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2
아침, 기다랗게 늘어선 승강장에 때아닌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평소와 같다면 잔잔한 노래를 틀고 노이즈캔슬링으로 만든 성에 들어가 나의 생각에 잠겨야 한다. 잠시 이 의식을 미뤄두고 이 소리가 정말인지 이어폰을 빼본다. ‘정말이네.’ 잘 듣지 못할 공간에서 울리는 소리에 머릿속도 청량하게 물들었다. 다시 노이즈캔슬링을 활성화하고 잔잔한 음악을 튼다. 손에 든 책은 아담하니 들고 있기에 좋다. 매끈한 표지가 손에 차갑게 닿는다. 책 모서리에 손가락을 올려 어제 읽었던 즈음에 책을 반으로 갈라 문을 열고 그 세계로 빠져든다.
퇴근길 내 앞에 서 있던 사람의 타투한 팔에 고양이가 헤드셋을 쓰고 날아가고 있다. 깜빡 졸았던 그 사이에 고양이가 너도 달려야 하지 않냐고 한다. 더불어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고의성이 없는 차가운 공기가 나를 떠민다. 이제 가을이 왔으니 달릴 때가 왔다고.
집 앞 실개천으로 러닝을 하러 걸어간다. 가을의 시원함이 수줍게 얼굴에 와닿아 느껴졌다가, 아직은 이르다는 듯 여름의 더운 습기가 느껴졌다. 오랜만의 달리기이다. 저번에 뛰러 나왔다가 컨디션이 안 좋아 일주일을 내리 쉬었다. 오늘이 날이다 싶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걷다가 바보처럼 다시 노래를 끈다. ‘오늘은 음악을 끄기로 했지.’ 오늘처럼 비 온 뒤에는 본인은 실개천이 아니라며 큰 강처럼 하얗게 부서지며 큰 소리를 낸다. 달리기의 처음 15분은 무거움의 구간이다.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무거운 다리와 그에 연결된 몸의 존재가 느껴진다. 팔은 리듬을 찾으려 분주히 앞 뒤로 뜀박질한다.
산 바로 밑의 공원까지 이어진 길을 올라가 반환하고 내려간다. 내려가며 들리는 실개천의 소리는 더욱 따갑게 나를 재촉한다. 다음 15분은 심장의 구간이다. 다리와 몸은 제 할 일을 찾았다는 듯 나의 의식과 멀리서 리듬을 찾아 박자를 맞추고 있다. 이제야 심장의 존재가 느껴진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심장이 아이언맨의 인공심장처럼 느껴진다. 이때쯤이면 산책 길에 다양한 사람들이 보인다. 물에 발을 담근 연인, 오순도순 얘기 나누고 있는 중년의 부부, 하얀색 강아지 두 마리를 산책하고 있는 사람을 차례로 지나친다.
마치고 걷는 길에서 두 개의 가로등불이 태양 마냥 늠름히 하얀빛을 내고 있다. 그 위에 추석을 앞둔 9월의 달이 병풍처럼 달빛을 펼쳐 내려다보고 있었다. 태양 대신 가로등이 만든 실개천의 인공 윤슬도 반짝여 별처럼 빛났다. 오늘도 잘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