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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zog Feb 05. 2018

엔젤, 에른스트 루비치, 루비치 터치

얼마만의 환희였는지 모르겠다. 에른스트 루비치의 <Angel>을 보면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고유한 ‘스타일’을 가진 극소수의 감독들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에른스트 루비치는 꿈같은 세상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흘러넘치는 우아함, 쉴새 없이 터지는 위트는 보는 내내 저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행복하겠다, 저런 세상 속에서 살고 싶다, 라는 마음이 들게 했다. 끝날 무렵에는 영화관의 불이 켜지지 않았으면 싶었다. 마를렌 디트리히가 귀품 있는 목소리로 짧게 한마디씩 내뱉을 때 무뎌진 시네필 본능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Angel>은 30년대 코미디 장르의 세련됨을 각인시키고 2차 세계대전 이전 전성기 헐리웃의 찬란함을 엿보게 한다. 러닝타임 동안 줄곧 귀에 걸려있었던 입은 이른바 ‘루비치 터치’라고 일컬어지는 스타일에 대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에른스트 루비치는 1892년 부유한 양복점 집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연극에 흥미가 있었던 루비치는 1911년 19살에 막스 라인하르트의 베를린 극장에서 배우로 데뷔했다. 연극 무대에서 활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영화계에도 발을 담근다. 오늘날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14년부터 1919년까지 그는 27편의 짧은 코미디 영화에 배우로 출연했으며, 동시에 연출도 맡았다. 단편들에서 그는 주로 익살스러운 유대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무성 영화 배우로서 썩 성공적이지 않았던 루비치는 1916년부터 장편 영화 연출에만 집중한다. 그의 재능은 여기서 두각을 나타낸다. 독일에서 연출한 장편 영화는 총 14편으로, 처음으로 루비치식 생략과 시각적 암시로 유머를 구축하는 방법을 보여준 <The Oyster Princess>(1919), 감독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한 <Madame Du Barry>(1919)가 여기에 포함된다. 1922년 루비치는 메리 픽포드의 제안으로, 그녀가 주연하는 <Rosita>(1923)를 연출하기 위해 헐리웃으로 건너간다. 제작과 각본 연출 포함, 헐리웃에서 그는 30편의 영화와 연을 맺게 되는데, 이 영화들은 후에 코메디 장르가 만개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단 1년뿐이었지만 에른스트 루비치는 영화 스튜디오 운영을 겸했던 첫번째 영화 감독이었다. 파라마운트 사의 제작 총괄이었던 루비치는 파라마운트 소속 감독이었던 조셉 폰 스턴버그와의 갈등을 빚었는데, 이 사건으로 그는 세간의 비난을 받게 된다. 그가 스튜디오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사실은 당대 사람들에게 일종의 편견을 남긴 듯 하다. 오늘날 비로소 사람들은 루비치 영화를 유럽풍 섬세함과 헐리웃 황금 시기가 절묘하게 매치된 작품으로 인식하지만, 당시 평론가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단순히 그가 스타일리스트와 엔터테이너였다는 사실은 보다 고상한 취향의 평단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Design for Living>은 원작 연극과 비교되어 메리트가 없는 작품으로, <Angel>은 실패한 침실 코메디(bedroom farce)로, <To Be or Not To Be>는 나치의 폴란드 점령 문제를 가볍게 다루었다는 명목으로 비판받았다. 후보에 오르기는 했지만 한 차례도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지는 못했으며, 뉴욕 평론가 협회의 선택도 매번 그를 외면했다. 1930년대 초반, 에른스트 루비치는 르네 클레르와 비교되기도 했다. 오직 예술적 측면에만 몰두하는 르네 클레르와 달리 루비치는 대중의 입맛을 지나치게 신경쓴다는 이유였다. 시기상 루비치가 앞선 것이 분명하지만, 당대 사람들은 기발한 표현과 위트의 창시자로 르네 클레르를 찬양했다.


‘루비치 터치’란 루비치 영화 스타일을 지시하는 고유명사이다. 검색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루비치 터치’를 정의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평론가 시절 프랑소와 트뤼포는 <Lubitsch was a Prince>라는 글에서 ‘루비치 터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본문에서 그는 에른스트 루비치를 완벽주의자로 정의한다. 영화에는 단 하나의 필요없는 쇼트, 단순히 예쁜 실내를 보여주기 위해 소모되는 쇼트가 없다. 구조는 분명하고 체계적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꼭 필수적인 요소들만 담겨 있다. ‘루비치 터치’는 스크립트에 접근하는 루비치만의 방식이다. 이것은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이다. 일반적으로, 몇 줄로 요약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남녀가 서로 밀당하는 얘기라고 가정하자. 카메라는 고백하는 남자와 마음이 흔들리는 여자를 비추지 않는다. 밀회가 침실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 우리가 보는 화면은 닫힌 문 바깥이다. 주요 사건이 거실에서 진행중일 때 실제 화면은 집무실을 배경으로 하거나, 복도에서 일이 벌어질 때 카메라는 살롱에 있다든지. 이런 식이다. 상황과 조금 떨어져서 관객은 주변 인물의 반응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 발전을 유추할 수 있다.


관객은 분명 루비치 영화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관객이 없다면 루비치 영화도 없다는 말도 분명 옳을 것이다. 루비치는 관객에게 주변 상황에 관한 모든 정보를 미리 던져준다. 그 다음,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인물의 말과 행동으로 웃음을 이끌어낸다. <Angel>에서 우리는 마리아(마를렌 디트리히), 프레데릭(허버트 마셜), 홀튼(멜빈 더글라스)이 함께 마주하는 장면을 본다. 마리아와 홀튼은 파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 서로 첫 눈에 반한다. 둘은 60분 간의 짧지만 잊을 수 없는 연애를 즐겼으며, 마리아의 남편 프레데릭은 둘의 관계를 모른다. 마리아는 홀튼을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홀튼은 마침 프레데릭의 친구였고 그래서 운명은 셋을 저택에서 조우하게 한다.  이때 카메라는 굳이 세 인물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불륜 관계에 있는 남녀의 안절부절하는 초조함은 볼 수 없다. 그들이 식사하는 동안 우리가 보는 것은 하인들이 일하고 있는 주방이다. 집사는 식당을 오가며 접시를 치우는 중이다. 우리는 세 남녀가 먹고 남긴 접시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추측한다. 집사가 가져온 마리아의 접시에는 손도 대지 않은 양고기가 있고, 홀튼의 접시에는 무수히 조각만 나 있는 양고기가 있다. 하인들은 음식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걱정하지만 프레데릭의 접시가 깨끗이 비워진 것을 보고 안도한다.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우리는 하인들의 반응을 보며 깔깔대고 동시에 두 남녀의 애타는 심정을 알게 된다.


루비치 터치는 간결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대사와 미묘한 뉘앙스의 연기를 끌어내는 루비치 고유의 능력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Angel>에서 눈이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루비치에 터치에 의해 통제된 마를렌 디트리히를 볼 때였다. 마를렌 디트리히, 하면 뇌쇄적인 매력이 떠오른다. 특히 조셉 폰 스턴버그가 연출한 작품에서의 넘치는 에너지, 허스키한 보이스, 남자를 잡아먹을 듯한 요염함을 상기하게 된다. <Angel>에서 배우의 강한 기세는 희석되었다. 어느 평론가는 <Angel>의 디트리히의 연기가 그녀가 보여준 가장 뻣뻣하고, 확신 없는 연기라고 비판했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루비치는 디트리히의 절제된 수동성을 통해 로맨틱한 순간을 창조한다. 특히 남성의 시선을 따라, 디트리히의 얼굴이 화면을 꽉 채울 때 얇게 그려진 눈썹은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보석같은 고결함을 자아낸다. 루비치는 어느 배우가 되었든 루비치 세계의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인물로 재창조한다. 대체할 수도, 모방할 수도 없는 루비치 터치는 그의 영화를 값진 것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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