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부터 밝혀라"

주희, 『대학장구』

by 혜윰

*유튜브 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MDn6iglfwow




사람들에게 숱한 기대를 하고, 또 무수한 실망을 반복할 때면 인간 그 자체에 모종의 염증 내지는 회의를 느끼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수 년 째 한결 같이 내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 직장 상사라던가, 혹은 상습적으로 데이트 폭력을 저지르는 연인이라던가, 그도 아니면 항상 내 뒤에서 나의 흉을 보는 죽마고우(?) 등 말이죠. 이처럼 사람들로부터 받는 상처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우린 마침내 이런 명제에 다다르기도 합니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아.'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사람이 정말 변하지 않는 존재라면 우리는 한 번 우리를 실망시킨 사람에게 다시 기대할 필요도 없진 않을까요. 인간이 변할 수 없다면 나를 실망시킨 바로 그 속성도 변하지 않을 테니 말이죠. 하지만 동양 철학의 전통에서 인간은 변할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됩니다. 다만 변하기가 무척 힘들 뿐이죠.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떤 변화를 소망해야 할까요? 개인의 수양과 수신에 대한 통찰을 담은 오늘의 책, <대학>입니다.








<대학>은 오늘날 사서삼경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만큼 그 지위가 대단히 높은 유교 경전입니다. 이는 본래 <예기>라는 경전 중 한 편이었던 <대학>을 중국 송나라 시대 주희가 한 편으로 독립시키며 지위가 격상된 것인데요. 다만 주희는 <대학>이 워낙 오래된 책이다 보니 소실된 부분이나 책 순서에 오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고, 따라서 <대학>의 내용을 보완하는 동시에 자세한 해설을 덧붙여 <대학장구>를 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희는 사서 중에서 가장 먼저 읽을 책으로 <대학>을 꼽을 만큼 그 중요성을 강조했죠. 주희에 따르면 <대학>은 곧 유교 철학의 뼈대라 할 수 있고, 그 이후의 책들은 살을 붙여 나가는 과정이라 합니다. 따라서 이 글을 보고 <대학>에 흥미를 느끼셨다면 <논어>와 <중용>, 그리고 <맹자>를 통해 유교 철학의 사유를 보다 풍성하게 채워 나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대학>을 통해 개인의 수양과 삶의 지향점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대학>의 구성을 한 줄로 요약하면 삼강령팔조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세 가지 강령과 여덟 가지 조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대학>의 내용이죠. 이 중 삼강령이란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거시적인 목표이자 방향에 해당하고요, 팔조목은 앞서 말한 삼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간단히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인간은 명명덕과 신민, 나아가 지어지선을 목표로 삼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명명덕과 신민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여덟 개의 조목들이 구체적인 실천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들 각각이 뜻하는 바에 대해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삼강령입니다. 삼강령은 명명덕, 신민, 지어지선을 가리키는데요. 천천히 순서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명명덕(明明德)이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명덕(明德)을 밝히라(明)는 뜻입니다. 여기서 명덕은 무엇을 뜻할까요? 주희에 따르면 명덕이란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신비스럽고, 어둡지 않은 마음(허령불매, 虛靈不昧)’을 가리킵니다. 현대식으로 풀이하면 ‘양심’이나 혹은 ‘선’이라고 할 수 있죠. 즉 <대학>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밝은 명덕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분별 없는 욕심(인욕, 人慾)으로 인해 명덕이 한 없이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명명덕이란 우리 안의 인욕을 다스림으로써 혼탁한 명덕을 다시 밝히고 회복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양을 통해 우리의 고장난 양심을 고치는 과정이죠.


그렇다면 그 다음 과제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명덕이 밝아졌다면 이제 다른 사람들의 명덕을 밝혀줄 차례이겠죠? 바로 그것이 공자가 말한 인의 실천이자,신민의 과정입니다. 말 그대로 사람을 새롭게 하는 과정, 즉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단계라 할 수 있는 거죠. 또한 그러한 수양을 평생토록 게을리하지 않고 지극한 선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것을지어지선이라 합니다. 이른바 궁극의 선에 이르고자 하는 노력이죠.





이리하여 삼강령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먼저 자신을 수양하고, 그 다음 타인에게 선을 실천하며, 끝으로 그러한 노력을 평생에 걸쳐 지속하는 것, 이것이 <대학>에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삶의 목표입니다. 여기서 우리가주목할 특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첫째로, 앞에서도 말했듯 <대학>은 인간의 ‘명덕’, 즉 선한 마음을 전제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악을 저지르는 것은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명덕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인 거죠. 이는 맹자의 성선설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맹자 또한 우물에 빠지는 아이를 비유로 들며 남을 불쌍히 여기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이야기한 바 있죠. 즉 인간은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덕을 밝힐 책임에 성실히 임한 자와 그러지 않고 방기한 자로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두번째 특징은 순차성입니다. 명명덕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신민의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거죠. 이를테면 히틀러를 떠올려 보십시요. 그도 나름대로 독일 시민들을 밝히겠다는 나름의 비전을 갖고 나섰을 테지만 정작 본인의 명덕이 어두운 상태로 신민에 임한 결과, 독일 사회는 참담한 대가를 치뤘죠. 즉 <대학>은 타인을 새롭게 하기에 앞서 자신의 명덕부터 회복하라는 수양의 순차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이 삼강령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이 바로 팔조목에 있습니다. 팔조목 중 격물, 치지, 성의, 정심, 그리고 수신으로 이어지는 수양의 과정은 명명덕을 실천하는 방법이고요, 이어서 제가, 치국, 평천하로 명덕을 확장하는 과정이 신민에 해당합니다. 이러한팔조목 역시 수양의 순차성을 따르죠. 또한 이 과정을 평생토록 지속하여 궁극의 선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것이 지어지선입니다. 그럼 이제 팔조목의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격물치지입니다. 격물이란 사물에 다가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그 사물에 담긴 본질과 원리를 철저하게 알고자 하는 거죠. 그러한 학습이 선행되었을 때에만 우린 사물에 담긴 이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즉 격물을 통해서만 앎에 이를 수 있는 거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주희의 인식론입니다. 주희는 모든 사물이 저마다 이치를 지니고 있다 생각했으며, 또한 인간에겐 그러한 이치를 파악할 수 있는 인식 능력이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사물의 이치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노력의 부족이라는 거죠. 다시 말해 인간은 누구나 격물을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격물치지를 통해 이치를 깨달았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리로만 아는 지식일 뿐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것을 행동하는 지식으로 실천해야만 하는데요. 바로 그 첫걸음이성의입니다. 성의란 뜻을 참되게 한다라는 의미로서, 즉 머리로 깨달은‘의’를 행동으로‘참되게’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만약 격물치지 하여 깨달은 이치를 머리로만 알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거겠죠. 즉‘성의’란 자신을 기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한자로‘무자기’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자신을 속이지 않고, 성의를 실천할 수 있을까요? 주희는 그 방법으로‘신독’을 강조합니다. 신독이란 혼자 있을 때에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올바르게 단속하는 것을 뜻하는데요. 이와 관련하여 잠시 <논어>에 담긴 구절을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즉 ‘신독’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형벌만 피하려고 들며 스스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사람으로 전락하기 마련이겠죠.





이로써 지금까지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철저히 노력해야 하며, 나아가 그러한 이치를 몸에 새기도록 스스로 마음을 단속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말처럼 잘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이치를 쫓을지라도 마음 속의 감정이 그것을 쉽게 흐트러뜨릴 때가 많기 때문이죠. 따라서 ‘성의’의 다음 단계는 마음을 다스리는 단계, 즉‘정심’입니다. ‘정심’이란 말 그대로 마음을 바르게 하라는 뜻인데요. 이때 우리가 주의할 감정은 다음의 네 가지입니다. 이것들은 때때로 우리 마음을 동요하게 하여 올바른 판단을 헤칠 수가 있으므로 늘 마음을 바르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





그 다음 단계는 드디어수신입니다. 수신을 한 줄로 요약하면 마음의 ‘편벽됨’을 바로잡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 편벽됨이란 다음의 다섯 가지입니다.



즉 이 중 하나라도 우리 맘에 있다면 마음이 편벽되어 올바로 판단할 수 없다는 거죠.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가령 상대방을 지나치게 외경하는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의 언행을 이치에 맞게 판단하지 못합니다. 존경심이 지나쳤던 나머지 그를 우상화하고 그 사람 자체를 새로운 이치로 여기게 되는 거죠. 이 경우 우리는 설령 그가 틀린 말을 할지라도 그에 대한 외경심 때문에 이를 분별하지 못할 겁니다. 따라서 수신이란 이 다섯 가지 편벽됨을 바로잡아서 우리의 명덕이 올바르게 발휘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참고로 정심과 수신의 차이를 잠시 언급하면, 둘 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점에서는 닮았지만, 수신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편벽된 마음을 바로잡는 겁니다. 즉 정심을 통해 먼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다음으로는 수신을 통해 타인에 대한 편벽된 마음을 다스리는 거죠.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인간은 타고난 명덕을 밝히는 명명덕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고, 그 이후 사람들에게 실천적 사랑을 베푸는 신민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며, 또한 이러한 노력을 평생 게을리하지 않는 지어지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중 명명덕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은 격물치지, 성의정심, 그리고 수신이 있습니다. 격물치지란 만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깨닫는 과정을 뜻하며, 성의란 깨달은 지식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단속하고 점검하는 단계입니다. 나아가 정심과 수신은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며 특히 타인에 대한 편벽된 감정을 바로잡는 수신의 과정을 통해 적극적인 신민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신민을 마저 간단히 살펴보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앞선 과정을 통해 자신의 명덕을 밝혔다면 이제 타인의 명덕을 밝혀줄 차례이겠죠. 그것이 바로 신민입니다.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단계이죠. 이러한 신민의 과정은 제가, 치국, 평천하의 세 단계로 진행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타인의 명덕을 강제로 밝힐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신민이라는 미명의 폭력과 다름 아닐 겁니다. 마치 히틀러처럼 말이죠.진정한 의미의 신민이란 상대방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명덕을 밝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신이 깨달은 의를 신민이랍시고 자녀에게 강제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는 그저 자식의 명덕에 따라 본을 보일 뿐이며, 변화의 주체는 자녀 본인이어야만 합니다. 자녀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더라도 부모는 자신의 부족한 수양을 탓할 뿐 자녀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리하여 가정을 덕으로 대하고, 그러한 가족윤리를 확장하여 국가 경영에 힘쓰고, 나아가 만인의 명덕을 밝히는 것이 제가치국평천하의 의미입니다. <대학>은 이러한 신민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로혈구지도를 제시합니다. 쉽게 풀이하면,‘자신의 처지로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을 뜻하는데요. 즉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도 권하지 않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만약 가정에서 이러한 마음으로 식구들을 대하고, 또 나라에서 국민들을 대하고, 나아가 천하의 모든 사람들을 혈구지도로 배려한다면 그것이 곧 세상의 명덕을 밝히는 것이며 지어지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대학>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대학>의 내용을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먼저 자신의 명덕을 밝히고, 그 다음엔 타인의 명덕을 밝히라는 거죠. 전자는 개인의 인을 수양하는 것이고, 후자는 인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정말 수양을 통해 변화할 수 있을까요? 만약 변할 수 없다면 우리가 굳이 이 오래되고 난해한 고전을 힘들여 읽을 필요도 없을 겁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에 대해 좋은 참고사항이 될 만한 연구 결과를 하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미네소타 대학의 토마스 교수가 진행한 쌍둥이 성격 실험에 따르면 인간의 성격은 약 40%에서 크게는 60%까지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이는 말 그대로 인간의 성격이자 바꿀 수 없는 기질에 해당하죠. 하지만 나머지 절반 정도는 후천적인 요인들, 이를테면 가정 환경이나 개인의 노력 등에 의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우리의 성품을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성격을 바꾸진 못할 지라도 성품을 가꿀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작은 일에도 화가 나는 다혈질적 성격을 바꿀 수는 없을 지라도 인내하는 성품을 가꾸어 나갈 수는 있다는 겁니다. 바로 수양을 통해 말이죠. 그러니 더 이상 타고난 천성을 핑계 대며 수양의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될 겁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명명덕은 선택이 아닌 의무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환히 비추고도 남을 밝은 명덕을 수양하시길 응원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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