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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ul 29. 2021

능력주의 넘어:세습된 능력

『승자 독식 사회』,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유튜브 해설: https://www.youtube.com/watch?v=QQjCAmeu-c0&pp=sAQA




태어날 때부터 많은 것들이 정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령 농부의 자식은 밭을 갈아야 했고, 귀족의 혈육은 하인을 부리는 법을 배워야 했죠. 이처럼 부모의 직업이나 신분이 대대로 물려지는 질서를 <세습주의>라고 합니다. 세습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는 자신의 타고난 처지를 운명으로 여기며 불만을 품지 않는 안분지족의 자세이죠. 이때 사람들은 부모 세대의 삶을 비슷하게 반복하는 삶을 살았으며, 계층 이동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에 등장한 <능력주의>는 기존의 신분제 사회를 무너뜨리는 무척이나 파괴적인 개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신이 아닌 능력이 중요해짐에 따라 누구나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죠. 오래전 아메리칸 드림이 강조했던 것 역시 바로 <능력>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이 <기회의 땅>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도 누구나 능력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던 거죠. 그렇다면 과연 능력주의는 과거의 세습주의를 완벽히 대체하는, <흠결> 없는 질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유 경쟁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격차가 결국 승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오늘의 책,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의 『승자독식사회』입니다.






1.

승자독식사회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부는 무척이나 <편중>되어 있습니다. 가령 2020년 3월 기준 대한민국의 가구당 순자산은 상위 20%가 평균 11억 2천만원, 하위 20%가 평균 675만원으로, 무려 166배에 달하는 격차를 보인 바 있습니다(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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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또한 미국의 정책연구소(IPS)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12인(제프 베조스,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워렌 버핏, 스티브 발머, 래리 엘리슨, 레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앨리스 월턴, 짐 월턴, 로브 월턴)의 재산 합계(1조 150억 달러)는 벨기에와 오스트리아, 두 나라의 GDP를 합친 것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하죠.










저자는 이러한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의 원인을 승자 독식 현상으로부터 찾습니다. 승자 독식이란 말 그대로 각 분야의 <승자>들이 부를 독식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일례로 <연예계>의 경우를 살펴보면, 2015년 ‘탤런트’로 수입 신고를 마친 만 오천여 명 중 상위 1%의 연평균 수익은 약 19억 5천만원, 하위 90%는 약 700만원이라고 합니다. 즉 상위 1%(154명)가 전체 수입의 약 46%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90%의 수익은 한 달 평균 약 60만원 불과한 수준이죠(국세청, 2015).




이러한 현상은 비단 연예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스포츠계와 법조계, 의료계, 심지어는 교육계에서도 소수의 <승자>가 전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경쟁이 허락된 사회에서 <승자>가 더 많은 보상을 차지하는 것은 능력주의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요? 요컨대 1등은 그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므로, 따라서 1등이 가장 많은 보상을 차지하는 것은 합리적이라는 발상입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승자 독식은 <능력주의>로만 설명하기에는 다소 지나친 구석이 있습니다. <승자>가 받는 보상은 그의 능력에 비해 다소 과잉된 측면이 있으며, 또한 <패자>가 받는 보상은 그의 능력에 비해 때때로 모자란 측면이 있기 때문이죠. 예컨대 미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2019년 미국의 상위 350개 기업 CEO들의 평균보수(2130만 달러, 252억원)는 일반 직원(6만 7천 달러, 7900만원)과 비교해 무려 320배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물론 기업 내 CEO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소득 격차는 <능력에 따른 분배>라고만 설명하기에는 다소 기형적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애초에 승자 독식 사회가 불합리한 구조적 문제를 함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거죠. 이러한 접근 속에서 저자는 먼저 승자 독식 사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승자 독식 사회란 상대 평가에 의한 보상과, 그 보상이 소수에게만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즉 승자 독식 사회에서 <능력>이란 절대적 능력이 아닌 상대적 능력—승자 독식 시장과 다른 시장을 구별하는 가장 핵심적인 차이—이며, 또한 <보상>은 상대적 능력이 가장 뛰어난 소수에게만 집중적으로 주어진다는 이야기이죠. 그렇다면 승자 독식 사회란 대체 어떻게 발생하며, 또 어떤 부작용을 지니고 있을까요?






2.

원인과 부작용



승자 독식 사회가 발생하는 첫 번째 배경은 <낮아진 담장>입니다. 운송비와 관세가 하락함에 따라 오늘날 세계 각국의 상품들은 자유롭게 바다 건너 거래되고 있으며, 또한 정보통신의 발달과 더불어 영화나 음악 등 수많은 콘텐츠가 국적에 상관 없이 각축을 벌이고 있죠. 즉 국가 간의 담장이 허물어지며 시장은 전례 없이 확대되었고, 소비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 최고의 상품들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공할 수만 있다면 세계 무대 전체를 독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죠.



이어서 두 번째 배경은 <사회적 비교>입니다. 이는 쉽게 말해 <승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대외적 비교로 인해 폭등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농구의 전설로 남아있는 마이클 조던은 그가 속했던 팀(시카고 불스)이 우승하는 데 매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여도(혹은 능력)를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계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며, 따라서 조던이 속한 구단은 다른 구단의 연봉 수준을 참고하여 선수의 연봉을 결정하게 됩니다. 즉 구단들의 비교 속에서 <승자>들의 보상은 경쟁적으로 상승하게 되며, 이때 <승자>들이 받는 보상은 온전히 <능력>만으로 산출된 보상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세 번째 배경은 <연결망 경제>입니다. 요컨대 한 기업이 자사의 인기 상품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다른 영역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기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령 평범한 메신저 어플로 시작한 카카오가 오늘날 수많은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모습을 예로 들 수 있죠. 그렇다면 이러한 승자 독식 현상은 결과적으로 어떤 부작용을 야기하게 될까요?



승자 독식 사회의 부작용 첫번째는 경쟁자의 과잉 유입입니다. 간혹 언론을 통해 <승자>들의 엄청난 보상이 화제가 되고 나면, 각 분야에 수많은 지원자들이 몰리곤 하죠.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승자>의 혜택을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이는 경제학적으로도 대단히 비생산적인 인력 배치입니다. 경쟁자가 유입될수록 각 개인이 성공할 확률은 떨어지며, 또한 별로 뛰어나지 못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다른 생산적인 경력을 쌓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훨씬 유익한 일이기 때문이죠. 두번째 부작용은 낭비적 소비입니다. 재차 이야기했듯 승자 독식 사회는 절대적 능력이 아닌 <상대적 능력>이 중요한 시장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질문은 <나는 뛰어난가?>가 아니라 <나는 남들보다 뛰어난가?>이죠. 즉 사람들은 자신의 절대적 능력에 만족하지 않고 상대적 능력 격차를 만들어 내기 위해 비생산적인 소비에 몰두합니다. 예컨대 운동 선수들은 남들보다 나은 기록을 위해 스테로이드를 주입하여 장기적으론 자신의 건강을 상하게 하고, 또한 수많은 기업들은 단지 소비자들의 눈에 띄기 위해 수십억의 광고비를 지출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마치 <군비경쟁>과 같습니다. 한 나라가 자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군사비를 증강하면 이웃한 국가에서도 경쟁적으로 군사비를 증강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연쇄적으로 수많은 국가들이 낭비적인 군비경쟁에 뛰어들게 되죠. 만약 그러한 국가 예산이 세계 보건에 쓰인다면 훨씬 유익하고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세번째 부작용은 문화 다양성의 파괴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문화 콘텐츠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기업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좀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기 쉽습니다. 이때 주의 깊은 관찰과 사색을 필요로 하는 콘텐츠들은 사장되기 마련이며, 이로써 문화 다양성은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는 주장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승자 독식 사회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3.

승자독식의 대안



저자가 제안하는 첫 번째 대안은 다양한 군축협정입니다. 과도한 경쟁이 결과적으론 모두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협상과 규칙을 통해 <유혈 결쟁>을 예방하는 거죠. 예컨대 스포츠계에서는 선수에게 지급하는 연봉에 상한선을 두거나, 혹은 각 팀이 보유할 수 있는 선수의 수를 제한하는 등의 규칙이 존재하며, 또 정치계에서는 선거법을 통해 선거 후보자의 과도한 물량 공세를 예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제도들이 목표하는 바는 각 분야에서 발생 가능한 낭비적인 투자를 억제하는 것입니다. 가령 A 선수가 불법 약물을 투약한다면 그는 B 선수보다 더 탁월한 <상대적 능력>을 갖게 되지만, 덩달아 B 선수도 불법 약물을 투약할 경우 둘의 능력치는 불법 약물을 투약하기 전과 동일합니다. 즉 두 선수의 투자는 서로에 의해 상쇄되어 서로의 건강만 망가뜨리는 낭비적인 투자이므로 규칙을 통해 <허무한 경쟁>을 방지하자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두번째 대안은 누진 소비세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쉽게 말해 소비를 많이 할수록 세금도 많이 부과하자는 발상입니다. 저자가 이를 통해 기대하는 바는 과시적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활성화하며, 나아가 <승자들의 보상>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세번째 대안은 일부 영역에서 소득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소득이 더 많은 사람이 더 화려하고 값비싼 옷을 입는 것은 무관하지만, 의료 서비스나 법률, 교육, 혹은 최소한의 식량 등에 관해서는 소득 수준으로 인한 차별을 줄여 나가야 한다는 발상입니다. 즉 소득 격차가 삶의 질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영역에 대해서 국가적 차원의 복지 제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설명이죠.











이로써 오늘의 책 『승자독식사회』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승자 독식 사회는 능력주의(엄밀하게 말한다면 상대적 능력주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즉 능력이 뛰어날수록 더 큰 보상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시되죠. 이러한 능력주의적 질서는 과거에 사람들에게 기회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세습주의를 무너뜨린 훌륭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능력주의는 세습주의적 성격이 뒤섞인 세습·능력주의적 특성을 보입니다. 요컨대 특정 능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문화/경제적 자본이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세습되기 때문이죠. 가령 한국의 대학들은 성적순으로 입학 가능하다는 점에서 능력주의를 표방하지만, 수험생들이 누리는 교육의 질은 부모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곤 합니다. 즉 부모의 능력이 자녀의 능력으로 세습되는 거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능력주의를 전면적으로 폐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당장 능력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더 공정한 대안을 마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따라서 우리는 능력주의의 기조를 유지하되, 다만 능력을 갖출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사각지대를 위해 다양한 복지 정책을 논의해야만 합니다. 즉 경쟁은 인정하되 경쟁의 규칙을 까다롭게 관리해야 하며, 또한 경쟁에서 패배하거나 혹은 참가조차 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원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컨대 자동차가 강자이고 인간이 약자인 도로 위에 법이 없다면 도로 위의 자유는 약자인 인간에겐 억압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힘의 서열이 존재하는 환경에서는 법과 규칙이 필연적이라는 이야기이죠. 아무쪼록 <승자>의 탁월한 능력이 존중 받는 동시에 <패자>를 위한 튼튼한 사회안전망이 존재하는 건강한 능력주의를 소망하며 포스팅을 마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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