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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Sep 01. 2019

샌프란시스코의 개성 넘치는 책방 '북 파사지'

'북 파사지(Book Passage)'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살던 엘레인 페트로첼리(Elaine Petrocelli)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는 그냥 밖에 나가 놀다 오겠다고 하고는 대담하게 기차를 타고 시카고에 있는 책방에 다녀오는 것을 좋아했다. 인디애나폴리스에는 커다란 책방이 없었고 도서관의 사서는 엘레인에게 어린이 책 섹션에 없는 책들을 쥐어주고는 읽도록 해주었다.


책을 좋아하던 이 소녀는 자라면서 같은 독서 클럽에서 무려 48년이나 활동을 했고, 동료 회원들에게 자신은 늘 서점을 갖고 싶어 했다고 털어놓았다. 독서클럽 회원들은 못할 게 뭐가 있느냐면서 다음 달에 만날 때에는 책방을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적어서 가져오라고 했단다. 변호사였던 남편은 책방을 열려는 아내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변호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들이 쓰는 노란색 메모지에 아내와 함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들이 1만 권 정도의 책으로 작은 책방을 연 것이 1976년이고, 이것이 '북 파사지(Book Passage)'의 시작이었다.  


이번에 가본 곳은 샌프란시스코 페리 빌딩에 있는 지점이다. 최근 소살리토(Sausalito)에도 지점을 열었으며, 본점은 소살리토 북쪽의 코르테 마데라(Corte Madera)에 위치해 있다고. 놀라운 것은 이 세 개의 서점이 저자를 초대하여 여는 이벤트가 매년 900개가 넘으며, 글쓰기와 다양한 언어 수업도 열린다. 이 서점의 홈페이지(bookpassage.com)에 가보면 정신없이 행사 소개가 나온다.


북 파사지는 어떻게 이런 이벤트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국내에도 <쓰기의 감각>, <나쁜 날들에 필요한 말들>, <가벼운 삶의 기쁨>등 많은 작품이 소개된 앤 라모트(Anne Lamott)가 웨이트리스 생활을 하면서 당시 출판사로부터 로열티를 너무 늦게 받고 있을 때 시작되었다고 한다. 라모트는 북 파사지에서 글 쓰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비평을 해주는 수업을 진행했고, 서점은 수업료의 일부를 라모트에게 지불했다. 이 수업은 성공적이었고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수업을 진행하는데, 1년 전부터 사람들이 신청을 한다고.


요즘은 서점에서 저자를 초대하여 강연을 듣고 독자와 만나는 행사가 흔하지만, 북 파사지가 열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행사는 드물었다고 한다. 책방을 열었을 때 어떤 사람으로부터 자기 친구가 책을 썼는데, 작은 리셉션을 열어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은 이런 행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리셉션에 올 만한 친구가 있느냐고 엘레인은 저자에게 물었고, 저자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자기 남편이 직장 동료들에게 말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알고 보니 저자의 남편이 당시 루카스 필름(Lucasfilm)의 사장이었고, 엄청난 사람들이 책방에 왔다고 한다. 이렇게 저자들과 네트워킹을 하게 된 엘레인은 저자 초대 행사를 계속해서 열었고, 책방 손님들은 이런 기회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북 파사지는 두 가지 미션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는 찾지 못할 훌륭한 책들을 발굴하여 판매하는 것과, 사람들이 쓴 훌륭한 원고를 책으로 출판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 서점에는 '여행작가를 위한 컨퍼런스(Travel Writer's Conference)', '미스테리 작가 컨퍼런스(Mystery Writer's Conference; 이 서점에서 미스테리 서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출판을 도와주는 세션(Paths to Publishing)', '식당에서 훌륭한 음식을 먹으며 책에 대한 설명을 듣는 세션(Cooks with Books)' 등이 있다. 


이런 다양한 행사를 통해 미래의 작가들과 출판사 편집자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새로운 작품들이 나오게 된다. 그중 독특한 클럽 두 가지를 소개하면 'First Editions Club'은 아직 유명하지 않은 작가를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인데, 이 클럽을 거쳐간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이 부커상과 퓰리처상까지 받기도 한다고.


'Aunt Lydia Book Club'은 한 단골 고객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 자기 숙모인 리디아에게 책을 매달 한 권씩 보내고 싶다면서 숙모가 좋아하는 책의 특징을 설명해주었다고. 그렇게 하여 서점은 매달 책을 한 권씩 예쁘게 포장해서 조카의 메모와 함께 보내기 시작했고, 그 숙모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그렇게 확산된 이 클럽은 현재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이 신청을 하여 매달 혹은 격월로 책을 보내고 있고, 이 클럽만을 담당하는 전속 직원이 따로 있다고 한다.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이 지역에서 다른 직장에 다니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도 직원들은 10분의 1이 안 되는 돈을 받으며 이 서점에서 일한다. 다음번에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코르테 마데라에 위치한 본점도 가보고, 이들이 여는 행사에도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책 2권을 사서 나왔다.

참고: "Interview with a Bookseller: Elaine Petrocelli" (by Brittany Goss, Read It For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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