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AV 배우 시미켄은 한국에서 특급 스타이다. 디지털 시대의 국경을 초월한 스타. 대한민국 공중파 방송의 뉴스에서 소개된 적도 없고 그 흔한 케이블 TV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도 없지만 그는 먼 옛날부터 유명했다. 뭇 남성들은 시미켄을 ‘형님’으로 모신다. 누구는 그를 '선생님'으로, 누구는 ‘BTS’로, ‘트레이너’로, ‘롤모델’로, 영웅'으로 떠받든다. 단순히 웃자고 하는 빈말이 아니다. 진심에서 우러난 존경심을 담아 꺼내는 말이다. 2019년 2월 5일, 그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일본 팬을 위한 내수용이 아닌 한국 팬을 위한 소통창구, 바로 '시미켄 TV’.
Adult Video의 약자인 AV는 속된 말로 ‘야동’으로 불린다. 형식적으로 표현하면, AV는 일본에서 제작되는 포르노를 지시한다. 그렇다. 시미켄은 일본 야동계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 배우이다. 그래서 언뜻 상상하면, 그의 유튜브 영상은 문란하고 자극적일 것 같다. 변태스러울 것 같다. 흔히들 갖는 편견이다. 그런데 막상 보면 마음이 그보다 맑고 깨끗해질 수 없다. 편집 센스를 갖춘 그의 영상은 어느 메이저 유튜버 부럽지 않다. 또한 무엇보다 유익하다.
시미켄 TV는 첫 영상을 업로드한 후 단 20일 만에 구독자 수 30만을 파죽지세로 돌파했다. 팬들은 신났다. 매 영상의 댓글란에는 시미켄을 향한 응원과 찬양, 애정 표현, 창의적인 드립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10년 전이었다면 어땠을까. AV 배우를 향한 이런 열광적인 반응을 남사스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실로 격세지감이 드는 요즘이다. 하늘에서 지금 이 광경을 지켜보는 조상님들이 혹시 대노하시지는 않을지 염려스럽다.
가뭄에 단비 같은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적 정서와 과거 군사 정권의 억압적 풍토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한국 사회는 ‘성’과 관련된 것에 유독 엄격하다. 섹스를 섹스라고 말하면,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게 된다. 프로이트가 등장하기 이전의 유럽처럼, 아직까지 한국인의 리비도는 겉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할 추한 본성처럼 간주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 기조는 물론이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는 성담론에 아직 보수적이다. ‘성’에 대한 얘기는 하나의 금기로, 친구들과 호프집구석에서 조용히 조심스럽게 속닥거려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성생활을 삶의 일부로 포용하고 보다 나은 성생활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말을 꺼내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육체와 육체의 대화를 시냇물 흐르듯 원만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그럼으로써 대화의 쾌락을 확장시킬 수 있는 이야기는 잊힌 지 오래됐다. 사람들은 시시덕거리기 위한 외설적인 이야기가 아닌 건설적인 성담론에 늘 목말라 있었다. 마치 구세주처럼, 시미켄 TV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 등장했다. 시미켄 TV를 구독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한마음이다. 우리는 시미켄 TV와 같은 채널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리고 시미켄 TV는 첫눈처럼 우리에게 왔다.
진짜 ‘전문가’ 시미켄
작년 7월경 최정상 AV 여배우 모모노기 카나가 한국 인터넷 방송에 출연했다. BJ와 모모노기 카나 둘이서 토크쇼처럼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었을 뿐인데 생방송 시청자는 최대 4만 명에 이르렀다. 나는 아직까지 기억한다. 채팅창에서 유저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하트 이모티콘으로 은하수 물결 같은 장관을 연출했던 것을. 한국 팬들의 일사불란함에 결국 그녀는 감동받았다. 모모노기 카나뿐만이 아니다. 방한하는 AV 배우들이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거나 아이돌처럼 팬미팅을 하는 것은 이제 낯익은 풍경이 되었다.
시미켄은 단순히 배우로 분류될 수 없다. 시미켄과 팬의 관계는 보통 배우와 팬의 그것보다 더 밀접하다. 한국에서 안성기, 송강호, 최민식, 이병헌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인간문화재급 연기를 선보인 그들은 ‘국민 배우’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오른 후 영화관에 불이 켜졌을 때, 그들은 우리와 남이 된다. 시미켄은 그들과 다르다. 팬들은 은밀한 시간에 그의 종횡무진 활약상에 몰입하고 그에 전적으로 동일시한 경험이 있다. 어느 늦은 밤, 그는 우리에게 즐거움, 꿈과 희망, 그리고 현자 타임을 선사했다. 그래서 실제 대면한 적 한번 없는 사이지만 시미켄과 팬의 우정은 순간접착제를 바른 것처럼 끈끈하다. 언어의 장벽은 둘 사이를 전혀 가로막지 못한다. 팬들은 마치 사우나를 같이 다니고 모든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처럼, 오랜 시간 동고동락을 함께한 죽마고우처럼 시미켄을 자연스럽게 신뢰한다. 인류의 보편적인 성적 호기심 아래서 시미켄과 팬들은 하나가 된다.
지금까지 시미켄 TV의 컨텐츠는 남성의 정력 향상을 위한 식단과 운동법이 주력이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서 이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이다. 함께 누워있는 대한민국의 대다수 커플들은 관심을 갖고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다. 사실 시미켄의 컨텐츠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의학전문기자가 뉴스 기사에서 정리한 내용이며, 헬스장에서 트레이너가 시범을 보여주는 무브먼트이며, 비뇨기과 의원 원장이 주부들이 아침에 주로 시청하는 아침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친절히 설명해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말과 글은 권위를 얻을 수 없다. 실천이 결여된 순수하게 이론적인 내용은 사실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시미켄의 조언은 그와 차별화된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이 분야의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이다. 강한 남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떤 순서로, 왜 섭취해야 하는지, 시미켄의 입을 통해 설명될 때 그것은 절대적인 신뢰를 얻는다. 약 20년간 9500편가량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시미켄은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만의 식단을 15년 동안 실천했다고 말했을 때, 여기에 거짓이라곤 일절 없다. 팬들은 다년간 어둠 속의 빛으로 그것이 순수한 진실임을 두 눈으로 지켜봤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구독자들은 어느새 양배추와 토마토, 그리고 계란, 생선, 낫또 등 ‘시미켄 식단’을 찾아 헤매고 있다. 남성 호르몬 생성에 도움이 된다는 시미켄의 말씀을 되짚으며 전에 사볼까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아보카도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시미켄의 조언은 최전방 야전부대 사령관의 한마디와 같은 권위를 갖는다.
‘시미켄 TV’는 일개 유튜브 채널에 지나지 않는다. ‘시미켄 TV’는 하나의 사건이다.
약 18년 전, 가수 JYP는 선견지명을 갖고 말했다. “섹스는 게임이다.” 대한민국에서 참을 수 없는 섹스의 무거움을 알고 있었던 JYP는 용기를 내 선언했다. 허나, JYP의 단호한 결의는 당시 경우 없는 것으로 대중의 질타를 한 몸에 받을 뿐이었다. 한편 디지털 매체가 발달한 환경에서 성장한 또래는 이 말에 전처럼 충격받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성인 컨텐츠를 인터넷에서 숱하게 접해 익숙해진 다수는 성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이전 어느 세대보다 자유롭다. 두 육체의 만남을 신비하거나 퇴폐적인 것으로 과장하는 대신 발랄하고 유쾌하게 웃어넘길 줄 안다. ’성’을 삶의 활력소로 인정하는 그들은 JYP의 정신을 내면화했다. 오르가즘의 희열을 삶의 축복으로 긍정한다. 이제 다음 문제가 남아있다. 만약 그것이 게임의 일종이라면, 어떻게 게임을 더 재밌게 즐길 것인가.
유튜브 영상에서 화면 오른쪽 위에 19금 마크를 달고 ‘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보통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이다. 이 경우, 성인용 토크는 말초신경을 자극할 뿐인 말장난과 다르지 않았다. 5년 전 인기였던 JTBC의 프로그램 “마녀사냥”처럼, 대한민국에서 성인 토크쇼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정서적 경계를 슬쩍 건드려보는 데 머물렀다. 시미켄 TV는 ‘성’을 우스개 거리로 소모하는 기성의 프로그램과 차원을 달리한다. ’쾌락’의 증진이라는 철학 아래, 실용적인 팁과 테크닉을 전파한다. 전혀 음탕하지 않고 반대로 너무 건조하지 않게. 편견이 생기지 않게 침착한 어조를 유지한다. 실로 시미켄 TV가 흥미로운 점은, 성을 주제로 매너 있게 말하는 화법을 가르쳐준다는 데 있다. 시미켄의 언어는 유머로 넘실대지만, 결코 그 가벼움으로 인해 경박해지지 않는다.
호기심 많았던 사춘기 시절, 구성애 선생이 우리 곁에 있었다. 성인이 된 후, 구성애 선생의 기초 이론을 어느 정도 마스터한 이들은 실전 이론을 가르쳐 줄 선생을 찾아 헤맸다. 나침반과 지도 없이 깜깜한 숲 속에서 한참을 방황했다. 2019년, 이제 사람들은 마침내 등장한 시미켄 TV에 환호한다. 물론 이 환호는 전반적으로 그간 시미켄이 AV계에서 써 내려간 역사에 표하는 감사이다. 한편으로, 이 반응은 한국에서 성에 대한 문화가 꽃피우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억압을 상기시킨다.
늦은 밤 한껏 즐기면서도 낮에는 가면 쓰고 호들갑 떨며 언급조차 못하게 막는 것은 가식적인 태도이다. 대를 이어 대물림 되는 대한민국 고유의 가식. 가식에서 유래하는 위선적 시선은 성문화의 발전을 저해하고 성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키는 데 선봉장이었다. 개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미켄 TV가 음란 컨텐츠로 신고받은 해프닝은 바로 이 한국적 가식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시미켄 TV를 자갈밭에 핀 꽃처럼 아끼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실로 시미켄은 미몽에 빠진 성에 대한 의식을 계몽시키는 섹스계의 몽테뉴이다. 그와 그를 응원하는 팬들은 반도의 비틀어진 이중성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로 체감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