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정제하다

거절이라는 굴삭기

by 고요한관종

나는 이 안에서 정말 솔직한가..

여전히 내 글이 나를 위한 것으로 먼저 쓰이지 않는다면 의미는 퇴색된 거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던 마음을 떠올려본다.

나를 읽고,

나를 다독이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시작했던 그 마음을.

결국은 나 자신을 지키는 글이 되어야 한다.



1_

고요를 정제하고 있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스스로를 원망하는 나약한 모습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감정적인 것보다 이성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려 하지만 잘 안된다.

내가 약해 빠진 것을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2_

나는 어떤 사람인가..

거절이 두려워 선택 앞에서 매번 망설였다.

거절을 피하고 싶어 항상 주변을 세심하게 살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맞추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거절을 듣지 않기 위해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씩 뒤로 미루는 일이 많아졌다. 오히려 그것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그런 내가 타인에게 선택권을 주며 거절에 항상 대비해야 하는 업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마치 십수 년 다져온 땅을 굴삭기로 헤집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 긴장감 안에 머물러 있는 거다.

누군가의 거절은 나에게 80% 이상의 타격감을 남긴다.

그럼에도 이 일을 해야 한다.

나와 잘 맞고 맞지 않고를 따질 때가 아니라 그냥 해야 한다.

갈아엎어진 마음을 다시 다지고 고요를 정제하고 있다.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용기.

스스로를 못났다고 비난하지 않는 인내.

그럼에도 나의 장점을 무기로 삼는 신념.

내가 경험해야 할 수많은 거절 중에 하나일 뿐, 수많은 선택들도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

수많은 사람에게 거절당해도 그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라는 가치.

정제된 고요한 마음에 심어 본다.


3_

음식물로 더럽혀진 그릇과 냄비들이 설거지라는 단순한 노동으로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마음을 가다듬기에는 설거지 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설거지가 즐거운 것은 아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뿐.

나에겐 이마저도 단순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

가장 지저분한 곳부터 정리하기 시작한다.

정리와 청소만큼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또 있을까.




4_

고요를 정제한다는 것은 나를 거르는 시간이다.

결국 나는 참고 참은 눈물을 조용히 쏟고서야 개운함을 느낀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체증으로 손을 딸 때 찾아오는 심리적인 해갈이라고 해야 하나.

숨이 잘 안 쉬어졌는데 울고 나니 좀 낫다.

단순한 거절 하나 때문에 유난을 떠는 것 같지만

지금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중이다.

미워하고 원망하지 말자고 나를 다독여 본다.


지금 나에게 정제는 불가피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정체는 불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