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관찰일지 #4
밀가루 끊기 5일 차.
장염으로 고생하던 중 밀가루를 2주간만 끊어보자고 생각했다. 사실 평소에도 잘 먹지 않는데 일주일에 한 번 라면이나 빵 같은 것을 먹곤 했다. 5일 차가 되니 ‘먹고 싶은데 참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속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해서 밀가루를 먹지 못하니 한식당에 가기로 했다.
톳과 홍합이 들어간 짭조름한 해물밥에 통통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낙지볶음과 미역국, 신선한 멍게와 굴 등이 가득 차려지는 상이었다. 가족들과 와본 뒤로 다시 먹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 늦은 저녁 시간에 도착해서 안쪽 방으로 안내받았다.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고 있으니 음식들이 하나씩 들어왔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밥부터 먹자고 해서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낙지볶음부터 먹기 시작했다. 나물과 김치도 맛있었다. 미역국을 한 입 떠먹고 밥을 한 숟가락 더 떠서 천천히 꼭꼭 씹어먹었다.
친구와 굴을 하나씩 나눠먹고 가자미 튀김도 반으로 뜯어서 각자의 그릇으로 가져갔다. 친구가 너무 맛있게 먹기에 가시를 잘 발라내 한 입 먹었다. 삼삼한 간과 속이 꽉 찬 살들이 너무 부드러웠다. 한 입 더 먹으려는 순간 뭔가 이상했다. 가자미는 노란 튀김옷을 입고 있었는데 계란과 밀가루가 들어간 그 노란 옷이었다.
한식당에 왔으니 못 먹을 음식이 없다고 생각해 아무 생각 없이 반찬들을 맛있게 먹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아까 버섯탕수도 하나 집어먹었다. 그날 그렇게 폭주를 시작해 밥을 먹고 나서는 스타벅스 신메뉴도 야무지게 마셨다. 유제품과 찬 음료를 먹지 않고 있었는데 얼음이 가득 들어간 딸기 라떼와 치즈케이크를 주문해서 같이 먹었다.
그날 밤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도 속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기운이 없고 기분이 너무 별로였다. 안 되겠다 싶어 ‘오늘부터 밀가루 끊기 1일 차로 다시 시작하자’, 생각하고 보니 장을 쉬게 해주는 간헐적 단식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다이어트를 위한 공복 유지 방법으로 알게 된 방식인데 내가 알고 있는 것은 8시간 동안 무언가를 먹고 16시간 동안 단식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점심, 저녁을 먹고 자는 시간을 포함해 다음날 점심을 먹으면 16시간 정도의 공복이 유지된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 16/8 간헐적 단식을 종종 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서 유튜브를 켜고 간헐적 단식을 검색했다. 여러 영상을 찾아봤는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단식법을 소개해주는 서울대학교 교수님의 영상을 유심히 봤다. 장 건강을 위해 본인도 직접 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24시간 단식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마침 주말이니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최후의 만찬 같은 점심을 먹었다. 최근 집에서 먹는 밥은 주로 ‘때운다’의 의미에 가까웠다. 그마저도 장염에 걸리고 나서는 소화하는 것이 불편해서 반 공기 정도를 꾸역꾸역 먹었다. 밥을 먹고 난 직후에 20분 정도 산책을 하고 나면 속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런데 앞으로 24시간 동안 못 볼 밥상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평소 잘 안 꺼내먹던 밑반찬도 꺼내고 며칠째 먹고 있는 곰탕도 팔팔 끓여 좋아하는 그릇에 담았다. 계란도 하나 굽고 케첩을 찹찹 뿌렸다. 밥은 평소 먹던 반 공기보다 조금 많이. 요즘 자주 듣는 이무진의 신호등을 틀어두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빠른 지도 느린지도 모르겠어. 그저 눈앞이 샛노랄 뿐이야~”
마지막 한 톨까지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왔다. 평소보다 조금 빨리 먹은 감이 있어서 속이 쿡쿡 쑤시는 느낌이 있었는데 많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20분 정도 걸어서 매일 가는 카페에 도착했다. 날씨는 추웠지만 해가 쨍쨍했다. 밀가루를 끊으면서 설탕도 줄여보자 싶어서 자주 마시던 핫초코도 함께 끊었다. 그런데 24시간 단식을 앞두고 이 정도의 치팅은 해도 될 것 같아 따뜻한 초코 음료를 시켰다. 24시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