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관찰일지 #8
오랜만에 비가 온다. 조금씩 내리는 것 같아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갔다. 제일 가벼운 우산을 골라 들고 방수가 되는 운동화를 신는다. 비가 오니 흙냄새가 가득 난다. 시원한 공기와 함께 바람이 불어온다. 우산 위로 다다다닥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머릿속이 조금 복잡했는데 팟캐스트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생각은 생각의 일을 하고 몸은 몸의 일을 한다. 평소보다 보폭을 조금 크게 해서 빠르게 걷는다. 30분 정도를 걷고 돌아왔다.
자고 일어나서 내 방 청소 정도는 해도 화장실 청소는 내 일이 아니었다. 누가 하는지도 모르게 청소가 되어 있는 곳이었다. 가끔 화장실 휴지통은 비웠다. 아빠가 주말에는 알아서 화장실 청소를 좀 하라는 말도 했던 것 같다.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작년부터 화장실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면 비포 애프터가 확실해서 쾌감이 크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택배로 도착한 돌돌이 청소기가 재미있어 보여서였던 것도 같다.
건전지 4개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솔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청소기를 꺼내왔다. 휴지통을 비우고 욕실용 고무장갑을 꼈다. 샴푸, 린스, 바디워시 등을 치우고 바닥에 따뜻한 물을 붓는다.
첫 번째 목표는 배수구. 뚜껑을 열고 이물질을 걸러내는 구조물들을 해체한다. 물로 한 번 헹군 뒤 세제를 뿌리고 작은 솔을 이용해 깨끗이 닦아준다. 가장 더러운 부분을 먼저 처리하고 나면 다음 단계는 정말 간단하다. 솔을 헹구고 다시 쓱싹쓱싹 깨끗하게 한 번 더 닦아준 뒤 조립을 한다.
이제는 돌돌이 솔이 나설 차례. 바닥 전체에 세제를 뿌려두고 오른쪽 상단에서부터 타일의 물때를 제거한다. 한 칸 한 칸 색칠을 한다는 느낌으로 네모칸 안에서 꼼꼼하게 돌돌이를 돌려준다. 힘들진 않지만 시간이 꽤 걸리니 귀에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아둔다. 아이유의 ‘하루 끝’을 반복 재생한다.
시원하게 내지르는 아이유의 목소리를 들으며 물기 제거가 완료된 타일의 개수를 늘려간다. 쪼그리고 앉은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면 일어나서 타일에 물을 뿌려주고 반대편으로 간다. 문쪽에서 시작해서 다시 타일들의 물때를 제거한다.
전체 바닥을 솔로 다 닦아내고 물을 뿌려 씻어낸 뒤 한 번 더 돌돌이를 돌린다.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르게. 돌돌이에 남은 세제도 씻어내고 미처 씻겨나가지 않은 때들도 깨끗이 씻어낸다는 생각으로. 한 번 더 바닥 전체에 물을 뿌려 세제가 남은 곳 없도록 씻어내면 바닥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다.
보통은 이것으로 화장실 청소가 마무리되는데 오늘은 변기도 씻어내고 세면대 위의 거울도 닦는다. 바디로션과 클렌징크림이 올라간 선반 위의 먼지들도 깨끗하게 닦아준다.
30분 정도 걸렸나. 아이유 노래를 다섯 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하루의 끝에 듣고 싶은 말을 노래하는 곡이지만 휴일 오전 청소의 텐션을 높여주기에도 손색없다. 손을 깨끗이 씻고 이어폰을 빼두고 향기가 진한 핸드크림을 발라준다. 이따가 가족들이 돌아오면 화장실 청소했다고 자랑해야지. 선반도 정리하고 변기까지 깨끗하게 씻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