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아스트라, 2019
제임스 그레이의 “애드 아스트라”는 관객을 당혹스럽게 한다. 영화의 색다른 화법 때문이다. 기성 블록버스터의 스케일과 상상력 대신, 브래드 피트의 초췌한 얼굴과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내레이션이 눈 앞에 펼쳐진다. 짐짓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한 남자가 잃어버린 삶의 균형 감각을 회복하는 여정은, 흔히 말하는 예술 영화적 향기를 풍긴다.
“애드 아스트라”의 서사는 언뜻 보기에 전형적이다. 주인공 로이 맥브라이드는 마치 헤라클레스와 프로이트를 반씩 섞어 놓은 것 같다. 어느 위기 상황에도 심박수 80을 넘지 않는 프로페셔널 우주비행사인 그는 지구에 위기를 불러온 전력 급증 현상인 ‘써지’와 그 근원인 리마 프로젝트를 종결짓기 위해 태양계 외곽으로 향한다. 영웅 서사의 모양새를 취하는 것 같은 이야기는 실상 로이와 그의 아버지, 클리포드 사이의 역학관계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관객이 주로 마주하는 것은 로이의 심리 변화이다. 우발적 사고로 우주 안테나에서 추락한 이후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던 로이는 정서적 교감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현실에 실존적 위기를 느낀다.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와 어느새 닮아버린 자기 모습에 고뇌하는 그는 길고 긴 시간 협소한 우주선 내부에서 외로움에 몸서리치고 애정을 그리워한다. 고통에 대한 감각은 그가 그의 아버지와 구별되는 성향이며 자기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한 감독의 작품에서 특정한 스타일과 테크닉이 반복될 때 흔히 ‘작가주의’라는 수식을 덧붙인다. “이민자”, “투 러버스”, “위 오운 더 나잇” 등 필모그래피에서 고유한 목소리를 냈던 제임스 그레이는 큰 이견없이 작가주의 감독으로 분류될 것이다. 고요하고 잔잔한 흐름에서 인물의 감정선을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둔 연출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그러나 주인공이 해왕성에서 우주사령부의 미션을 수행하기까지, 브래드 피트의 표정 연기에 의존하는 전개는 동어반복적이며 미적거리는 영화의 리듬은 몰입을 저해한다.
영화는 SF 장르에 속하지만 장르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를 배신한다. “인터스텔라”의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의 장엄함이나 “그래비티”의 역동적인 액션 같은 장르의 흥미로운 요소에 고개를 돌린다. 우주선 바깥의 칠흑 같은 어둠은 주인공의 고독을 부각하는 배경 장치가 된다. 케빈 톰슨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가까운 미래의 달과 화성에 인류가 구축한 인프라를 설득력 있게 묘사하지만 주인공 곁에서 맴도는 카메라의 시선은 우주복 안에 갇혀있는 것 같은 갑갑함을 유발한다.
영화의 테마는 인간의 탐험 정신과 인류가 품은 진보의 꿈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다. 그 점에서 영화는 감독의 전작 “잃어버린 도시 Z”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과 동료에 대한 인륜을 도외시한 채 외계에서 지적 생명체를 찾는다는 사명의식에 매몰된 클리포드는 로이의 관점에서 맹목적인 도구적 이성의 황폐함으로 표상된다. 한편, 로이는 인간적인 온기를 상실한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 나눔과 사랑의 휴머니티를 삶의 가치로 재정립한다. 로이의 편에 선 연출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지만, 그 깨달음의 실체는 성경과 탈무드의 오래된 격언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에 대한 사색을 담은 영화는 오늘날 보기 드문 형태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서사의 드라마틱한 성격을 배제한 채 읊조리는 스토아 철학 풍의 가르침은 마치 학창 시절 조회시간의 훈화 연설처럼 단조로운 인상을 준다. 때로 스릴러/호러 장르의 요소는 주인공의 말과 행동에 집중된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삽입된다. 그러나 그 효과는 어디까지나 단발적이다. 달에서 자원을 강탈하려는 해적 무리와의 추격전, 조난당한 우주선에서 실험용 유인원이 출몰하는 호러신, 화성에 안착하는 순간 발생하는 위기 상황은 여하에 따라 생기를 띨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연 캐릭터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격체라기보다, 주인공이 겪는 감정 변화의 매개처럼 기능한다. 토미 리 존스의 클리포드는 주인공의 자아성찰에서 변증법적 대립항인 허수아비이며, 리브 타일러의 이브는 플래시백 속 노스텔지아로 스쳐간다. “애드 아스트라”는 브래드 피트라는 스타의 존재감에 기대며, 배우가 조성하는 묵직한 분위기로 빈곤한 철학적 통찰의 결과물을 포장한다. 스펙타클과 장르적 유희 대신 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는 컨셉에서 인간에 대한 피상적인 성찰은 ‘속 빈 강정’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