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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May 29. 2020

소수자를 소수자로 만드는 소수자

『세뇌』, 벤 샤피로

https://blog.naver.com/sonss1992/221981266514


구독자 한 분의 부탁으로 『공산당선언』을 업로드하게 됐다(위 링크는 해당 영상의 원고다). 다만 그 내용이 워낙 '색깔' 짙다 보니 난 균형을 맞출 필요를 느꼈고, 따라서 그 대안으로 보수적 성향의 책을 한 권 더 추가 업로드할 요량이었다. 무슨 책이 좋을까. 그때 마침 전부터 관심있게 지켜보던 벤 샤피로의 책이 눈에 띄었다. 벤 샤피로는 최근(이라고 말하기엔 좀 오래됐지만) 미국에서 가장 핫한 젊은 우파 지식인으로 자기 스스로 '자유주의적 우파'라 주장하는 사람이다. 예전부터 유튜브를 통해 접한 그의 여러가지 논리와 주장은 내게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고, 난 그의 세밀한 논리가 더 알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2년 전이었나, 그는 "Karl Marx, you were wrong."이라는 제목으로 마르크스를 비판한 전적도 있다. 이 정도면 공산당선언의 참고서적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고른 벤 샤피로의 책, 제목은 『세뇌』, 원제는 'Brainwashed'다.





책의 두께가 무척 얇아 앉은 자리에서 금새 다 읽었다. 다만 『공산당선언』의 참고 서적으로 업로드할 책으론 부적절했다. 내가 기대한 책의 구성은 마르크스식 사고에 대한, 혹은 마르크스를 계승한 오늘날 진보 진영의 정치경제 철학에 대한 벤 샤피로의 논리적 비판이었다. 하지만 그의 책 『세뇌』는 공산주의라는 굵직한 담론에 대한 벤 샤피로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풀어내기 보다,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담론에 대한 '좌파(벤 샤피로가 이 책에서 한 표현을 그대로 사용)'들의 '행태'를 폭로하는 '현실고발적' 성격이 짙은 책이었다. 따라서 책을 읽다보면 내가 결코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는 수많은 미국 교수들의 '좌파적 언행(이 또한 벤 샤피로의 표현)'이 지루하게 열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금새' 읽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책의 골자는 이렇다. 오늘날 미국 대학교들의 교수들은 '심각한 수준'으로 좌경화 되어 있으며, 또한 교수들은 자신의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의식화'하는 작업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벤 샤피로는 이를 드러내보이기 위해 수많은 교수들의 '좌파적 언행'을 끊임없이 폭로하고 고발한다. 그러니 내겐 지루할 수밖에.




벤 샤피로는 PC주의자들을 매우 싫어한다. PC란 Political Correctness의 약어로, 우리말론 보통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번역하지만 번역어가 원의(原意)를 잘 담아내지 못하는 탓에 그냥 PC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보다 적절한 번역은 '정치적 중립'이 아닐까 싶지만 이 또한 잘 와닿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아무튼 PC란 '차별적인 언어 사용을 피하는 원칙'을 가리킨다. 가령 '살색'이라는 말을 금지하는 것이 PC의 사례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크레파스 세트를 사면 검정색, 흰색처럼 '살색'이라 이름 붙은 색의 크레파스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이는 '살색'으로 규정된 크레파스색의 스펙트럼을 벗어나는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에게 차별적인 단어가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오늘날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PC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가? 평등과 자유가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은 현대 사회에서, 차별적 언행을 몰아내자는 PC주의자들의 구호는 마땅히 박수 받을 운동이 아닌가? 벤 샤피로는 왜 그들을 그리도 지독하게 비난하는 걸까? 다음은 『세뇌』의 한 구절이다.


기이하지 않은가? 그동안 우리는 사람을 외모나 그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서가 아니라 능력과 행위에 따라서만 평가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제는 능력이 아니라 피부색과 신체적 특징을 보고 평가하라니?


PC주의자들의 원대한 사명은 소수자들이 혹여나 '불편할' 지도 모르는 모든 요소들을 모조리 이 세상에서 '박멸'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히어로 무비의 주요 배역엔 백인과 더불어 흑인도 반드시 출연해야 하며, 기업에선 여성이 소수가 되지 않도록 남녀의 성비를 동일하게 유지해야 하고, 미국의 명문 대학은 소수 인종도 대거 입학할 수 있는 특례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소수자들은 사회적 배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 받으며 자아 실현의 확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벤 샤피로는 이 같은 PC운동이 극단으로 치닫으면서 소수자에 의한 역차별이 심화되고 있다 주장한다. 왜냐하면 소수자가 느낄 지도 모르는 잠재적 '불편함'을 제거하기 위해선 '결과의 평등'이 필연적이고, 따라서 보다 능력 있고 탁월한 다수자들이 도리어 기회를 박탈 당한다는 것이다(위에 인용한 『세뇌』의 구절이 바로 이를 표현한 것이다). 게다가 소수자에 대한 편집증적인 배려는 도리어 소수자를 더욱 명확한 소수자가 만든다는 부작용이 있다. 쉽게 말해 PC 운동에 의해서 그들은 마땅히 배려 받아야'만' 하는 존재가 되며, 그들은 이제 자신이 가진 역량으로 '인정' 받기 보다 단지 피부색이나 소수자적 특성으로 인해 '배려' 받는 존재가 될 뿐이다.



사실 이런 말하면 내가 꼭 순진한 바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난 개인적으로 PC주의자들의 최초 의도가 그리 불순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마도 순수한 의도로 출발한 일부 PC주의자들은 단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맞서 싸우고 싶었을 뿐이며, 그들의 인권과 존엄성이 훼손 당하는 모습에 가슴 아파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PC주의가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운동으로 발전한 결과 우리가 맞이하게 될 부작용은 벤 샤피로의 지적 대로 다수자에게도 소수자에게도 아름다운 결말이 아니다. 사회 구조에 모든 탓을 돌리는 동안, 소수자들은 이제 어느 작은 불편함에도 맞서 싸울 수 없는 유아 상태가 된 것이다. 잘못된 사회 구조를 변혁하자는 운동과, 모든 책임이 사회에 있다는 허무한 무기력증을 혼동한 결과다. 불편함을 멸균함으로써 새하얀 세상을 이룩하고는 허약한 면역 체계를 얻은 것이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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