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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Aug 16. 2022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정의 중독 』, 나카노 노부코


이따금 공적 인사들의 추문이 언론에 드러날 때면 여지없이 분노에 찬 여론이 들끓고는 한다. 이는 현대 시민의 <정의> 의식 관점에서 보자면, 다시 말해 부당함에 분노하고 맞서 싸우는 것이 선진 시민의 의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이 같은 대중의 분노에 문제제기를 하기란 꽤나 눈치를 살펴야 할 일이랄까. 그러나 때때로 대중의 분노 양상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볼 때면 그들이 정말 분노하는 목표물이 무엇일지 의아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가령 범죄를 저지른 이의 배우자 및 가족 신상까지 털어서 온라인에 공개하는 행위나, 혹은 특정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성별에 주목하고 이를 해당 성별 일반의 성질로 파악하여 종국에는 성대결 양상으로 확대시키며 급기야 혐오를 긍정하는 행위 등이 그러하다. 이 얼마나 부지런한 자들인가. 그렇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의 <정의관>에 옳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는 점에서 매우 부지런한 자들이다. 나는 그들의 부지런함이 신기했다. 정의를 부르짖는 성난 목소리의 꾸준함이 놀라웠다. 그래서 궁금했다. 부당함에 분노하는 그들의 분노는 과연 얼만큼이나 합리적일까.



몇 달 전 선거가 있었다. 개표가 한창이던 저녁 19시 쯤 유튜브를 통해 한 유튜버가 실시간 제보영상을 스트리밍했다. 해당 영상은 부정 투표가 의심되는 정황을 제보하는 영상이었고, 그 영상이 사실일 경우 그와 관련된 후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법한 영상이었다. 역시나 영상의 댓글란에는 분노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모두 해당 후보의 도덕성을 질타하는 댓글이었다. 나의 지인 중 한 명도 내게 연락이 왔고 그 내용 역시 특정 후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1시간 쯤 지났을까. 해당 영상이 의심의 표적으로 삼았던 정황은 혐의없음으로 종결됐다. 이는 해당 영상을 스트리밍한 유튜버가 대동한 변호사 역시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바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대중의 분노는 철회되지 않았다. 여전히 나의 지인은 해당 후보에게 분노하고 있고, 스트리밍 완료 후 자동 업로드된 영상의 댓글란엔 날선 분노의 검들이 지칠 줄 모르고 춤을 추고 있다. 분노를 일으킨 원인은 소명되어 사라졌으나 분노라는 결과는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는 애당초 대중이 분노한 원인과 결과가 서로 잘못 맺어져 있다고 분석함이 논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즉 해당 영상은 뭇 시청자들이 분노한 원인이 아니다. 그들은 진작 분노해 있었고, 영상은 그저 그들의 분노를 개연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잔뜩 성이 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일본의 뇌과학자 나카노 노부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뇌는 범법자나 배신자 등 누가 봐도 비난받아 마땅한 대상을 찾아 벌하는 데 쾌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다. 타인에게 '정의의 철퇴'를 가하면 뇌의 쾌락중추가 자극을 받아 쾌락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 쾌락에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지 못하며, 항상 벌할 대상을 찾아 헤매고 타인을 절대 용서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상태를 정의에 취해 버린 중독 상태, 이른바 '정의 중독'이라 부른다. 인지 구조가 의존증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의 중독 』, 나카노 노부코, p.8~9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그저 <쾌락을 느끼기 위해> 분노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러하다면 우린 외견상으론 정의를 외치고 있지만, 그리하여 <부정의>가 부재한 사회를 꿈꾸는 듯 착각하고 있지만, 실은 부정의의 종말이 도래해선 안 될 일이다. 쾌락적 분노의 지속을 위해선 그 재료가 될 <부정의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뗄감이 없는 장작불은 꺼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혹은 분노하는 사람들의 뇌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벼이 읽어보길 권한다(참고로 책의 내용은 그다지 학술적이진 않다).









1.

마녀사냥의 희열, 인터넷 시대의 정의 중독



SNS는 정의를 좇는 이들의 신나는 놀이터다. 뉴스든 유튜브든 당장 아무 콘텐츠나 클릭하여 댓글을 확인해보라. 정의로운 자들의 활발한 활동을 목격하게 되리라. 그들은 SNS를 통해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정의 검열>을 실시간으로 실시한다. 요컨대 피평가자의 행위가 정의로운지 그렇지 않은지 평가하는 검열 의식이다. 가령 해외 여행 중인 배우가 관광지에서 촬영하여 개인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사진을 더러 그것이 해당 관광지의 규범을 어긴 것은 아닌지부터 시작하여, 아파트의 공유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공용 마당에 커다란 풀(pool)을 개인적으로 설치하여 가족들과 물놀이를 하는 것이 이기적인지 등을 평가하는 등의 의식이다.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행위가 실제로 도덕적인지 아닌지 따위가 아니다. 저자가 흥미롭게 바라보는 지점은 일군의 대중이 그러한 평가 행위에 <아주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현상 자체>이다. 그의 말대로 온라인 공간에서 다수의 정의 운동가들은 나름의 신념을 기준으로 다양한 사태를 평가하고 비판한다. 자기 자신의 현실적 세계와 무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피를 토하듯 피해자를 대변한다. 그들은 대체 왜 그토록 열성적으로 정의로운 것인가. 정의로움은 인간의 도덕적 본능인 걸까.



사실 사태는 그리 간단치 못하다. <대중>이라는 두 글자는 수없이 다양한 정의 기준을 가진 익명의 다수를 묶어내는 기만적인 단어이니 말이다. 실상 온라인 공간에는 충돌하는 정의관을 지닌 다양한 개인들이 존재하고, 따라서 동일한 사태(애초에 사태를 동일하게 바라보지도 않겠지만)를 각자 다르게 평가하며, 따라서 평가자-피평가자의 갈등이 종국에는 평가자-평가자의 갈등으로 번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이러한 온라인 공간의 편가르기 현상이 현실 세계에도 적잖이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온라인 공간에서 발견되는 <정의로운 분노>의 만연함을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온라인에 전시되어 있는 분노를 이따금 거리에서 발견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니 그들의 정의로운 분노를, 혹은 우리 내면의 <정의 중독>을 조금 더 면밀히 고찰해볼 필요는 충분해 보인다.







2.

정의의 기준은 집단마다 다르다



아무래도 책의 저자가 일본 국적인 탓에 저자가 관심을 갖고 분석하는 대상 역시 일본 사회로 제한된다. 일본의 인터넷 문화 역시 한국의 그것처럼 <정의 중독자>들의 각축인 걸까. 여하튼 저자는 일본의 정치적/지리적 맥락을 통해 일본인의 집단주의적 성격을 규명하고자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과거 에도 시대 쇄국 정책을 시행했으며, 그로 인해 외부로부터의 식량 수입이 제한됐다. 또한 대내적으론 이용 가능한 토지를 모두 식량 생산에 활용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외부로부터의 유입이 없는 상황에서 재해라도 발생하여 대내 식량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대기근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기치 못한 재난에 대비하기 위하여 집단의 화합을 중시하는 문화가 장려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실제로 일본은 대기근으로 인해 100만 명이 목숨 잃은 역사가 있음이 저자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현행 교육 풍토를 보더라도 독특한 괴짜보다는 교내 질서를 잘 따르는 평범한(normal) 모범생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요컨대 집단내 최빈값에 수렴하는 <평범함>이야말로 훌륭한 덕목으로 권장되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 사회에 팽배한 집단주의적 문화가 그들의 <정의 중독>에 적잖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파악한다. 정도(regular)에서 벗어나는 이상한(irregular) 사람들은 곧장 정의의 몽둥이로 뭇매를 맞곤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화는 비단 일본만의 것은 아니다. 독특한 개인이 집단의 괄시를 받는 현상은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발견되니 말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 가히 선두를 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못 믿겠다면 지금 당장 온라인 공간의 악성 댓글들을 살펴보라. 성격이 유독 밝다는 이유로, 웃음 소리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목소리가 얇다는 이유로, 혹은 옷을 조금 유별나게 입는다는 이유로 허무맹랑한 비난이 생산되고 있다. 이는 집단주의적 문화에 젖은 이들의 무의미한 분노인 경우가 많다.






3.

인간은 왜 타인을 용서하지 못할까?



"인간은 본래 자신이 속한 집단 외의 것은 받아들이지 않고 공격하는 습성을 지녔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도파민이다. 우리가 정의 중독에 빠질 때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쾌락과 의욕 등을 관장하며 뇌를 흥분시키는 신경 전달 물질이다. 한마디로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집단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집단을 공격하는 행위를 정의라 생각하고, 사회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로 인식한다. 공격하면 할수록 도파민으로 인해 쾌락을 느끼게 되므로 점점 끊기가 힘들어진다. 자신들이 말하는 정의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두고 정의를 위협하는 '악인'이라고 비난하며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정의 중독 』, 나카노 노부코, p.93~94



인간은 정상 집단과 비정상 집단을 구분한다. 물론 살아남기 위해선 정상 집단에 속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때 본인이 정상 집단에 속하는 단순한 방법은 본인이 비정상 집단에 속해 있지 않음을 증명하면 된다. 이것이 즉각적이고 과격하게 발현된 것이 곧 <차별>이다. 요컨대 우리는 비정상 집단을 규정하고 그들을 한껏 차별함으로써 나는 저들 사이에 있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드러나는 분노의 양상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집단의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자들을 한껏 비난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가 비정상 집단 외부에 있음을--즉 정상 집단에 속해 있음을--확인한다. 언뜻 보기에 그들의 분노는 외부로 발산하는 듯 보일지 몰라도 실은 자기 내면을 향해 외치는 암시인 것이다. 이는 동시에 우리 뇌의 도파민을 불러일으키는 주문이기도 하다. 즉 부당한 자들에 대한 공개적 비난은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신체적 쾌락까지 확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의식인 셈이다.



한편으로 <정의 중독>은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을 가리킨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나곤 하는 주제 중 하나는 단연 성별과 관련된 이슈다. 남자와 여자는 각각 자신이 속한 성별의 이슈를 이성이 제기할 때 즉각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 이는 오늘날 온라인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 대립의 양상 중 하나다. '어디 감히 남자가 임신 이슈를 들먹거려', 혹은 '여자가 군대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들어'와 같은 식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식의 사고를 스스로 예방하기 원한다면 외집단을 배제하지 않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지적한다. 뇌과학에 따르면 전두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두전야는 인간이 목표를 계획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살을 빼야지', '공부를 해야지', '효도를 해야지' 운운. 한편으로 인간은 가슴으로부터 치밀어오르는 욕망이 있기도 하다. '맛있는 걸 먹어야지', '오늘만 놀아야지', '효도는 좀 더 돈 벌어서.' 운운. 뇌과학은 이 같은 치열한 대립 속에서 전두전야가 승기를 잡는 전투를 '탑다운', 그 역을 '바텀업'이라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뇌 구조는 바텀업의 손을 들어주는 데 익숙하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배가 곯아 아사 직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을 빼야지'라며 중얼거리는 전두전야의 손을 들어주었다간 큰일이 나지 않겠는가. 여하튼 인간의 뇌는 전두전야의 명령을 그닥 잘 순종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우리는 욕망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이룬다. 외집단을 배제하지 말라는 것은 전두전야의 명령이다. 내집단 외부의 이방인을 배척하고 경계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즉 나와 다른 사람, 혹은 내가 속한 집단의 외부에 속한 사람을 비방하고 욕보이는 것은 바텀업에 길들여진 인간의 자연스런 반응인 셈이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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