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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May 28. 2020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칼 마르크스,『공산당선언』

*유튜브 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_qjhI0hY-gI




국내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개념들의 연원이 있습니다. 바로 민주주의와 독재,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이죠. 이 중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채택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에 따라 독재와 공산주의는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되곤 하죠. 물론 독재에 대한 그 같은 반응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고려할 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반응입니다. 군홧발에 짓밟히던 70~80년대의 악몽에서 깨어난 지가 이제 고작 40년 뿐이니 말이죠. 그렇다면 공산주의 역시 이제는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철 지난 망상이자 실패한 사상으로 마감한 걸까요? 정말 공산주의는 뭇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악한 걸까요? 혹은 오늘날 공산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과거의 소련이나 현대의 북한 같은 나라들을 마음 깊이 동경하는 걸까요? 아니 그전에 북한이 정말 공산주의 국가이긴 할까요? 정말 그들은 혁명을 통해 국가 전복을 이뤄내고 하향 평준화와 소유의 전면적 철폐를 꿈꾸는 걸까요? 이번 포스팅을 통해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 답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책,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입니다.





마르크스는 1818년 지금의 독일 라인 주 트리어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청년 시기의 마르크스가 큰 영향을 받은 인물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었는데요.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관을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보다 물질적인 부분을 강조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을 창안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만 마르크스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그를 소개하는 모든 책에서 반드시 빠지지 않는 대목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란 쉽지 않죠. 따라서 이것이 뜻하는 바에 대해선 잠시 뒤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마르크스는 자신의 역사관을 관철하기 위해 열심히 정치활동을 하기도 하고 다수의 책을 저술하는 데 힘썼습니다. 하지만 당시 보수적인 유럽 분위기 속에서 마르크스의 주장은 다분히 파격적일 뿐만 아니라 폭력적으로 조명되었고, 그에 따라 파리와 벨기에 등에서 연이어 추방당하기도 했죠. 그런 마르크스에게 경제적으로 힘이 되주었던 인물은 다름아닌 엥겔스입니다. 부유한 가문 출신의 엥겔스는 가난한 마르크스를 지속적으로 후원해주고 그의 집필 활동을 돕는 등 다방면에서 마르크스를 지원해주었던 인물입니다. 게다가 끝없는 망명 생활 끝에 외로이 죽은 마르크스의 장례를 지켜준 사람도 엥겔스였죠.


그 둘이 펼쳐낸 오늘의 책 <공산당선언>은 사실은 책이 아니라 선전용 팸플릿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즉 공산당이라는 것, 혹은 공산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이념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알리는 데 목적이 있었던 거죠. 다만 여기서 언급된 ‘공산당’이라는 것은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는 정당으로서의 ‘당’은 아니고요. 다만 공산주의라는 공통된 신념 아래 모인 무리 정도로 이해하시는 게 적절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공산당선언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이 강렬하게 시작됩니다.



이 구절은 유사 이래 쓰여진 모든 선언문 중에서 가장 강렬한 첫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딘가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하죠. 여기서 유령이 상징하는 바는 당시 유럽 기득권에 불어 닥친 모종의 공포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유령은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공포이죠. 즉 마르크스는 사람들에게 단지 추상적인 공포로만 존재하는 마치 유령 같은 공산주의에 이 글을 통해 뼈와 살을 붙이는 작업, 그리하여 공산주의의 정확한 이념과 목적을 선언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 아래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의 구성을 다음의 네 챕터로 나눕니다.



먼저 챕터1에서는 역사의 전개 과정을 간략히 기술하며, 그러한 가운데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또 정확히 그들은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며, 그들의 미래는 어떠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챕터2에서는 전 세계 모든 프롤레타리아들의 지향점을 공산주의에 두고 또한 공산주의자들의 정확한 목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챕터3에서는 지금까지 현존해왔던 사회주의의 한계를 소개하며 마르크스식 공산주의가 가지는 가치를 재언급 하고 있고요, 끝으로 챕터4에서는 당시 공산주의를 헐뜯던 세력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사명을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글을 마무리합니다.


본 포스팅은 이를 다음의 순서로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맨 먼저 마르크스의 역사적 관점인 변증법적 유물론이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볼 것이고요. 다음으로는 그러한 사관으로 바탕으로 마르크스가 예측한 역사의 전개 과정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들의 속성은 어떠한 지에 대해 조명하려 합니다. 아울러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정치적 이념이 무엇이든 누구에게나 유익한 글이 이 될 수 있도록 오직 책의 내용에만 입각하여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관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헤겔 변증법의 핵심은 다름아닌 정반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해를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가령 우리 앞에 물이 놓여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때 물은 상온 15°C를 유지하며 고요한 상태로 존재합니다. 바로 이것이 정(正)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이 물을 가열하면 어떻게 될까요? 온도가 올라가며 점차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겠죠. 다시 말해 물을 가열하는 불은 정(正)의 본래 상태에 변화를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를 반(反)이라 합니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 뜨거워진 물은 대부분 수증기로 변하겠죠. 즉 물과 불이 만나 새로운 상태를 이뤄낸 것입니다. 이것을 합(合)이라 합니다. 즉 정과 반이 더해져서 합이 된 것이죠.





헤겔은 역사도 이와 같이 정반합의 과정을 따라 전개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죠.




먼저 지배군주가 통치하는 독재 국가가 있습니다. 이는 정에 해당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은 독재자의 핍박 속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될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백성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독재 시스템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민중 운동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기존의 정에 대하여 반이 시작되는 단계입니다. 이후 백성들은 독재에 대항하여 목숨을 건 투쟁에 이르게 되고 마침내 성공하여 민주주의 국가를 이뤄냅니다. 이것이 바로 합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이처럼 헤겔은 역사가 정반합에 따라 전개된다는 변증법적 사관을 피력했던 것이죠.


헤겔은 이러한 자신의 사관에 더하여 한 가지 독특한 견해를 첨가합니다. 바로 절대정신이라는 개념입니다. 아주 거칠게 정리하면 절대정신이란 인간이 감히 알 수 없는 비물질적이고 초월적인 힘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헤겔에게 역사란 절대정신이 정반합의 단계를 거쳐 스스로를 전개하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보기에 헤겔의 절대정신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견해였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관념적인 이야기로 현실 세계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취향이 아니었던 거죠. 따라서 그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관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게 되었고, 기존에 절대정신이 차지하던 자리에는 물질이라는 개념을 첨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름하여 변증법적 유물사관입니다.



즉 마르크스 역시 역사가 정반합의 과정에 따라 전개된다는 것엔 동의했으나, 그 과정을 이끄는 실체는 절대정신이 아닌 물질이라는 주장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마르크스가 언급한 물질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경제적 의미의 물질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하면 무언가를 사고 팔거나, 혹은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물질들의 총체를 가리키는 거죠. 즉 마르크스에게 역사란 인간의 경제 활동이 변화함에 따라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변화하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사관을 바탕으로 역사가 다음의 다섯 단계로 전개된다고 주장합니다.



맨 먼저 최초의 사회는 씨족 중심의 혈연 공동체를 이루는 원시 공산제였습니다. 이들은 함께 밭을 일구고 힘을 합쳐 사냥하는 협력 공동체였으며, 공동 소유의 특징을 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점차 그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고, 이웃한 부족과 정복 전쟁을 벌이며 정복민들을 노예로 거느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고대 국가의 성립이죠. 또한 역사 속에서 최초로 주인과 노예라는 계급과 억압이 생기기 시작한 지점입니다. 하지만 귀족 계급의 힘이 막강해지며 중세 봉건 사회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 때 예전의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영주와 농노의 관계로 변모했지만 이는 억압의 방법만 달라지는 표면적 변화뿐이었죠. 아무튼 시간은 더 흘러 중세 봉건제 체제 아래에서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자 잉여 생산물을 판매하는 상인 계층이 새로이 대두하게 되죠. 이들은 점차 그 규모를 불려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하게 되고 마침내 부르주아 계층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사회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대립하는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하게 된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내용을 정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한 사회가 그 다음 사회로 이행하게 된 과정에서 계급의 역할이 중추적이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이후에 도래할 것으로 마르크스가 예측한 공산주의란 무엇일까요? 이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특징을 살펴보며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가르는 커다란 기준은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입니다. 생산 수단이란 토지나 공장과 같이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을 가리키는데요. 보다 쉽게 말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부르주아는 토지나 공장 같은 이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들이고, 프롤레타리아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이죠. 한 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자본가가 돈을 투자하여 공장을 짓습니다. 그리고는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를 불러 모읍니다. 공장에 자원한 노동자들은 공장 주인이 시키는 일들을 처리하며 자신의 노동력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아갑니다. 여기서 공장은 생산 수단, 자본가는 부르주아,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는 프롤레타리아에 해당하죠.


마르크스의 주장에 따르면 노동자가 공장 주인으로부터 받는 임금의 크기는 노동자가 노동하여 만든 상품의 가치보다 턱없이 적으며, 그 차이만큼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착취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차이를 잉여 가치라 이름 지으며 이는 자본가의 관점에선 수익이고, 노동자의 관점에선 손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착취가 장기적이고 대규모적으로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노동자들이 소비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자본주의는 스스로 붕괴될 것이란 것이 마르크스의 입장이죠. 쉽게 말해 공장엔 물건이 쌓여 있더라도 이를 구매해줄 노동자들에겐 정작 돈이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자본주의란 생산 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들이 프롤레타리아들의 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작동하는 체제이며, 다만 그러한 상태가 지속될 경우 착취당한 프롤레타리아는 마침내 소비력마저 잃어버려 자본주의는 공황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부르주아적 소유의 전면적인 폐기, 쉽게 말해 자본가들이 생산 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운동의 주축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어야만 한다는 거죠.


참고로 이 대목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현대 자본주의의 비판을 잠시 소개하자면,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감수하는 리스크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부르주아들은 공장이나 각종 설비를 마련하기 위해 거대한 자본을 투자했지만 그들의 사업이 언제나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죠. 즉 투자한 사업이 망했을 경우 파산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라는 설명입니다. 따라서 높은 위험을 감수한 자본가들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것은 착취가 아닌 권리라는 거죠. 게다가 애초에 공장이 없었다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현대 자본주의의 입장입니다.


아무튼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한 열 가지 강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개인 소유의 토지를 몰수하고, 모든 지대를 국가가 거두어 쓸 것.
2. 소득과 수입이 많음에 따라 누진세를 강하게 올릴 것.
3. 모든 상속권을 폐지할 것.
4. 모든 망명자들과 반역자들의 재산을 몰수할 것.
5. 국가 자본으로 만들어진 국립 은행이 독점권을 통해 국가가 금융과 신용을 장악할 것.
6. 국가가 통신수단과 교통수단을 장악할 것.
7. 국가 소유의 공장과 생산 도구를 늘리고, 전체적인 계획에 따라 모든 토지를 개간하고 개량할 것.
8. 모두에게 평등한 노등의 의무를 부과하고, 농업을 비롯한 산업 군대를 키울 것.
9. 농업과 공업의 경영을 결합시키고 인구 분배를 통해, 점차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를 없앨 것.
10. 공립학교에서 모든 아동을 무상으로 교육하고, 현재와 같은 아동들의 공장 노동을 폐지하며, 교육과 생산 활동을 결합할 것.


그런데 내용을 천천히 살펴보시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들이 많죠. 이를테면 누진세는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조세정책이고요, 마찬가지로 상속권 또한 전면적인 폐지는 아니더라도 상속세를 통해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행정계획에 따른 개발 정책 사례 역시 적지 않으며, 무상 교육이나 아동들의 노동 금지는 오늘날 매우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들 중 하나죠.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과격한 형태의 공산주의 국가는 사실상 실패로서 마무리되었지만 사회주의적 요소들은 보다 완화된 형태와 모습으로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공산당선언>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내부적 모순으로 인해 붕괴되고 금방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의 생각과는 달리 여러가지 모순을 극복하며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죠. 그렇다면 공산주의는 틀린 것이고 자본주의에는 오류가 없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 글을 작성하며 조심스러웠던 점은 제가 단지 이 책을 선택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마치 마르크스 추종자처럼 보이지 않을까, 혹은 공산주의자처럼 보이진 않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걱정의 기저에는 우리 사회에 수없이 발생하는 딱지 붙이기에 대한 염려가 자리잡고 있었죠. 이를테면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성향을 단순히 보수나 진보라고만 딱지 붙이며 보다 내밀한 가치관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는 그렇듯 칼로 무 가르듯 댕강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부르주아의 사적 소유만을 무제한적으로 감싸고도는 체제도 아니고, 또한 오늘날 사회주의 진영의 사람들도 프롤레타리아적 혁명을 꿈꾸진 않죠. 뿐만 아니라 다수의 보수들은 진보 세력이 비난하는 것처럼 노동자를 핍박하거나 부자들만 득세하는 나라를 만들려고 하지도 않고요, 마찬가지로 다수의 진보들도 사적 소유에 전면적으로 반대한다거나 노동자의 인권만을 중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둘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얼만큼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큰 견해차를 보일 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정치적 성향을 진보와 보수로만 가르고, 또한 반대 진영의 정치적 이념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정치는 토론이 아닌 전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막 정치에 눈을 뜨신 분들이라면 스스로의 정치 성향을 먼저 진보나 보수라고 딱지 붙이기 보다는 개별적인 정책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소신껏 정리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가령 국가 안보에 대한 의견, 복지 정책에 대한 의견, 환경 정책에 대한 의견, 외교 정책에 대한 의견, 교육 정책에 대한 의견, 경제 정책에 대한 의견 등등 말이죠. 나아가 이들 각각을 이루는 구체적인 하나의 안건을 정하고 그 안건에 대하여 나름대로 연구하며 천천히 자신의 주관을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그리하여 개별적인 안건에 대한 낱낱의 주관이 형성된다면 비로소 그것이 모여 여러분의 정치적 성향을 이루게 되는 거죠. 아마 이 때 여러분들의 성향은 진보나 보수, 둘 중 하나만으로 수렴되진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국가 안보에 대해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환경 정책에 대해선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렇게만 된다면 이제껏 정당만 보고 투표를 해왔던 과거 보다는 조금 더 성숙한 자세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릇 취향이 없는 고객은 브랜드만 쫓아다니기 바쁘지만, 취향이 확실한 고객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골라 내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은 되도록 깐깐한 고객이 되어 자신의 이해관계를 그나마 가장 잘 대변해주는 정치인을 찾아낼 안목과 식견을 갖춰야만 하지 않을까요. 아무쪼록 진보와 보수를 넘어 여러분의 소신 있는 정치 참여를 응원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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