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독』, 장경
*유튜브 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dtUDeMN4KOg
예부터 내려오는 인도 전설에 따르면 본래 인간은 신의 능력을 지닌 존재였다고 합니다. 다만 인간이 그 능력을 제멋대로 사용한 나머지 신들은 회의를 열었고, 그 결과 그들은 인간으로부터 신의 능력을 빼앗기로 결정했던 거죠. 이윽고 신들은 인간에게서 빼앗은 신의 능력을 어디에 보관할 지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를테면 깊은 산 속이나, 혹은 심해 속, 그도 아니면 높은 공중 등 다양한 후보가 거론됐죠. 하지만 흥미롭게도 최후에 낙점된 장소는 바로 인간의 마음 속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의 능력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고도 남을 욕망의 화신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마음은 소홀히 여기는 존재였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인간은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쾌락과 재물, 명예, 혹은 권력 등을 좇아 끝없이 바깥 세상을 부유하지만,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방법은 이미 인간의 마음 속에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삶의 주인이 되고 싶거든 자기 자신의 속마음부터 돌아보라 이야기하는 오늘의 책, 『신독』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두 가지 큰 특징은 분산과 통합입니다. 먼저 분산이란 개인주의의 확대를 뜻하는데요. 예컨대 오늘날 현대인은 국가 권력에 일방적으로 굴복 당하지 않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마땅히 누릴 수 있고요, 또한 개인 SNS 채널 등을 바탕으로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1인 가구의 증가와 더불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한 개인들이 늘어났죠.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마치 자기만의 왕국을 다스리는 독립된 존재로 여겨집니다. 둘째로 통합이란 통신 및 과학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과 만물의 연결을 가능하게 만드는 강력한 네트워크를 뜻합니다. 즉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을 넘어 사람과 사물, 심지어는 사물과 사물이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이른바 만물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거죠.
가령 첨단 냉장고는 부족한 식재료가 무엇인지 자동으로 분석하여 우리 대신 주문 배송을 진행하는가 하면, 첨단 에어컨은 머무는 사람의 체온에 가장 적절한 온도를 분석하여 최적의 실내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할 지 모릅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현대인은 단독자인 동시에 연결된 존재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일단 세계와 통합되기에 앞서 먼저 완전한 단독자로 홀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온전히 자립하지 못한 개인이 덜컥 세계와 통합 되었다가는 정작 자기 자신을 상실하게 될 지도 모르니 말이죠. 따라서 우리는 세상과 관계 맺기에 앞서 먼저 홀로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홀로 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동양철학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인심이고, 또 하나는 도심이죠. 먼저 인심이란 우리의 신체로부터 발생한 마음입니다. 이를테면 굶주림과 추위를 멀리하고, 배부름과 안락함을 가까이하고자 하는 마음이 인심이라 할 수 있죠. 반면 도심은 선천적으로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도덕적 본성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불의에 대하여 분노하고, 약한 자를 포용하는 사랑의 마음이 도심이라 할 수 있죠. 이를테면 굶주림에 허덕이던 한 사람이 끝내 남의 재물을 힘으로 갈취할 경우 그는 인심을 좇는 사람이라 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이 불의인 줄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도심을 따른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서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즉 인심은 눈앞의 이익을 좇게 하여 인간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반면 도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미하여 따르기가 어렵다는 설명이죠. 이는 포스팅 초반에서 소개한 인도의 전설 이야기와도 호응합니다. 전설 속 인간들은 신의 능력을 마음 속 깊은 곳에 품고 있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갔죠. 여기서 말하는 신의 능력이란 별 게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악에 대한 엄정한 심판이 신의 능력이라 할 수 있죠.
즉 자기 자신을 무한히 긍정하는 사랑의 마음과, 악한 마음을 단속하는 심판자의 정신이 바로 신의 능력인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신의 능력은 곧 도심과 다름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도심을 발견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사랑의 마음과, 악을 멀리하려는 심판자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마음, 즉 도심을 되찾음으로써 비로소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삶의 단독자로 진정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사사로운 인심에 쉬이 휘둘리지 않고 도심을 좇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심을 좇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도 못할 뿐더러, 악을 가까이 할 가능성이 매우 짙으니 말이죠.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마음 속 은미하게 존재하는 도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본래 타고난 인심을 좇도록 태어난 존재입니다. 예컨대 굶주리면 배를 채우고 싶어하고, 졸리면 눕고 싶은 것이 인간 본성의 당연지사이자 자기보존을 위한 생존 욕구라 할 수 있죠. 따라서 도심과 인심을 각각 선과 악이라 구분 짓는 단순한 이분법은 옳지 않습니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심은 반드시 필요한 본성이니 말이죠. 다만 인심은 나 자신의 보존을 위한 마음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사적인 마음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 지금 목마르다면 그건 순전히 개인의 목마름일 뿐 타인의 목마름일 수 없다는 이야기이죠. 따라서 『서경』은 인심을 위태롭다 말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존 욕구에만 충실한 사람은 타인을 위한 사랑을 베풀기 어려울 테니 말이죠. 이와 관련하여 『대학』은 ‘신독(愼獨)’이라는 수양법을 소개합니다. 풀이하면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신독은 홀로 있는 시간을 참되게 하여 자기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 태도를 뜻하죠. 달리 말하면 홀로 있을 때조차 인심을 좇지 아니하고 오로지 도심을 궁구하는 자세입니다. 쉽게 말해 마치 자기 자신의 마음을 ‘신’처럼 여기는 태도라 할 수 있죠. 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인간이 감히 함부로 행동할 수 없듯, 자기 자신의 마음을 신처럼 여기는 사람은 늘 몸과 마음을 단속하여 도심을 좇도록 애쓸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 속 도심이 행여나 인심에 물들지 않도록 마음을 돌보고 살피는 것, 바로 그것이 『대학』에서 말하는 신독이자, 온전히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는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신독』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삶의 진정한 단독자란 위태로운 인심을 좇지 아니하고 오로지 마음 속에 은미한 도심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또한 악을 멀리하는 심판자로 거듭나는 거죠. 단독자란 그런 것입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동시에 심판할 수 있는, 따라서 만물과의 연결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상실하지 않는 존재 말이죠. 반면 인심을 좇는 사람들은 세상과의 통합 가운데 너무나도 쉽게 휘청거리며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맙니다. 예컨대 준비하던 일이 조금만 삐끗해도 금방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휘청이며, 또한 본인을 향한 타인의 사소한 비난에도 금방 무기력해지고 맙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없으니 밖에서 조금만 흔들어도 위태롭게 흔들리는 거죠. 기형도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는 도심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과 같습니다. 도무지 자기 자신을 긍정할 줄 모른 채 한없이 외부 세계와 연결되기만 바라는 공허한 욕망 덩어리가 되어버린 거죠. 아무쪼록 신독을 통해 도심을 회복하여 세상의 흐름에 연연하지 않는 홀로 우뚝 선 삶을 살아 가시길 응원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