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야마 여행
'세계 3대 진미'라거나 '4대 성인' 하는 식의 대표 선수 뽑기를 제일 잘하는 나라가 아마 일본일 것이다. 일본 여행과 관련한 이런 'X대 XXX' 리스트는 한도 끝도 없이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든 것 중 '일본 3대 정원'도 있는데 미토의 카이라쿠엔, 가나자와의 겐로쿠엔과 더불어 오카야마의 고라쿠엔이 이름을 올린다.
오카야마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간 곳도 역시 고라쿠엔(後楽園). 정원이라고 하면 꽃이 피는 봄, 녹음이 아름다운 여름, 단풍으로 붉게 물드는 가을이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 겨울이 되어서 좋은 것이 있다면, 관람객이 없어서 여유있게 구경할 수 있다는 것? 꽃도 풀도 나무도 말라서 쓸쓸한 정원을 구경하는 것은 나름의 멋이 있다. 17세기 비젠의 영주인 이케다 쓰나마사(池田綱政)가 명령을 내려 만든 이 정원은 물을 끌어올려 정원을 감고 돌게 설계했는데 독특하게 학을 키우는 사육장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천 년을 산다는 전설 때문에 에도시대부터 이곳에서 학을 키우곤 했다고. 전쟁 통에 학이 사라져버리자 중국에서 두 마리 분양받아 지금껏 키우고 있다고 한다. 또 한쪽에는 넓은 차밭이 자리한다. 중국의 정전법을 실험하는 의미로 구획을 나누어 차나무를 키웠다고 하는데, 겨울바람 속에서도 차밭은 푸른색을 지키고 있다.
평지에 연못, 야트막한 언덕을 만들어 천천히 둘러보려면 꽤 시간이 걸리는데 저 멀리 오카야마성의 검은색 천수각이 보인다. 정원과 성을 함께 관람하는 표를 샀기에 서둘러 성을 향해 갔는데, 가까워질수록 뭔가 아쉬운 느낌. 생각보다는 훨씬 '새것'이었다. 에도시대 지어진 오카야마성은 원래 외벽이 검은색이어서 '까마귀 성'으로 불렸다. 여기에 처마 아래 들보를 금색을 칠하고 창틀은 흰색으로 되어 있어 멀리서 보면 이 확실한 색깔 대비가 드라마틱한 효과를 낸다. 하지만 2차 대전 중 오카야마가 공습을 받아 성이 모두 불탔고 전후 1966년에 콘크리트로 개축했다고 한다. 굳이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갈 것 까지는 없을 듯하다. 멀리서 볼 수록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할까.
오카야마의 상징인 고라쿠엔과 오카야마 성을 둘러보았으니 꼭 해야 하는 숙제를 끝낸 듯 뭔가 시원했다. 이제 남은 며칠은 먹고 마시기에 전념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