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김치콩나물국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by 고요한관종


김창완 아저씨의 "어머니와 고등어"노래를 들어보면 언뜻 보기에 화자는 고등어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노래를 계속 들어보면 화자는 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걸이라 말하고 있다. 고등어를 좋아하는 것도 맞는 것 같다. 고등어를 절여 놓은 아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을 좀 뒤늦게 깨달아서일까? 느닷없이 자책을 하는 가사.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걸"

나에게도 '어머니와 고등어'처럼 내 영혼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음식이 있다.


독립을 하고 처음 요리들을 하기 시작할 때는 뭔가 거창하고 잘 먹지 않았던 특별한 요리에 도전을 해보는 게 일반적일 테다. 유튜브로 레시피를 따라 이요리 저 요리 도전하며 첫 독립의 자유를 만끽했던 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 집에 살 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수없이 쏟아지는 잔소리 폭격을 이겨낼.. 아니 그러려니 넘길 재간이 없다. 끼니를 거르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맥시멈 한 요리를 하는 것도 한 달이면 꽤 버틴 거다.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장을 보고, 식재료를 손질해야 하고, 신명 나게 요리를 하고 나서 예쁘게 플레이팅 하는 것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때가 온 것이다. 분위기와 맛을 음미할 새도 없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고갈되어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바쁘다. 배가 부르니 만사가 귀찮아지면서 이토록 먹고사는 문제가 피곤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 덕분에 요리는 점점 단순해진다. 국하나, 찌개 하나. 어쩔 때는 계란후라이에 간장을 넣어서 비벼 먹는 걸로 때우기도 했다. 단촐해진 밥상의 메뉴들은 내가 독립하기 전까지 먹고 자란 엄마의 음식들로 드러나게 된다.


밥상에는 마른김과 흰밥, 간장 그리고 목이 메일때 같이 떠먹을 수 있게 뜨거운 보리차가 담긴 대접이 함께 놓여 있었다. 마른김을 펼쳐서 하얀 밥을 올려 얇게 펴야 한다. 어리고 작은 손은 밥을 잘 필 줄 몰라 김을 여러 번 찢어 먹었다. 밥 위에 뿌리는 간장의 일정한 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간장을 뿌린 후 김을 말아주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순식간에 김을 말아줘야만 터진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간장으로부터 두 손을 말끔하게 지켜 낼 수 있다. 이 노하우는 그동안 수없이 마른김 간장밥을 먹은 경험에서부터 온 결과다. 경험을 무시할 수 없음을 이 음식 하나만으로도 깨닫는다.


지금도 그날의 햇살과 공기가 선명하다.

국민학생이던 나는 토요일이 가장 좋았다. 학교가 빨리 끝나니까.(지금은 토요일에 학교를 안 간다니..)

"전체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인사" 반장의 끝맺음 인사가 끝나자마자 나 포함 아이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교실 뒷문으로 우르르 나갔다.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운지 요리 폴짝, 조리 폴짝 리듬과 박자를 타며 걷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닌 누가 봐도 좋은 일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을 거다. 오른손에 든 실내화 가방은 뱅글뱅글 돌려줘야 한다. (그러다 가끔 실내화가 떨어지기도 했다.)

햇살이 따사롭고 눈이 부시던 늦봄인 듯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학교 다녀왔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배고파 빨리 밥 줘~" 손도 안 씻고 바로 테레비(이건 나의 언어이다.) 앞으로 갔다. 그 시간 테레비를 틀면 늘 '이상한 나라의 폴'이 하고 있었다.

뿅망치를 들고 시간이 멈추는 요술을 부리는 삐삐와 곱슬머리의 폴이 4차원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 좋아하는 여자친구 니나를 구하기 위해 위험한 곳으로 용감하게 들어가지만 늘 니나를 코앞에서 놓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재미있게 만화를 보고 있다 보면 상을 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옻칠이 되어 꼬릿 한 냄새가 나는 자줏빛 나무 밥상을 펴놓고 기다리면, 엄마는 밥과 김치, 노릇하게 부쳐진 계란 후라이를 은색 스뎅 오봉(이건 엄마의 언어이다)에 담아 들고 오셨다. 신이 났다. 일주일에 한 번 먹을 수 있는 계란후라이였으니까. 두 살 터울인 오빠와 나는 더 큰 계란후라이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였다. 양은 똑같을 텐데 모양에 따라 크기가 달라 보였던 그때는 무조건 큰 것을 얻기 위한 투쟁이었다. 어차피 승자는 정해져 있었다. 계란후라이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패배의 기분 따위를 금세 잊게 했다. 이미 정신은 '이상한 나라의 폴'에 뺏겼고 입은 부드럽고 짭짤한 계란후라이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이 되면 엄마는 국을 늘 한솥 끓여놓으셨다. 미역국, 뭇국, 곰국...

나는 국 하나만 있으면 한 그릇을 호로록 말아 후다닥 한 끼를 해치우는 아이였다. 반찬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일반이다.

엄마가 한 솥 끓여 놓는 국 중 '김치콩나물국'은 무조건이다. 어렸을 때는 맛을 감지하기보단 배를 채우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기 때문에 ‘김치콩나물국’은 감탄을 하며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니었다. 밥 한 그릇을 순순히 비워낼 수 있을 만큼 검증된 음식일 뿐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방이 아닌 다른 곳은 매우 추웠다. 방바닥은 들끓었지만 웃풍으로 윗 공기는 쌀쌀한 말 그대로 지어진지 오랜 된 연립의 지하실 집.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콩나물국'은 그 추운 날 허기진 속을 데워 주웠고, 얼큰한 국물과 아삭한 콩나물의 식감은 먹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김치콩나물국' 예찬론자라고 해도 괜찮다.

재료도 소박하여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아서 분가를 하고 나서부터는 속이 허할 때보다 마음이 허할 때 ‘김치콩나물국’을 끓여 먹는다.

추억을 소환하고, 엄마를 떠올릴 수 있는 간단한 음식. 참 운이 좋다. 어렵지 않은 음식이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기 때문에 언제든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도 복이다.


요즘 같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가 되면 나는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들로 공허한 마음을 채우곤 한다 마라탕이니 당근라페니.. 시대가 지날수록 새롭고 맛있는 음식들이 얼마나 쏟아져 넘쳐나는지..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는 맛으로 결정지을 수 없는 추억이 있어야 하고 온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엄마’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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