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공자
유튜브 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AF9NBkJ_6FM
오늘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릴 책은 그 유명한 <논어>입니다. 다들 너무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서점에 가면 손이 잘 안가는 책이죠. 그래서 여러분 대신 제가 논어의 핵심 개념을 간추리고 간추려 봤습니다. 이 글을 읽시고 혹시 흥미가 생기셔서 <논어>를 읽어보시는 분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아울러 <논어>를 읽지 않으실 분들에게는 이 한 편의 글만으로도 교양적인 수준에서 <논어>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들 위주로 구성을 해보았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논어>는 기원전 5세기 경 인물인 공자가 지은 책입니다. 정확하게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말을 기록하여 옮긴 책인데요. 공자를 소개하는 굵직한 키워드를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공자는 야합의 자식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이는 정상적인 부부 관계가 아닌 남녀에게서 나온 자식을 뜻하는데요.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무려 일흔살이 넘은 나이에 열여섯살의 안징재와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고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정통성을 꽤나 따지는 당시 문화에서 공자가 얼마나 험난한 유년기를 보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두번째, 공자는 현실정치를 굉장히 중시하는 인물입니다. 실제로 공자는 그의 노년기에도 자신을 사용해줄 국가를 찾기 위해 방방곡곡 떠돌아다니기도 하는데요. 이는 학자의 태도에 대한 공자의 단호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공자에게 학문이란 탁상공론 식의 학문, 즉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실제 세상에 유익함을 더하기 위해서 노력해야하고, 또 학자는 현실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선 안 된다는 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세번째는 ‘인’이라는 사상입니다. 사실 이 글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하고 싶은 딱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인데요. 이것은 공자의 핵심 사상이기도 하고, 또 논어에 담겨있는 가장 굵직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인’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마 ‘어질다’, 혹은 ‘인자’하다 라는 관념이 떠오르실 거에요. 그런데 정작 한자 구성을 살펴보면, 사람인과 두이가 더해져서 ‘두사람’을 뜻하고 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요? 왜 ‘인’이라는 한자가 ‘두사람’을 나타내고 있을까요? 공자가 의도했던 의미는 이렇습니다. ‘두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 즉 ‘인’의 뜻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 두 사람 중 한 명이 ‘나’라면 남은 한 명은 당연히 ‘내’가 아닌 ‘남’이겠죠. 즉 두 사람은 ‘나’와 ‘타자’를 뜻하는데요. 따라서 ‘인’을 실현한다는 것은 남과 하나가 되고, 나아가 가족과 하나가 되고, 국가와 하나가 되고, 세계와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인’의 중요한 특징은 ‘순차적'으로 진행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맨 먼저는 ‘나’를 수양하고, 나아가 가족과 하나가 되고, 다음은 국가, 나아가 세계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순차성입니다. 공자를 어느정도 계승한 학자로 알려진 맹자는 이러한 순차성을 우물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즉 ‘나’라는 우물을 가득채워야지만, 이웃한 우물들, 가령 가족과 국가로 물줄기가 흘러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론이 궁금해지는데요. 공자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학’을 통해 ‘나’를 수양하고, ‘효’를 통해 가족과 하나가 되고, ‘충’을 통해 국가와 하나가 되고, 마침내 ‘인’이 실현되었을 때 비로소 세계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논어>는 위 네 가지 방법론인 학, 효, 충, 인에 대한 구체적인 공자의 진술이 담겨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참고 말씀을 드리면, 아마 여러분들 모두 중학교 한문 시간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거에요. 이 말은 유교의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앞서 살펴본 순차적 사랑과 거의 비슷한 내용이죠.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면 머리가 지끈해질 수 있어서 그냥 <논어>와 <대학>에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기억하고 넘어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제 여러분들은 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정의를 알게 되셨어요. 인은 ‘두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를 수양하고, 가족을 효로 대하고, 국가에 충을 다하고, 세계와 하나가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도 인의 가장 첫걸음인 ‘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학이란 ‘배운다’는 뜻이죠. 공자는 배움이야말로 인으로 나아가는 첫단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논어의 첫 줄도 ‘학’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인데요. 이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해석이 됩니다. 학의 즐거움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 배움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공자는 다음의 여섯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예 악 사 어 서 수. 우리말로 옮기면 법도와 음악, 활쏘기, 승마, 글, 숫자 인데요. 물론 다 기억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이 여섯가지를 통틀어서 공자는 ‘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학문이란 것은 예악사어서수를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배우기만 하면 ‘학’의 과정이 끝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올바른 ‘학’의 길이란 예악사어서수를 ‘예’로 줄이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도출된 예는 ‘문’에 속해 있던 ‘예’와는 살짝 다른 개념인데요. 쉽게 정의하면, 현실 생활에서 적용 가능한 실천적 예를 뜻합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문’을 익힘으로써 단지 그것들을 지식으로 습득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치관으로 정립해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네 자로 줄여 박문약례라고 합니다. 문을 익히고 익혀 예로 줄인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이렇게 응축된 예를 가지고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데 통용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이관지입니다.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뜻입니다.
이쯤에서 예가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보충설명을 하고 넘어가도록 할게요. 공자에게 있어서 예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검이구요. 또 하나는 적시성입니다. 전자는 검소함을 뜻하죠. 이는 어떤 행동이 넘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후자인 적시성은 상황에 맞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행동의 옳고 그름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유연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개를 종합해보면 주어진 상황에 넘치지 않는 것으로 고를 줄 아는 태도가 바로 예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공자의 메시지가 잘 담겨 있는 <논어> 속 이야기를 한 편 살펴보실게요.
공자는 섬세하게 실로 짠 모자가 예에 합당할지라도 천으로 쉽게 짠 모자를 택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사회 속에서 규정된 법도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때에 맞게, 상황에 맞게, 자신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올바른 예가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자는 올바른 예를 지님으로써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자성어를 더 소개해드릴게요. 바로 극기복례입니다. 사실 우리가 박문약례를 통해 예를 깨달았다 할지라도 현실에서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죠. 수많은 유혹도 있을 것이고, 내 안에 좋지 않은 욕망도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극기복례란 그러한 욕망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예를 따라야 한다는 정신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먼저는 학의 실천, 박문약례를 통해 많은 학문을 익히고 그것들로붜현실 생활에 적용 가능한 하나의 세계관을 정립해나가야 하고요.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극기복례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궁극에 다다른다면 ‘나’를 죽이고 ‘인’을 이루는 살신성인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해서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핵심 사상을 개념적으로 정리해보았는데요. 이런 개념들이 실제 논어를 독해할 때 과연 적용 가능한지, 혹은 여러분들이 서점에 가서 논어를 읽을 때 앞서 배운 개념들을 적용하실 수 있도록 <논어>에 나오는 구절을 직접 살펴볼게요.
이 이야기는 논어 5장, 공야장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미생고라는 사람의 집에 한 친구가 식초를 빌리러 온 모양이에요. 그런데 미생고는 자신의 집에 식초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웃집에까지 가서 식초를 빌려옵니다. 자신의 친구에게 식초를 주기 위함이죠. 그런데 공자는 미생고의 행동이 ‘곧’은 행동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의 핵심은 공자가 미생고의 행동을 탐탁지 않게 여긴 이유일텐데요. 과연 왤까요? 힌트는 인의 속성 중 ‘순차적 사랑’에 있습니다. 이제 눈치를 채셨나요? 즉 다시 말해서 미생고가 친구에게 도움을 준 것은 가족을 먼저 지켜야 한다는 인의 순차성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공자는 미생고의 행동을 비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공자가 순차적 사랑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지속가능성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공자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대단히도 독려하는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인물입니다. 즉 실천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공자의 큰 관심사였다고 할 수 있는데요. 미생고처럼 자신의 가족보다도 친구를 먼저 챙기는 행위가 반복된다면 나중에는 가족도, 친구도 챙길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미생고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은 오늘날에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박문약례의 과정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 같은데 ‘충’의 단계로 넘어가서 정치를 한다거나, 혹은 가정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사회가 어떠니, 정세가 어떠니 하는 사람들 말이죠. 아마 공자 눈에 띄었다면 미생고처럼 크게 구박을 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거의 막바지에 왔습니다. <논어>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인 ‘조문도석사가의’라는 말을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다. 이는 우리말로 쉽게 해석하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강신주 작가는 '아침에 도를 깨달았음에도 그 죽음의 시간을 저녁까지 유보한 이유는 실천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라고 설명 합니다. 즉 머리로만 깨달은 도는 반쪽짜리 지식에 불과하며, 그것을 삶으로 실천해 내야 비로소 도가 완성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자의 인 사상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을 겁니다. 다만 학습을 하는사람들이 가져야할 태도에 대한 좋은 고민 거리를 준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가 가장 멀다고 했었죠. 공자의 실천적 자세를 보고 있자면 '안다'라는 것과 '한다'라는 것의 차이를 돌아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지식은, 혹은 학문은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볼 수 있는 글이 되었길 바라면서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