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Reprt'에서는 주로 먹고 마시고 여행가는 이야기를 올리다 보니 책에 관해서는 별로 쓴 적이 없는 것 같네요(아 참, 도서관과 서점 이야기는 그래도 꽤 소개했습니다^^)
게으름을 피우다 오랜만에 책을 냈습니다. 제목은 <밥보다 책>인데, HER Report 보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먹는 것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밥보다'까지는 아니고 '밥만큼'은 책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40대를 지나며 생각한 고민들, 그 와중에 읽은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보니, 개인적인 고백 같아서 이렇게 책으로 나온 결과물을 보니 좀 심란하고 민망하기도 합니다. 엄마와 딸의 관계, 죽음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중년의 마음, 정리정돈의 신이라는 곤도 마리에가 울고 갈 저의 과도한 맥시멀라이프, 모든 사회적 안전 장치를 가족에게 떠맡기는 치사한 현실에 대한 고민, 축구와 록음악에 대한 감출 수 없는 열정.... 이런저런 생각을 적은, 저에게는 인생 중간평가 보고서 같은 느낌입니다.
이 책 프롤로그에도 썼지만, 40대가 되면 진짜 어른이 될 것 같았는데 막상 또 그 나이가 되니 나이 드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이루어 놓은 것이 없어 불안하다 보니 인생에서 또 다른 사춘기를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새삼스레 미숙하고 치졸한 '질풍노도'의 감정을 다시 경험했는데, 별다른 해결법도 없고 해서 그냥 이 책 저 책 읽었습니다. 그렇다고 엄청난 깨달음이나 지혜를 얻은 것 같지는 않고 여전히 우왕좌왕, 유치하기 짝이 없는 정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긴 합니다. 물론 그나마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못한 사람이 되었겠죠.
책과 잡지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서 20년 넘게 일했고 일도, 사랑도, 요리도, 취미도 모두 책으로 배우고 익힌 저다 보니 언젠가 책에 관한 책을 내고는 싶었는데 그게 바로 2019년 9월이 될 줄이야^^
어려서는 물론 20대와 30대에도 무언가 읽었고 지금 40대에도 책이나 잡지, 신문은 말할 것도 없이 종이에 인쇄된 광고 팸플릿이라도 무언가 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 50대가 되고 60대가 되어서도 계속 책을 읽을 것 같습니다. 책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모든 순간의 독서는 옳기 때문이지요. 사실 읽어도 잘 모르고, 읽지 않아도 인생에서 크게 문제되는 일은 없겠지만 뭐라도 읽고 생각해보는 것이 아예 안 읽는 것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하느라 쓴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자랑스럽기도 하고 재미난 부분은 사실 '추천사'입니다. 소설가 김연수 씨와 서민 교수님이 멋진 추천사를 써주셨거든요! 두 분 모두 책 읽기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갖고 계시고 읽기는 물론 쓰기에도 탁월한, 제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보니, 조금, 약간 '성덕'이 된 감동을 느꼈습니다(두 분께 큰 감사드립니다).
본 원고보다 추천사가 더 근사한 책이라니,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한번 읽어봐 주시길요.
책을 쓴 저도, 이 책을 기획하고 편집해 출판한 전지운 대표도, 책 표지와 본문을 책임진 김성미 디자이너도, 추천사를 써준 김연수 작가도 모두 디자인하우스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라서 뭔가 더 특별한 책이 되었네요. 고맙고 감사한 인연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