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성숙의 동행
나른하게 들어오는 햇살은 건조하고 차가운 겨울이 길고 길 것을 짐작하게 한다.
햇살에는 계절이 녹아있다. 나는 가을과 겨울의 햇살을 가장 좋아한다. 뭔가 나이를 지그시 먹은 햇살이라고 해야 하나? 햇살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사계절이 아닌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계절을 준비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월동준비를 하며 다가올 계절을 미리 만나는 건 설레는 일이다. (참으로 귀찮은 일이 되기도 하지만)
6살 작은 친구의 작아진 옷을 정리하면서 아이의 얼굴과 사랑스러운 몸뚱이를 떠올려 본다. 피식 웃음이 나는 이유는 몸만 자라난 게 아니어서다. 말투, 발음, 이쁜 생각과 더불어 심술과 고집, 생떼까지 동반 성장했다는 것이 함정이다.
어느 주말의 평범한 점심.
단 둘이 먹는 조촐한 점심이어도 엄마는 분주하다. 작은 친구는 배가 고프면 어마무시한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그것을 잠재울 여력이 없고, 무시하고 넘길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 빨리 원하는 식사를 대령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일 것이다.
작은 친구의 계란후라이 스타일은 'sunny side up' (우리말로 반숙이다)
둥근 햇님모양처럼 달걀의 밑면만 익히고 윗면은 반숙인 스타일. 그녀는 숟가락으로 햇님을 파먹는 걸 좋아한다. 아직 어려서 노른자를 터뜨리지 않고 뜨기에는 미숙하지만, 터지면 터지는 대로 그게 또 재밌지 않을까. 그래서 반숙 노른자를 좋아하나?
밥과 반숙 달걀후라이 두 개(내 거와 그녀꺼)를 한 접시에 담았다. 식으면 맛없으니 먼저 달걀부터 먹으라고 내어 주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다른 밑반찬과 국을 뜨고, 내 밥까지 준비해서 식탁에 앉았다. 이미 계란후라이 하나에 노란 햇님이 사라졌다. 터진 노른자의 흔적을 보아 서툰 솜씨였지만 야무지게 노른자를 파먹는 그녀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리고 온전한 모습의 내 계란후라이를 보면서 문득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계란노른자가 맛있어?"
"응"
"숟가락으로 퍼먹는 걸 좋아하잖아. 그런데 왜 옆에 있는 노른자는 안 먹었어? 계란 노른자가 두 개였잖아."라고 물어봤더니,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다.
"나 먹으라고 준거야? 두 개를?"
나는 아니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건 엄마꺼잖아."
아.. 잠시 할 말을 밀어 두고..
그녀의 성장을 목도한 순간을 잠깐 마음에 담았다.
일러두지 않았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 두 개가 있어도, 자기의 몫은 하나라는 것을. 설사 두 개의 노른자 햇님을 모두 파먹었다 해도 나는 피식 웃었을 거다. 그 모습도 사랑스러웠겠지.
나머지 하나는 엄마의 것이라는 걸 어떻게 스스로 깨달은 것일까. 따뜻하게 웃어주는 노른자 햇님의 모습이 떠올라 순간 마음이 몽글거렸다.
계란후라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를 닮은 아이.
나의 작은 친구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내 계란후라이의 노른자를 이쁘게 떠서 그녀 입에 넣어 주었다.
그녀는 입안 가득 노른자를 머금으며 행복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행복감이 팝콘처럼 터져오는 순간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자식에게는 아깝지 않고, 오히려 행복해하는 자식의 모습에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넉넉함에 사로잡힌다. 부자가 된 것 같다.
따뜻한 점심 한 끼로 그녀의 성장과 나의 성숙은 이렇게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