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 이런 사람
좁은 집을 살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새로운 가구를 들이기 위해서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익숙한 가구를 정리해야만 기존의 공간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분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어느 한 가지를 포기할 것인지 선택의 순간이다.
문제는 익숙함으로 정들었던 녀석을 처분하기는 싫고, 새로운 녀석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두 가지를 다 안고 가기에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효율성이 떨어질 텐데.. 결국, 이 녀석도 저 녀석도 포기하지 못하고 모두 이고 지는 바람에 불편함은 내 몫으로 남는다.
나에게 있어서 그런 사람이 있었다.
원탑이라는 둥, 팬이라는 둥.. 이쁘다는 말로 설레게 하던 사람. 정돈되어 있는 내 안으로 허락도 없이 비집고 들어와 마음의 자리 위에 함부로 포개진 사람.
찰방찰방 분홍색 대왕 슬라임이 우리 집 천장을 열고 그대로 덮치는 장면을 상상해 봤다. 잘 정돈되어 있는 가구와 공간 사이사이를 분홍색 슬라임이 가득가득 메우는 아찔 한 상황.
그 사람이 내 일상과 충돌을 일으켜 영역싸움을 하는 날에는 마음이 시끄러웠다. 조율에 실패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채로 방치하기도 하고, 질서를 잃어버린 나는 어찌할 줄 몰라 무작정 회피하기도 했다.
그 사람을 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나는 버티고 있었다. 다수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한 사람을 버리는 것이 맞다고 머리로는 너무 잘 알지만, 마음은 버릴 생각을 이미 접었다. 언급했던 가구 얘기처럼.
욕심이었을까..
한 번도 나에게 맞지 않은 것을 탐한 적이 없었다. 옷이나 신발을 사도, 집에 필요한 물품을 사더라도 분수와 상황에 맞는 것을 분별할 줄 알았고,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꼼꼼히 비교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나’였다.
욕심이었다.
처음으로 욕심냈다.
터져버릴 것 같은 옷을 어거지로 끼어 입고서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내 모습이 겹쳤다.
터질까 두려워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도 버텨 냈다.
옷이 늘어나거나 나 자신이 홀쭉해지는 마법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을 끊임없이 원하고 갈망하는 나 자신이 신기할 뿐이었다.
욕심으로 인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명확했다.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단 한 가지만 얻는다 하여도 마음이 원하는 대로 가보자는 용기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찰나이고 쉬운 일이지만, 그 사랑을 지켜 나가는 것은 훨씬 어렵고, 힘이 든다. 사랑은 몽환적인 일곱 빛깔로 우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살아온 날들의 색과 각자가 품은 색감이 한껏 풀어져 고유의 빛깔을 창조해 냈다. 아름다운 결정체 같았다.
우리는 언 듯 비슷했지만 달랐다. 어떤 빛깔을 내는 사랑이었을까? 점점 시렸고, 참 애절했다. 그와 내가 만들어가는 사랑은 빛깔보다 온도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그의 온도. 나의 온도.
이토록 능동적으로 불편함을 견디며 의미를 좇아왔으면서도, 정작 그 사람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 온탕과 냉탕에 끌려다니는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감내는 언제나 부정적인 것을 견디는 일이다. 그러나 감내의 목적은, 시소의 한쪽을 무겁게 누르는 부정성에 맞서 결국 그 모든 것을 이겨내게 하는 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