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rzog Jul 18. 2019

쯔양의 먹방은... 사랑이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 나는 먹방에 무지몽매했다. 식탐이 별로 강하지 않은 소식가의 입장에서 화면 속 누군가가 한두 시간 포식하는 걸 본다는 데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남이 먹는 것을 볼 때보다 직접 먹을 때가 훨씬 행복하다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비제이 쯔양의 먹방을 조우하기 전까지 그랬다.


먹방이라는 장르는 다소 단조로워 보인다. 화면 구성은 어느 크리에이터의 먹방이든 비슷비슷하다. 화면 뒤편에 앉아있는 먹방러, 스탠드에 매달린 마이크, 테이블 위에 한상 푸짐하게 한상 차려진 음식. 쯔양의 먹방 역시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스트리밍이 시작되면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곧장 본론에 돌입한다. 주된 내용은 역시 ‘소리 내어’, ‘맛있게’ 먹는 것이다. 그렇다고 쯔양이 ‘앙 배불띠’ 같은 유행어를 가진 것도 아니고 특출난 끼로 버라이어티를 선보이는 것도 아니며, 차별화된 연출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 역시 아니다. 


오직 기본기에 충실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쯔양은 시대의 먹방러가 되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쯔양은 누구보다 먹는 모습이 예쁘기 때문이다. 



“참 복스럽게 먹는다.” 어느 팬의 채팅이다. 2018년 10월경 방송을 처음 시작한 23살 휴학생 쯔양은 먹는다는 것의 참된 행복을 일깨워준다. 그녀가 킹크랩의 통통한 앞다리를 발라먹으면 살살 녹는 속살의 담백함이 온 신경에 전해진다. 버거킹 햄버거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면 내 입 안도 빵과 치즈, 양상추와 패티로 풍성해지는 듯하다. 돼지국밥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면 그 따뜻하고 부드럽고 구수한 것이 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먹는 쯔양을 보고 있으면, 뱃속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훈훈하고 따듯해진다. 유튜브 추천 영상을 통해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된 건 어디까지나 행운이었다. 과포화 상태에 다다른 지 오래된 먹방 시장이지만 그의 유튜브 채널은 약 반년만에 백만 구독자를 달성했다고 하니 나처럼 그 치명적인 매력에 사로잡힌 이들이 적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먹방은 왜 보는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먹방의 “대리 만족”과 “식욕 억제” 효과를 얘기한다. ‘먹방 열풍’의 원인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사회적 기능이다. 뉴욕 타임스의 기사는 먹방이 집에서 홀로 식사하는 사람들에게 친구와 함께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전한다고 했다. 포브스지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고립돼가는 현대인의 고독을 짚으면서 먹방을 보며 함께 먹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고 분석했다.


먹방을 시청하는 것이 함께 식탁에 앉는 것과 유사한 기분이 들게 한다면, 쯔양의 방송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동생과 함께하는 기분 좋은 저녁식사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23살 휴학생 쯔양의 매력은 대체로 그의 이미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티 한점 없는 청순미. 보고 있으면 그냥 왠지 선하고 착할 것 같다. 조곤조곤 차분하게 말하면서 눈에 거슬리는 언행을 하지 않는다. 몸에 배어있는 매너와 예절로 늘 먼저 타인을 배려하며, 정기적인 봉사 활동과 기부 등 사회적 활동은 그 진실됨을 보다 단단하게 한다. 쯔양은 문근영과 아이유, 혜리로 이어지는 국민 여동생의 계보를 잇기에 부족함이 없다. 



쯔양의 먹방은 비록 현란하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스펙타클하다. 화면이 켜지면 눈 앞에 어림짐작 9~10인분의 음식이 배치되어 있다. 일단 의아해진다. “설마 저걸 다 먹는다고?”, 15분쯤 지나면 폭풍 흡입으로 음식의 반이 사라져 있는데 그 무렵 궁금증이 하나 더 생긴다. “저 왜소한 몸에 저 음식이 다 들어가?” 다시 15분이 지나면 그릇이 깨끗히 비워져 있다. 충격적인 것은 위장에 부담을 느끼는 기색이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도 시청자의 물음에 성심성의껏 답해주고 별풍선 선물에 리액션까지 빼놓지 않고 수행한다. 메인 디쉬를 클리어하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똘망똘망한 눈으로 캠을 응시하며 후식을 준비하는 쯔양의 움직임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유튜브 접속은 이제 일상이다. 하지만 유튜브에 접속해보면 이목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내용의 영상이 주로 눈에 띈다. 자극은 권태와 지루함을 잊게 하지만 지나친 자극은 즐거움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깊고 진한 감동의 차원을 피상적인 쾌락으로 대체한다. 쯔양의 먹방 역시 어마어마한 폭식이라는 측면에서 살벌하고 원초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시청자에게 다가가는 소통법은 소소하고 잔잔하다. 조용하지만, 조용해서 더 눈에 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뽀뽀뽀”의 뽀미 언니를 즐겨보며 흐뭇해하던 때의 소박한 즐거움을 생각나게 한다. 


크리에이터의 진솔한 소통은 시청자와의 결속력을 강하게 만든다. 끈끈한 결속을 통해 인터넷 방송을 보는 행위는 단순한 유희적 차원을 넘어선다. 쯔양의 먹방을 보면서 힐링이 되는 것은 과장되지 않고 꾸며지지 않은 그의 태도에 있을 것이다. 선한 개인의 힘은 단조로운 먹방이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먹는 것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생리적 활동의 일부가 아니라 함께 향유하는 작은 축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미켄TV, 우리가 시미켄에 열광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