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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zog Oct 30. 2019

김지영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성별에 따라 양극단으로 갈리는 별점 평가와 더불어 영화에 대한 논의는 개봉 전부터 젠더 갈등의 연장선에 접어들었다. 정치적인 진영 논리가 작품을 재단하는 상황에서 막상 영화의 만듦새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작품을 둘러싼 논쟁의 열기가 고조되어 갈수록 무용해 보이지만, 한 번쯤 정치적인 판단을 유보하고 영화의 내부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일도 나름 필요한 작업이 아닐까 싶다.



광명시 소하동에 거주하는 김지영은 육아 우울증에 시달리며 무의식 중에 타인으로 빙의되곤 한다.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남편과 가족은 그저 난처할 뿐이다. 기획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인재였으나 결혼과 육아 문제로 커리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김지영의 현재는, 남매를 위해 희생을 강요받았던 어머니의 과거와 겹쳐진다. 세대에 걸쳐 반복되는 여성의 아픔은 한 개인의 특수한 처지를 넘어서 동세대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는 마치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르포 기사 같다.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 대신 차별을 마주하는 여성의 상황을 차례로 나열한다. 김지영은 명절날 시댁에서 집안일을 홀로 떠맡고 여자라는 이유로 회사의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직장에 복귀하려는 계획에도 시어머니의 반대에 직면한다. 특정한 목적으로 구성된 매장면에서, 시사 프로그램 속 남녀 차별의 재현 화면이 눈에 어른거린다.


주인공의 남편, 친구와 가족을 제외한 인물은 현실 속 여성이 처한 상황을 부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아있는 순간에도, 직장의 회의 시간에도, 건물 옥상에서도, 카페에서도 “맘충” 같은 비하적 발언과 상식 이하의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영화는 소하동과 서울의 도회지를 공개적인 성차별이 만연한 공간으로 재현하는데, 과연 현시점의 대한민국이 이토록 모욕과 조롱이 만연할 만큼 상호 신뢰를 상실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배우 유아인은 “82년생 김지영”에 지지 의사를 표명하면서, 영화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감상한 후에 “공감과 함께임”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작품을 작품으로 평가할 것을 강조하는 배우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지만 영화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는 것 또한 필연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연출의 태도가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바깥세상을 가해자로 상정하는 전략은 김지영과 직장 동료, 친정어머니를 피해자의 자리에 위치시키면서 관객의 피해 의식에 반복적으로 호소한다.


때로 영화 매체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는다. 샹탈 에커만 감독의 “잔느 딜망”(1975)은 챗바퀴 돌듯 반복되는 주부의 고된 일상이 히스테리로 발전하는 과정을 세세히 관찰하며,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선보임과 동시에 소외된 여성의 삶에 관심을 촉발시켰다. 그와 마찬가지로 “82년생 김지영”은 육아로 인해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상실한 여성의 슬픔에 주목하지만, 여기에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과 미적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다.


남편의 사랑과 가족의 보살핌을 통해 우울증을 점차 극복하는 주인공은 차별적 발언에 당당하게 맞서면서 상처 받은 자아를 조금씩 회복한다. 김지영과 그의 어머니가 지나온 삶의 궤적은 일견 동세대 여성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지지를 얻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보편성은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은 연출이 상투적인 화법으로 남녀 차별을 소재로 한 뉴스의 일반적인 예시를 재현하는 단계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세상에 잔재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여성을 억압하는 분위기에 대한 문제제기로 가득하다. 동시에 미학적으로 공허하다. 중산층의 삶을 재현하는 화면은 특정한 시각적 스타일에 대해 논의하기 힘들다. 앞치마, 만년필 등 격하된 여성의 지위를 강조하는 상징은 시적인 뉘앙스보다 직접적인 의도성이 눈에 띈다. 풍자와 아이러니의 형식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과거 운동권의 구호처럼 직설적으로 현실의 부조리함을 꼬집는 화법에서 엿보이는 것은 메말라버린 상상력과 예술적 감성이다.


2010년대 한국의 여성 영화감독은 서사 전개보다 인간의 구체적인 정서에 보다 관심을 기울인다. 배우 정유미의 얼굴을 동력으로 삼는 “82년생 김지영”도 경력 단절 여성의 처지를 위로한다. 연출의 진정성 어린 목소리에도 김지영의 자기 극복은 휴머니즘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세계를 조망하지 못하는 연출의 현실 감각이 유아적이고 자기 폐쇄적인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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