 강단의 남자 비율이 77%)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여성의 비율이 30%인 검사 세계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 남성은 '그랜저 검사'라고 하지만, 여성은 '벤츠 '여'검사'라고 한다. 이 모두 남성을 기준으로 한 세계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성별격차 현실에는 나 역시 알게 모르게 '기여'한 바가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조금씩 알아갈 때, 내 주변부터 조금씩이라도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