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거절을 잘할 수 있나요?"
스피치 강의에서 주로 나오는 질문이다.
우리는 유독 거절을 어려워한다. 왜 우리는 거절이 어러운 것일까? 다른 나라도 그럴까?
우리는 관계중심적인 문화권이다. 외국은 개인 중심적인 문화권이다.
그게 무슨 차이인지 궁금할 것이다.
영어에서는 My mother, My family, My house, My office로 표현한다.
직역하면 나의 엄마, 나의 가족, 나의 집, 나의 사무실이다.
우리나라의 표현은 우리 엄마, 우리 가족, 우리 집, 우리 회사라고 표현하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싫어 온몸을 베베 꼬면서 끌려가듯 출근하는 회사도 "우리" 회사가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관계중심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이 있다.
"이 그림 중 연관 있는 것끼리 연결 지어 보세요."
어떤 것들을 연결 지었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원숭이 - 바나나>를 연결 짓는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원숭이 - 코끼리>를 연결 짓는다
이 차이점이 무엇일까?
우리는 원숭이는 바나나를 먹는다는 관계성 기인한 연결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원숭이와 코끼리는 동물이고 바나나는 식물이라고 분류하기 때문에 원숭이와 코끼리를 연결한다.
이처럼 우리는 관계중심적이기에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꺼려한다.
관계중심의 단점은 내가 거절하면 그 거절이 이 부탁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한 거절처럼 느낀다. 나와 너의 관계가 있는데 이 정도 부탁은 당연히 들어주겠지 하는 마음을 기저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거절을 하니 너와 나의 관계가 이것밖에 안되냐는 실망이 생긴다. 그 실망이 곧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내가 거부당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거절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나 또한 상대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아 진다.
먼저 거절은 사람 자체가 거절당하는 게 아님은 인지해야 한다. 단지 이 부탁에 대한 거절임을 계속 상기하며 감정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도록 마인트 컨트롤해야 한다.
두 번째는 부탁을 하는 것은 나의 영역이듯 거절은 오롯이 상대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탁을 들어주는 기대감이 내 것인 것처럼 상황이 안되어 거절하는 것 또한 상대의 것이다. 내 것을 상대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대 또한 상대의 것은 나에게 강요할 수 없다.
거절이 어려운 문화권에서 우리는 은근히 거절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현명한 거절 방법으로 거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