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선택의 주체

2025.09.01

by 이월


출근 지하철에서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민을 시작한다. 골라놓은 책의 이북ebook 구매 버튼을 누를지 말지가 오늘의 난제다. 이북을 읽는 상상을 한다. 한 손에 펜 하나를 들고 포스트잇을 떼가며 분주하게 밑줄을 긋지 않아도 된다. 독서모임에서의 불편한 순간도 스친다. 그 문장을 찾아 말하고 싶었지만 무수한 포스트잇에서 그 문장을 정확히 찾을 수 없었다. 이북이라면? 상단의 자그마한 검색창에서 손쉽게 문장을 찾을 수 있었겠지. 가장 와닿는 건, 구매 버튼에 내 손가락에 닿는 순간 이 책을 바로 가질 수 있는 게 큰 매력이다.


나는 이북을 구입해서 잘 읽고 있고, 최근 몇 년 동안은 좁은 책장에 공간이 없어 ‘이제 종이책은 그만 사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줄줄이 사탕처럼 생각한 이북의 압도적인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고민을 할까. 그 이유는 가끔 종이책이 나를 부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책장을 보면 잊었던 책들이 나를 부를 때가 있다. 대부분 무시하기 일쑤지만 가끔은 그 부름에 응답해 손을 뻗어본다. 그러면 몇 년 전 그 책이 주었던 잊고 있던 감각들이 조금씩 펼쳐진다. 최근의 한강 - 채식주의자도 그랬다.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에도 폭력에 대해 소름 끼치게 담담하게 써 내려간 한강의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의 아이패드에 쌓여있는 책들, 디지털 세계에 갇혀있는 책들의 부름은 나에게 잘 닿지 않는다.


압도적인 편리함과 효율성은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아날로그에 담겨있는 느림과 우연함을 바란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출근길의 사람들을 본다. 네모난 스마트폰을 하나씩 들고 그 세계의 무-여운의 경험들을 즐기고 있다. 빠르고 손쉽게 얻어지는 것들은 여운을 남기기 참 힘들다.


이 편의성이 주는 감각들은 참 취사선택하기 어렵다. 디지털이 주는 편리에는 인기 있는 콘텐츠와 중간이라도 가는 보장된 물건들을 보여준다. IT업계에서 일하고 디지털 도구들을 다루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무취향에 가까워진다. 무-여운과 무-취향의 사람이 되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비온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

네모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시선을 밖으로 돌려 출근길을 구경했다. 이런 곳이 있구나 매일 걷는 광장과 길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내려놓은 스마트폰에서 사진 앱을 켜 사진으로 남겨본다. 디지털이 감각을 선택하게 하지 말고 내가 감각을 선택해서 디지털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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