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모상의 시대를 넘어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조제프 슘페터

by 혜윰

유튜브 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1m2TwHwdpqA






조지프 슘페터(이하 슘페터)는 칼 마르크스(Karl Marx, 이하 마르크스)가 사망한 18831) 트리시(Triesch)2)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입니다. 슘페터의 아버지는 직물 제조업으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자산가였으나, 슘페터의 나이 네 살 되던 해(188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1893년 헝가리군 육군 중장이었던 폰 켈러와 결혼하지만 1906년 무렵 이혼하며 약 14년 간의 결혼 생활을 또 한 번 마무리합니다.


슘페터에게 다행이었던 점은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새아버지 폰 켈러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귀족적 분위기를 맞보며 자랐다는 것, 그리고 학업에 대한 관심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슘페터는 1893년부터 1901년까지 당시 유럽에서 가장 귀족적인 학교로 알려진 테레지아눔(Theresianum)에 입학했으며, 그곳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그 밖에 상류 계층이 누릴 수 있는 습관과 취미를 익히는 혜택을 누렸습니다.




테레지아눔을 졸업한 슘페터는 1901년 빈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해서 경제학과3)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경제학에 한껏 심취한 슘페터가 특히나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당시 학계를 주름잡던 마르크스 이론입니다. 슘페터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존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의 이론적 모순을 발견하고자 부단히 애썼고, 그의 노력은 훗날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의 1부4) 내용을 이루게 됩니다.



슘페터의 젊은 시절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며 오스트리아 공화국 연립 정부가 탄생한 1919년 슘페터는 이 정부의 살림을 담당하는 재무 장관으로 발탁됐지만 7개월 만에 해임되고 맙니다. 1921년에는 민간 은행인 비더만 은행의 은행장으로 취임했으나, 1924년 은행이 파산한 데 이어 슘페터의 개인적인 투자도 실패하면서 오래도록 빚을 갚으며 세월을 보냅니다. 그후로 슘페터는 1925년부터 1932년까지 본 대학교(University of Bonn)의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며 강의와 글 쓰는 데 주력했고, 1932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초빙 제의를 받아들여 여생을 보냅니다. 슘페터 부임 이후로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는 황금기5)를 맞이합니다. 시간이 더 흘러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슘페터는 약 4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세상에 내보입니다. 말년의 슘페터는 사회주의의 이점을 알리고자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그러던 1950년 1월 7일, 대학 강의를 위한 원고를 손질하던 중 슘페터는 조용히 세상을 떠납니다.



슘페터는 1883년 태어나서 1950년 눈을 감습니다. 그가 경험한 세계는 엄청난 대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슘페터의 지적 각성을 일깨운 대표적인 사건을 몇 가지 나열한다면 제1차 세계대전(1914년 6월~1918년 11월), 공산주의 혁명(1917년 11월), 경제 대공황(1929년 10월), 제2차 세계대전(1939년 9월~1945년 8월)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굵직한 사건들입니다. 또한 이 사건들은 자본주의와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안긴 사건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목도한 슘페터의 머릿 속을 가득 채운 질문들은 ‘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한 질서일까?‘,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있을까?‘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본질과 한계를 집요하게 분석하기 시작했고,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깊이 탐구하기에 이릅니다. 즉 슘페터의 저서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는 시대적 상황에 당면한 그의 인식과 이해의 집약체라 할 수 있습니다.






1. 서론


앞서 말씀 드렸듯 이 책은 슘페터가 약 40여 년에 걸쳐 완성한 노작(勞作)으로 그 두께만 무려 700 페이지에 달합니다. 물론 그 두께의 위용(威容)은 결코 슘페터의 학문적 열정에 비할 바는 못 되겠으나, 한 장 한 장 켜켜이 쌓인 슘페터의 통찰을 고스란히 옮기기에는 본 요약서에 허용된 지면과 본 요약자의 역량이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따라서 본 요약서는 슘페터가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이하 자·사·민)>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핵심적 주제를 개략적으로 도식화하여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하며,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내용들은 과감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앞서 <자·사·민>의 목차를 간단하게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본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마르크스 학설

2. 자본주의는 생존할 수 있는가

3. 사회주의는 작동할 수 있는가

4.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5. 사회주의 정당들의 역사적 스케치


맨 처음 슘페터는 ‘1. 마르크스 학설’로 <자·사·민>의 서막을 엽니다. 그 이유는 당시 학계를 장악한 마르크스 사상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20세기 수많은 학자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계승하거나, 비판하거나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는데, 이는 곧 마르크스를 극복하지 않고는 자신의 주장을 올바로 펴보이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따라서 슘페터는 책의 시작부터 마르크스 이론의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본인의 이론을 펼칠 활로(活路)를 확보하고자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2. 자본주의는 생존할 수 있는가’에서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6)라고 분석하며,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로 인해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3. 사회주의는 작동할 수 있는가’에서는 자본주의의 붕괴 이후 도래할 안정적인 경제 체제가 사회주의임을 제안하며 그 근거를 제시합니다. 슘페터 사상의 백미(白眉)는 ‘4.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에 있습니다. 이 장에서 슘페터는 민주주의가 일종의 이상향이라고 생각하는 세간(世間)의 통념을 거스르며, 민주주의는 그저 올바른 경제 체제를 선택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끝으로 ‘5. 사회주의 정당들의 역사적 스케치’를 통해 실제 국가 사례를 들어 자신의 이론을 적용하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슘페터의 이론을 거칠게 약술(略述)하면 이렇습니다.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 때문에 발전하지만, 종래에는 역설적으로 창조적 파괴 때문에 붕괴하게 될 것이다. 그 붕괴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자연스레 사회주의로 이행하길 기대할 것이고, 이행을 위한 방법론으로서 민주주의가 긴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따라서 본 요약자는 위 논리 순서에 맞춰 ‘1) 자본주의의 발전과 붕괴’부터 ‘2) 사회주의의 대두’, 그리고 ‘3)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순으로 <자·사·민>을 요약하였습니다.





2. 본론


1) 자본주의의 발전과 붕괴




(1) 자본주의란?


경제학에서 때로 용어를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경제학의 발전 과정과 더불어 개념 또한 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같은 일이 비단 경제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가령 감기를 대하는 과거와 현대의 태도는 무척 다릅니다.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감기가 가지는 의의가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즉 개념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함께 변화하기 마련입니다.7) 뿐만 아니라 동일한 시대라하더라도 다양한 문화권에 따라 개념의 크고 작은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자본주의, 한국의 자본주의, 그리스의 자본주의가 완벽하게 동일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개념을 정의한다는 것은 각 항목들간의 차이점이 아닌 공통점에 주목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개념은 생성 이래 다소간의 변모를 거치며 오늘날 많은 학자들에게 논란의 불씨가 되어왔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저마다의 다양한 기준으로 이 둘을 정의내리고자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가령 어떤 학자들은 자본주의는 ‘자유’를, 사회주의는 ‘평등’을 추구한다며 정신적 가치에 주목하는가 하면, 또 다른 학자들은 자본주의가 ‘생산’에 집중하는 데 반해 사회주의는 ‘분배’에 주력한다며 물질적 관점에 주목하는 식입니다. 따라서 본 요약자는 다소 큰 범주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양분하고자 합니다. 이는 슘페터나 마르크스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의 견해와도 크게 이질감 없이 우리에게 다가올 뿐 아니라 본 요약서를 통해 살펴볼 슘페터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제법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기준은 다름아닌 ‘생산 수단’입니다. 자본주의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적극 장려하는데 반해 사회주의는 생산 수단을 개인이 가져선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생산 수단이란 마르크스가 제안했던 생산 수단8)을 뜻합니다. 생산 수단은 쉽게 말해 재화를 창출할 수 있는 수단 일체를 가리킵니다. 가령 회사라던가, 토지, 건물 등이 예에 해당합니다. 중요한 점은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는 단지 생산 수단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노동하지 않고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건물주가 되고 싶은 것도 생산 수단의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하지 않고도 세입자들로부터 받는 임대료로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 같은 경제 양식을 적극 지지하여 모두가 생산 수단을 갖는 체제를 긍정하지만, 사회주의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가 야기할 사회적 부작용을 주장하며 생산 수단을 개인이 갖는 것을 반대하는 체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생산 수단을 전면적으로 민영화한 국가나, 혹은 그 반대로 전부 국유화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로 다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의미를 따져본다면 방향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즉 생산 수단을 사유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느냐, 아니면 그 반대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노선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9)


지금까지 다소 넓은 개념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약술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슘페터가 사유했던 자본주의·사회주의에 대해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자본주의의 발전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동력이 ‘창조적 파괴’라고 생각했습니다. 슘페터가 주창한 창조적 파괴란 ‘끊임없이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내부로부터 경제 구조를 혁명화하는 산업상의 돌연변이 과정'10)입니다. 이는 현대인들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개념입니다. 오늘날 혁신, 혹은 기업가 정신으로 불리는 개념과 크게 유리(遊離)되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슘페터가 예로 든 사례 한 가지는 바로 철도 사업입니다. 철도화로 인해 운·수송이 용이해지자 주변 지역이 급속하게 도시화되며 농업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창조는 기존의 낡은 것을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주장입니다. 이 같은 혁신의 사례는 현대에서도 무수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물 인터넷 기반 냉장고라던가, 휘어지는 스마트폰 등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창조함과 동시에 기존의 낡은 것이 파괴되는 과정은 현대 사회를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창조적 파괴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슘페터가 제안한 요소들은 새로운 생산 방법, 새로운 기술, 새로운 수송 방법의 도입, 새로운 시장의 개척 등입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자본주의에서 시장은 끊임없이 확대·발전한다는 것이 바로 슘페터 주장의 기본 요체입니다.


이는 마르크스가 사유했던 자본가의 모습과는 매우 이질적인 모양입니다. 마르크스에게 자본가는 그저 노동자를 착취하는 주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1)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이룩한 업적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한 결과이며, 그 혜택은 자본가 계급에게만 돌아간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슘페터는 자본가 계급이 이룩한 업적이 창조적 파괴, 즉 혁신의 대가이며 그 혜택은 사회 전반으로 골고루 퍼진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우리가 스마트폰과 같은 문명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듯 말입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슘페터는 정부의 개입을 반대합니다. 정부는 다만 기업가의 혁신 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해줌으로써 자본주의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슘페터의 주장은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동시대에 태어난 케인스가 뉴딜 정책으로 학계의 인기 스타로 부상한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행보라 할 수 있습니다.



(3) 자본주의의 붕괴 : 창조적 파괴의 결과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줄이면 간단합니다. 먼저 생산 수단의 사유화를 적극 장려한다는 맥락에서 자본주의를 설명했고, 자본주의 질서에 속한 기업가들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자본주의를 발전시켜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단순해보이는 슘페터의 사상이 중요한 이유는 경제에 대한 이해를 정태적(靜態的) 경제에서 동태적(動態的) 경제로 끌어올렸다는 점입니다. 정태적 경제란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멈춰 있는 한 순간, 즉 정적인 상태를 가정하는 경제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바라본 경제는 그저 가격을 결정하는 ‘기업’과, 그 가격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소비자’만 존재할 뿐입니다. 다시 말해 공급과 수요가 서로 주고 받는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슘페터는 이를 전면 반박하며 경제는 동태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경제란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며, 그 내부 변화의 원동력이 바로 창조적 파괴에 의한 혁신이라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다시금 눈여겨볼만한 슘페터의 통찰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창조적 파괴 때문에 붕괴하리라는 주장입니다. 이는 방금까지 자본주의의 발달 원인이라고 내세웠던 창조적 파괴가 다시금 자본주의의 붕괴 원인이라는 역설적인 이야기입니다. 슘페터가 이러한 생각에 미치게 된 이유를 항목별로 나눠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기업의 관료주의화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새로 등장한 기업이 단기적으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합니다. 또한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해당 기업은 주변 중소 기업들을 흡수하며 거대한 대기업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몸집을 불린 대기업은 점차 관료주의로 흐르기 십상입니다. 기업 내 올바른 역할 분배가 없다면 의사 결정 과정에서 낭비되는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거대 기업 내에 속한 구성원의 업무는 창의적 재량을 발휘할 여지가 적어지며 혁신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 슘페터의 주장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창조적 파괴 덕분에 성공한 대기업은 관료주의에 이르기 쉬우며, 개인의 업무가 미분화됨에 따라 개인의 개성이나 창의력이 제한되어 창조적 파괴가 한계에 달한다는 것, 이로 인해 자본주의가 ‘내부로부터 붕괴’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즉 자본주의의 성공이 도리어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력을 몰락시키고, 나아가 자본가 계급을 몰락시킨다는 것입니다.


② 사유 재산과 계약 자유의 상실


또한 슘페터는 사유 재산과 계약 자유가 자본주의를 지탱해 주는 제도적 구조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자본가 계급의 몰락과 더불어 사유 재산과 계약 자유의 의미도 점차 희미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먼저 사유 재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슘페터는 1인 기업이나 가족 기업이 아닌 이상은 사실상 그 소유 개념이 희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주주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경영자와 소유자가 분리된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회사의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와 소주주, 그리고 월급을 받는 사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 대주주에 비교해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소주주들은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기업 경영에 적의를 갖기 쉽습니다. 또한 월급 사장은 대주주의 간섭과 통제에 따라 경영 의지가 방해받을 것이며,해당 기업이 자신의 소유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므로 최선을 다해 기업 경영에 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음으로 계약 자유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초기에 계약의 자유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개인이 기업과 체결하는 개별적인 계약을 의미했습니다. 이 경우 기업은 개인의 창의적 재량과 역량에 큰 관심을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관료화된 기업 내에서 계약이란 고정적이고 비개인적입니다. 쉽게 말해, 기업 내 속한 개인이 처리해야 할 업무는 이미 정량적으로 체계화 되어 있고, 개인은 그저 자신의 임금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밖에 결정할 게 없는 상황을 뜻합니다. 즉 슘페터는 사유 재산과 계약 자유의 개념이 희미해짐에 따라 해당 기업에 속한 개인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③ 교육의 확대 : 지식인의 불만


자본주의의 발달은 교육의 확대를 불러왔습니다. 사실 국가 차원에서 주도하는 공교육의 개념은 자본주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미약한 수준이었습니다. 중세 사회는 수도원에서 교육이 행해지기도 했으나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은 극소수였으며, 중세 도시에 존재했던 대학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가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교육이 확대된 계기는 대규모 산업 발전에 뒤떨어지지 않고자 하는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점차 일반 시민들도 교육의 혜택을 누리게 되자 슘페터는 또 다른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지식인이 양성된 나머지 지식인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없는 지식인이 대거 속출하게 되고, 슘페터는 이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적대적인 세력으로 성장하리라고 주장합니다. 즉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혁명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붕괴되리라고 예언한 것과 달리 슘페터는 이 지식인 집단이야말로 자본주의 붕괴에 앞장서게 될 계층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2) 사회주의의 대두


(1) 사회주의란?


이쯤에서 본 요약서 초기에 언급했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개념을 다시금 상기해보겠습니다. 자본주의란 생산 수단의 사유화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사회주의는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가령 국내 한 기업이 휴대폰을 만든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기업은 스스로 공장을 짓고, 사람을 고용하고, 어떤 제품을 얼마나, 어떻게 생살할지 독자적으로 결정합니다. 또한 생산 이후에 스스로 가격을 결정하여 시중에 내놓고,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해당 가격에 추후 변동이 따르기도 합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자본주의 기업의 모습입니다. 반면 슘페터가 <자·사·민>에서 정의하는 사회주의는 ‘생산 수단에 대한 지배권과 생산 과정에 대한 지배권이 중앙 당국에 속해 있는 제도적 유형’입니다. 즉 공장을 관리하는 것, 어떤 제품을 만들지, 또 얼마나, 어떤 기술을 사용해서 제품을 개발할 것이며, 가격은 어느 정도로 책정할지까지 모두 중앙 당국이 결정하는 것입니다.12)


중앙 당국이 존재함으로써 사회주의가 갖게 되는 이점은 불확실성에 비교적 잘 대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방금 자본주의 사례로 제시한 핸드폰 기업은 기업 내 의사 결정으로 생산량과 가격을 설정합니다. 만약 예상했던 것보다 제품의 판매가 저조하다면 기업은 막대한 피해를 떠안게 됩니다. 작게는 판매되지 않은 재고를 관리하는 데 드는 추가 비용부터, 크게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못해 실직자를 대거 양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시장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입니다. 하지만 중앙 당국이 존재한다면 핸드폰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숫자를 정확히 계산한만큼 필요에 따른 분배를 실시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실업자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중앙 당국에 의한 재배치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므로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훨씬 효율적입니다. 이어서 사회주의가 가지는 또 다른 이점은 사회 전반적 개선 속도13)가 매우 빠르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 질서 내에서는 개개의 기업에 따라 사회적 개선이 이루어집니다. 만약 한 기업이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제품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유익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앙 당국의 통제가 개입된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중앙 당국의 통제하에 해당 상품의 보급을 의무화하면 간편하고 신속하게 사회 개선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유로운 선택으로 해당 제품이 사회 전반에 퍼지는 더딘 속도를 중앙 당국은 압도할 수 있게 됩니다. 끝으로 사회주의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금을 두고 기업과 정부가 벌이는 신경전이라던가, 근로 조건을 두고 사측과 노조가 대립하는 양상에서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이 사회주의에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슘페터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2) 사회주의로의 이행


물론 이 같은 사회주의가 일순간 갑자기 도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질서에서 사회주의 질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성숙 정도이고, 또 하나는 사회주의를 추진하려는 세력들입니다. 슘페터는 이 두 요소의 상태에 따라 사회를 성숙 상태(State of Maturity)와 미성숙 상태(State of Immaturity)로 구분하며 전자의 예로 영국, 후자의 예로 러시아를 제시합니다.


① 성숙 상태에서의 사회화


성숙 상태란 ‘사회주의에 대한 저항이 약해지고,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데 협력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헌법 개정을 통한 평화적 방법으로 사회주의에 이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본 전제는 앞서 ‘(3) 자본주의의 붕괴 : 창조적 파괴의 결과’를 통해 말씀드렸듯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懷疑)가 사회적 분위기로 자리잡은 상태여야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자연스레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비로소 사회주의가 채택될 가능성이 마련됩니다. 이 같은 성숙 상태의 조건으로 슘페터가 나열한 요소들로는 관료 조직이 국가 명령에 잘 순응하는가, 노동자들은 잘 조직되어 있는가, 관료들의 문화·도덕적 수준은 높은 편인가, 정치인들은 성실한 편인가 등이 속합니다.


슘페터가 생각했던 성숙한 사회의 예시는 영국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산업계의 노동자 관리와 조직은 훌륭했고, 관료들은 문화, 도덕 수준이 높고 경험이 풍부해 국가의 활동영역이 확대돼도 충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또한 중앙은행은 재무성의 일부에 불과해 관리와 통제가 용이했으며, 보험도 국유화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고, 철도, 자동차 등의 운송산업, 탄광, 전기산업, 철강, 건축 등이 국유화 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즉 중앙 당국에 의한 통제가 용이해지는 추세였으며, 관료들은 만약 사회주의로 이행한다 하더라도 새로 부여받을 역할을 잘 감당해낼 수 있어 보였던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회 변화도 평화롭게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정부는 급격한 변동을 실행하지 않고 천천히 지배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 슘페터의 생각이었습니다.



② 미성숙 상태에서의 사회화


반면 물질적·정신적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사회화가 진행된다면 오로지 폭동에 의해서만 변화가 가능하다고 슘페터는 이야기합니다. 그가 든 예시는 바로 볼셰비키 혁명입니다.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은 사회 분위기에서 사회화가 진행되는 방법은 강제로 생산 수단을 탈취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 반대하는 세력은 군대를 통해 무력으로 진압하며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국가를 가득 메울 것입니다. 생산 수단을 강제로 탈취한 사회주의 세력의 다음 과제는 화폐를 마구 찍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는 자본가들이 소유한 화폐의 가치를 떨어트려 자본가 계급의 몰락을 가져오며, 이 과정에서 도산한 기업들을 사회주의 정부는 쉽게 인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동력이 다름아닌 창조적 파괴라고 주장합니다. 창조적 파괴란 혁신, 혹은 기업가 정신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새로운 상품이나 기술 등을 개발함으로써 해당 기업은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이 기업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 주변 기업들을 하나씩 흡수하며 거대한 하나의 기업이 됩니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업은 관료주의로 흐르게 쉽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기업 내 사원들은 개인의 창의력이나 개성을 발휘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며 결국 기업 성장은 한계에 다다릅니다. 게다가 자본주의로 인해 확대된 교육 기회로 인해 지식인의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그들은 원하는 일자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포화 시장 속에서 과연 자본주의가 합리적인 질서일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하게 되고, 생산 수단의 사유화를 철폐하는 방안을 모색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사회주의로 건강한 이행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성숙 상태에 이른 사회여야만 한다고 슘페터는 이야기합니다. 성숙 상태라 함은 노동자의 관리와 조직이 우수하며, 관료들은 새로 출현할 중앙 당국의 명령에 잘 순응해야하고, 생산 수단을 중앙 당국이 통제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적어야만 합니다. 만약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생산 수단을 강제로 탈취하는 폭동의 과정이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3)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앞서 약술한 바에 따르면 슘페터는 성숙 상태에 이른 사회만 사회주의로 올바로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빠뜨렸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경제 질서에서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질서로 변화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정치’를 통한 의사 결정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슘페터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탐구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와 더불어 보편적 질서로 자리매김했던 민주주의를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슘페터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동일한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바로 합리주의입니다. 민주주의란 합리적 의사 결정을 행사할 수 있는 개인의 총합이며, 자본주의 역시 이윤 추구를 기초로 합리적 경제 선택을 한다는 전제가 선행합니다. 이는 계급적 관점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자본주의의 출현은 봉건제도의 신분제를 타파했으며 자본가 계급이라는 새로운 계층을 낳습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 속한 구성원 모두가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게 된 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정치적 자유에 기반하여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슘페터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 굳건히 자리잡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파고들며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 혹 그렇다면 어떤 민주주의 양식이 필요할지 연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1) 고전적 민주주의와 슘페터 민주주의


슘페터는 그간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한 민주주의 양식을 고전적 민주주의라고 칭하며 본인의 민주주의와 철저히 구분합니다. 먼저 고전적 민주주의란 공동의 선(善)공동의 의지를 전제합니다. 즉 공동의 의지를 통해 공동의 선을 이루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고전적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러한 고전적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의지가 ‘공동의 의지’로서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자유와도 맞닿으며 시민들에게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집니다. 나아가 대중의 지지를 받은 고전적 민주주의는 마치 종교적 신념처럼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으로 사유되는 경향이 짙어졌고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해 시민들의 마음을 현혹하는 데 치중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슘페터는 전면적으로 반대 견해를 드러냅니다. 슘페터는 ‘공동선’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사회에서 하나의 공동선만 존재한다는 가정은 되려 사회적 혼란만 야기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공동의 의지에 대해서는 슘페터도 어느 정도 수용하는 입장을 취합니다. 다만 공동의 의지가 아닌 집단 의지로 순화합니다. 이는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 의지는 존재할 수 없으나, 여러 집단이 그들만의 독자적인 집단 의지를 가질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의사 협회, 간호사 협회, 장애우 협회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 의지는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그들 각각은 집단 의지를 지닐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슘페터는 이 같은 집단 의지가 정치적 요소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생명력이 불어넣어졌을 때만 가능하다고 부연합니다.14)


슘페터가 주창한 민주주의란 ‘정치적 지도력을 장악하기 위한 자유 경쟁’입니다. 여기에는 공동선도, 공동의 의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그저 정치적 결정에 도달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존재할 따름입니다. 고전적 민주주의와 비교해서 살펴본다면, 슘페터식 민주주의를 통해 결정된 정치적 사안은 고전적 민주주의와는 달리 꼭 ‘선(善)’일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최종 정치 결정을 내리기까지 진행된 시민들의 의견도 공동의 의지가 아닌 다수의 의견일 뿐입니다. 즉 슘페터의 민주주의에서 정부와 시민의 관계는 일종의 계약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민은 정부를 창설함과 동시에 폐지할 권한이 있으며, 정부는 시민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노력하는 기관으로 존재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를 새롭게 정의한 슘페터의 사상은 사회주의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슘페터 덕분에 민주주의는 무조건적으로 추구해야 할 공동선이 아닌, 더욱 올바른 정치적 결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로 사유할 여지가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도구가 올바로 기능하기 위한 조건으로 슘페터가 제안한 요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민주주의의 성공 요건


슘페터는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첫째, 정치인들이 높은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뜻하는 자질이란 단순한 업무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연한 사고를 통해 많은걸 흡수하고 동화할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정치인들을 통해 여러 집단 의지가 비로소 정치적 요소로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정치적 결정의 유효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해서는 안 됩니다. 의회는 표결에 부쳐진 문제에 대해 형식적이거나 감독적인 결의 정도로 법을 통과시켜야하며 지나친 권한 남용으로 법 집행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슘페터의 입장입니다. 셋째, 국민들은 민주주의적 자제(Self-Control)를 갖추고 법에 충성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국회의원이나 선거민은 협잡꾼에 농락당하지 않을 지적, 도덕적 수준을 갖춰야하고 여당은 정부의 지휘를 받아야 합니다. 게다가 투표자들은 정치인을 선출한 이상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1) 1883년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태어난 해이기도 합니다. 훗날 슘페터와 케인스는 1929년 경제대공황을 두고 각기 다른 이견을 보였으며, 훗날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 둘은 희대의 라이벌로 묘사하곤 합니다.

2) 슘페터가 태어난 트리시는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도시였으며, 현재는 체코령입니다.

3) 당시 유럽의 대부분 대학은 경제학이 법학부 내에 개설되어 있었으며, 법률에 관한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경제학과 정치학을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했습니다.

4)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의 1부 제목은 ‘마르크스 학설’입니다.

5) 오늘날 명실상부한 세계 일류 대학으로 손꼽히는 하버드는 사실 슘페터가 부임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제학 분야에서 이류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6)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은 말 그대로 파괴와 더불어 창조가 발생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조제프 슘페터가 가장 먼저 제안한 개념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후 본론을 통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7) 눈치 빠른 분들이라면 약간의 비약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나 현대나 감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만 변화가 생겼을 뿐 감기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감기의 본질을 현대만큼 밝혀낼 수 없었습니다. 이는 개념이라는 것이 항상 그 시대의 수준에서 최선의 것들로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8)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생산 수단이 노동 대상과 노동 수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9) 또 다른 흥미로운 관점은 세금을 토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만약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에게 황당할 정도로 높은 세율을 책정한다는 것은 해당 기업가가 소유한 기업(즉, 생산 수단)에 국가가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세금이 높을수록 사회주의적 경향이, 세금이 낮을수록 자본주의적 경향이 있다라는 비약에 이를 수 있습니다.

10)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변상진 옮김, 한길사, p. 184

11) 어린이의 매매에 대하여 노동자 계급의 부모들은 진실로 혐오스럽고, 철저하게 노예취급을 당하는 것 같은 특징들에 매우 익숙해 왔다. 그러나 위선적인 자본가들은… 그 자신이 창조하고, 영속화시키고, 이용하는 이 동물적 욕망을 정당화한다.',《자본론》1권 15장 3절

12) 마르크스가 주창한 공산주의에 대한 오해를 잠시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공산주의는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실 공산주의(마르크스 이론을 표방하며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속 공산주의 국가들)를 근거로 마르크스의 이론이 실패한 개념이라는 주장에는 다소간의 비약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이상적 공산주의 국가는 실현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자본론 공부>, 김수행 저, 돌베개, 2014)

13) 개선을 뜻하는 한자어는 ‘改善’으로 ‘고칠 개’와 ‘좋을 선’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슘페터가 이야기한 개선이란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암시하는 것으로서, 이는 자유로운 시장보다는 힘있는 중앙 당국이 통제할 때 더욱 실현되기 쉽다는 것이 슘페터의 주장입니다.

14) 집단 의지가 정치적 지도자를 통해서만 정치적 요소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가 떠올랐습니다. 그의 저서 <골든아워>를 보면 수 년 전부터 중증외상센터 의료 시스템 개선을 위해 애쓴 그의 노고는 정치 테이블에 안착하지 못한 채 여전히 부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감상


자본주의의 태동 이래 수많은 학자들이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언해왔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마르크스부터, 오늘 살펴본 슘페터, 또 가장 최근에는 토마 피케티에 이르는 학자들이 그 예입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합리적인 근거를 토대로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회의를 내비쳤으나, 그들의 예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본주의는 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변모하는 탁월한 능력을 뽐내왔습니다. 이는 비록 자본주의가 최선의 질서는 아닐지라도 그 대안을 고민하는 우리를 좌절시키는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슘페터는 절대적 도덕력을 가진 중앙 당국의 통제와 더불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더욱 합리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플라톤의 철인 정치가 실현될 수 없듯 절대적 도덕력을 가진 중앙 당국의 존재는 이데아에나 존재할 법한 발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아가 생산 수단의 생산 물품, 생산량, 생산 시기 등에 대한 결정권을 한 기관에 모조리 위임하고도 이 기관이 부패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다소 유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슘페터의 사상이 다시금 주목 받는 이유는 자본주의로 인한 부작용을 호소하는 고통의 목소리가 줄지 않는 탓입니다. 가령 임금 상승률이 자산 증식 속도에 한참 뒤진다던가, 소득 불균형으로 인한 극심한 양극화 등의 부조리를 우리는 익히 들어왔습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선사한 ‘자유’라는 선물을 ‘독’으로 삼킨 이들의 절규가 빚어낸 자본주의의 단면입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더불어 오늘날 사회주의를 입에 담는 것는 다소 금기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명실상부한 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 사회만 들여다보아도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의료보험이라던가, 국민연금, 심지어 세계적으로 큰 열풍을 끌고 있는 공유 경제 역시 일정 부문 사회주의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책입니다.


슘페터의 생각을 쫓던 끝에 이른 생각은 진리는 한 개인의 것으로 나타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과거에 사회주의만을 절대적으로 옹호했던 학자의 설명도, 혹은 자본주의만을 숭상했던 학자의 이론도 작금의 시대를 고스란히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이는 다양한 요소가 얽혀 어우러진 복잡계의 필연적 본질입니다. 즉 인간은 진리에 가닿을 수 없기에 비록 한 개인이 최선을 다하여 눈앞의 현상을 설명한다 할지라도 그 개인의 이론만으로는 우리 눈앞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옛 사자성어에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뜻하는 이 사자성어는 맹인들이 코끼리의 부분만 더듬거리며 그것이 전체인 줄 알고는 엉터리 추측을 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처럼 제아무리 뛰어난 학자여도 진리 앞에선 한낱 장님일 뿐입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적절한 태도는 더듬거리는 학자들의 성실한 이론을 종합하며 이 세계의 진리에 조금이라도 더 가닿고자 함이지, 맹인끼리 싸움을 붙이는 어리석음을 범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를 극복하며 보다 나은 현실을 모색하자던 슘페터의 민주주의가 오늘날 다시 읽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