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업의 딜레마』, 크리스텐슨
https://www.youtube.com/watch?v=0SgPjpu6E00
세상엔 수많은 기업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저마다 일류기업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최선의 비즈니스 전략을 연구하며 오늘도 분투를 벌이고 있죠. 이를테면 그들은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여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도록 힘쓰고요, 또한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시장 보다는 성공이 보장된 시장으로 침투하려 노력합니다. 그러한 기본적인 비즈니스 전략들은 오늘날 경영 실무에서 무척이나 당연시 여겨지는 법칙들 중 하나이죠. 그런데 한 경영전문가는 전혀 다른 견해를 제시합니다. 그에 따르면 한때 잘 나가던 초우량기업들이 간혹 실패하고 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기본적인 비즈니스 전략을 매우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라고 하죠. 쉽게 말해 거대 기업들이 때때로 실패하는 이유는 리더의 무능력한 경영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탁월한 경영 능력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뛰어난 혁신 기술로 성장한 기업이 도리어 혁신하지 못해 실패하고 마는 딜레마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오늘의 책, 크리스텐슨의 『혁신기업의 딜레마』입니다.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슘페터는 그의 저서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를 통해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란 기술 혁신의 등장과 더불어 기존의 낡은 것이 파괴되고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과정을 뜻하죠. 가령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볼까요. 오늘날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혹은 영화를 시청할 수 있으며, 또한 클릭 몇 번으로 간편히 쇼핑을 하거나, 심지어는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스마트폰이라는 기술 혁신은 기존 기업들의 전통적인 사업 구조를 산산이 파괴하며 새로운 형태의 사업구조를 생성해내죠.
즉 창조적 파괴란 기존의 낡은 전통 산업을 파괴하고 새로운 산업 구조를 창조하는 기술혁신 주도의 사회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슘페터는 바로 이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 사회를 작동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진단했죠. 예컨대 흐르지 않는 고인물이 썩기 쉬운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 역시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기술 혁신을 하지 않는다면 금새 낡아 없어질 거란 이야기이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슘페터는 훗날 자본주의가 도리어 창조적 파괴로 인해 붕괴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창조적 파괴로 흥한 자본주의가 창조적 파괴로 인해 무너진다는 주장인데요. 그 이유를 쉽게 간추리면 기술 혁신을 통해 몸집이 불어난 기업은 더 이상 기술 혁신에 유용한 환경이 허락되지 않을 거라는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혁신 기업은 어떻게 커다란 몸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혁신 사업을 선도할 수 있는 걸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시대의 탁월한 경영학자 크리스텐슨의 이론은 무척이나 훌륭한 주석이 될 겁니다.
크리스텐슨은 그의 저서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통해 기술의 종류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존속적 기술이고, 또 하나는 파괴적 기술이죠. 그에 따르면 존속적 기술이란 기존제품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말합니다. 가령 통신사들은 인터넷 속도를 향상시키려 노력하며, 이어폰 제조 기업은 보다 좋은 음질을, 의자를 만드는 기업들은 보다 편한 의자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에 반해 파괴적 기술이란 기존 제품에 비하여 단기적으로는 성능이 떨어지지만 그 대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기자동차를 들 수 있습니다. 아직 전기자동차는 가솔린 자동차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부족한 성능을 보이지만 친환경 자동차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를 통해 크리스텐슨이 말하고 싶었던 바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초우량기업들이 간혹 사업상의 커다란 실패를 맛보는 이유는 그들이 존속적 기술 개발에만 매진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파괴적 기술을 보유한 신흥 기업들에 의해 시장지배력을 상실한다는 말이죠. 다만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초우량기업의 입장에선 존속적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입니다. 쉽게 말해 초우량기업은 최선의 경영 전략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파괴적 기술을 가진 기업에게 자리를 줄 수밖에 없다는 거죠.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 그들은 왜 존속적 기술에 투자하는가
초우량기업들이 존속적 기술 개발에 애쓰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소비자가 원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경영 전략에 따르면 자고로 기업은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여 상품에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고 하죠. 이를테면 소비자들은 더 빠른 속도의 인터넷과, 또는 더 안전하고 빠른 자동차, 혹은 보다 선명한 화질의 TV를 원합니다. 따라서 기업은 이러한 소비자의 수요를 면밀히 분석한 후에 소비자가 원하는 보다 좋은 상품을 생산하고자 존속적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거죠.
이러한 경향성은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더 두드러집니다. 그 이유는 주가 관리가 생명인 초우량기업들의 경우 적절한 기업 성장률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주가 하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죠. 가령 연간 영업이익이 10억 규모의 작은 회사라면 10%의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이듬해에는 11억만 달성하면 됩니다. 반면 한 해 영업이익이 1조에 달하는 초우량기업이라면 똑같은 10%%의 성장률을 위해 이듬해 1천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해야 하죠.
따라서 초우량기업들은 높은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대규모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펼칠 수 있는 최선의 경영전략은 이미 존재하는 시장의 소비자들에게 귀 기울이며 그들의 수요를 만족시킬 상품을 개발하는 존속적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크리스텐슨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존속적 기술에만 의지하는 기업은 별안간 파괴적 기술을 가진 기업으로 인해 시장으로부터 밀려날 거라고 말이죠. 그렇다면 대체 파괴적 기술은 무엇이고 왜 초우량기업들은 파괴적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 걸까요?
앞서 소개해드렸듯 파괴적 기술이란 기존 제품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존속적 기술과는 달리 단기적으로 제품의 성능이 떨어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대신 파괴적 기술은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특성을 보이죠. 단적인 예로 데스크톱과 노트북을 비교해 볼까요? 노트북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 컴퓨터 제조 기업들은 데스크톱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존속적 기술 개발에 주력했습니다. 이를테면 고화질 그래픽 카드나 대용량 하드, 탁월한 내구성 등 보다 고성능의 데스크톱을 만드는 것이 기업들의 주된 목표였죠. 그런 의미에서 노트북의 등장은 기존 데스크톱 기업들에게 큰 위협거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저화질의 그래픽카드와 저용량 하드는 물론이고 빈약한 배터리 기술로 인해 전원조차 오래가지 못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기존 컴퓨터 기업들은 노트북 시장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습니다. 기존 데스크톱 성능과 비교하여 현저히 부족한 노트북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노트북은 이동성 컴퓨터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합니다.
즉 고성능은 아닐 지라도 야외에서 컴퓨터 작업을 수행할 필요가 있는 소수의 소비자들이 작게나마 노트북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거죠. 뿐만 아니라 노트북 역시 시간이 흐르면 존속적 기술 개발을 통해 점차 성능이 향상될 것이며 시장은 넓어지기 시작할 겁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기존의 데스크톱 사용자들을 만족시킬 만큼 성능이 향상된다면 비로소 데스크톱 기업들은 시장에서 물러나게 되는 거죠.
여기서 크리스텐슨이 강조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기존 데스크톱 기업이 시장지배력을 상실한 이유가 결코 그들의 경영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꾸준히 데스크톱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했고, 또한 수요가 적은 노트북 시장에 진출하기 보단 이미 수요층이 두터운 데스크톱 시장을 공략했던 것입니다. 이는 소비자의 니즈에 귀 기울이며 확실한 시장에만 투자하려는 그야말로 정석에 가까운 경영 전략이라 할 수 있죠. 그렇다면 과연 초우량기업들은 파괴적 기술에 맞서 어떤 경영 전략을 펼쳐야 할까요?
초우량기업을 향한 크리스텐슨의 조언은 단순합니다. 파괴적 기술만 연구∙개발하는 조직을 따로 신설하라는 이야기죠. 다만 여기서 핵심은 파괴적 기술을 연구하는 조직이 기업으로부터 분리된 별도의 조직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존속적 기술과 파괴적 기술 사이에 상충하는 가치 체계 때문인데요. 예컨대 데스크톱은 이동성이 중요하지 않으므로 무게를 줄이는 데 큰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다소 무게가 나가더라도 고사양 고성능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한 가치 체계이죠. 따라서 데스크톱과 노트북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가치 체계는 결코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텐슨은 존속적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한 모기업의 영향을 받지 않는 별도 조직을 만들라고 권고하는 거죠. 실제로 IBM은 뉴욕 본사와 멀리 떨어진 플로리다에 자율 조직을 설립하여 PC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으며, 오늘날 구글과 같은 초우량기업들이 끊임없이 파괴적 기술을 내놓는 원동력도 이른바 스컹크웍스, 즉 본사로부터 독립된 비밀 프로젝트팀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크리스텐슨의 책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간단히 요약해보았습니다. 앞서 슘페터는 기업가들의 기술 혁신이 기존의 낡은 산업을 파괴하며 새로운 체계를 창조한다고 이야기했죠. 이를 크리스텐슨 식으로 해석한다면 기존의 낡은 산업은 파괴적 기술의 등장과 더불어 파괴되며, 이와 더불어 파괴적 기술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즉 둘의 생각을 종합하면 세상을 추동하는 힘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해내려는 이른바 혁신에 대한 의지라 할 수 있죠.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없다’고 여겨지는 대상의 관념 속에는, 그것이 ‘있다’고 생각되었을 때의 관념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베르그송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컨대 한창 수업 중이던 교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교실 벽면에 걸린 시계 위에 노란 벌 한 마리가 자리를 잡습니다. 선생님은 이를 모른 채 수업을 지속했지만 겁 많은 학생들이 이내 웅성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소란스러움을 감지한 선생님이 학생들이 바라보는 시계 쪽을 쳐다보며 뭐가 있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벌은 아이들의 소란에 이미 자리를 떠났고 이제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무것도 없다고 선생님에게 답하겠죠. 선생님 역시 시계만 덩그러니 있음을 발견하고는 수업을 이어 나갈 겁니다. 즉 아이들이 발견한 것은 벌의 ‘없음’이지만, 선생님이 목격한 건 시계의 ‘있음’이었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 ‘없다’라는 관념을 만드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있음’을 충실하게 경험한 사람만이 비로소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연인을 충실하게 사랑한 사람만이 연인의 빈 자리를 사무치게 아파할 줄 아는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학생들이 뒤늦게 시계 위에 벌이 있었다는 사건을 선생님에게 알린다고 해도 선생님이 지레 겁먹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선생님은 벌의 있음을 진정으로 경험하지 못했으니 말이죠. 이러한 ‘있음과 없음의 철학’은 존속적 기술과 파괴적 기술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존속적 기술은 이미 수요가 존재하는 시장, 즉 ‘있음’의 시장을 노리는 기술인데 반해 파괴적 기술은 아직 수요가 존재하지 않는 시장, 즉 ‘없음’의 시장을 공략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죠. 둘 중 파괴적 기술이 진정 파괴적인 이유는 ‘있음’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없음’이라는 관념을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스마트폰의 ‘있음’을 경험하지 못한 원시인들에게 스마트폰의 ‘없음’을 불편한 것이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즉 존속적 기술은 이미 존재하는 수요만 쫓아다니는 데 급급한 반면 파괴적 기술은 기존에 없던 수요를 새로이 창조하는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있음’ 속에서 ‘없음’을 발견할 수 있는, 그리하여 이 땅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여러분을 응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