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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an 31. 2020

혐오사회 속의 개별자

<범주론>, 아리스토텔레스

유튜브 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ptHjG5myB5U




말을 잘 한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 어디 한 번 주변에 말 잘하는 사람을 떠올려보라. 어떤 사람들이 떠오르는가. 막힘 없이 술술 말하는 사람? 아니면 말을 많이 하는 사람? 그도 아니면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 물론 일상 속에선 그런 사람들이 말을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그들은 유창하다고는 할 수 있을 지언정 말을 잘 한다고 하긴 어려워보인다. 왜냐하면, 말을 잘 한다는 평가의 기준은 말의 양이 아닌 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의 뒤따를 것이다. 과연 질적으로 좋은 말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답은 간단하다. 질적으로 좋은 말이란, 주장과 근거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또한 그 주장은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원리에 맞춰 말해진 말을 우리는 논증이라 하며, 또 그러한 과정을 가리켜 논리적이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논리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은 논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하여...

흥미롭게도 논리학은 현대에 와서야 만들어진 학문이 아니다. 자그마치 2천 4백여년 전에 그 기틀을 잡은 아주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그 이름도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다. 익히 알려져있듯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다. 또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니, 세 철학자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진다. 혹여나 그리스 철학을 앞으로도 공부할 계획이라면 이 순서 정도는 헷갈리지 않게 꼭 기억해두길 권한다. 아무튼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사설 학원인 아카데메이아에서 약 20년을 공부하며 플라톤으로부터 많은 지적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 관념론적이었던 플라톤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소 유물론적인 입장에 가까웠다. 다시말해 플라톤은 현실 세계의 원리를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것으로 설명하려 했던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로 감각되고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들로 현실 세계를 설명하려 했던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관념론적인 입장을 전면적으로 배격한 것은 아니다. 다만 후대 학자들의 지배적인 평가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관념론과 유물론 사이에서 다소 방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이 죽은 후 아테네로 입성해서 라이시움(리케이온)이라는 학원을 만든다. 그곳에서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시작한다. 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를 소요학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소요'라는 단어는 '자유롭게 이리저리 거닐고 다니다'라는 뜻을 의미한다. 이는 당시 아리스토텔레스 실내에 앉아서 제자들을 가르치기보다 함께 산책을 하며 강의하길 즐겼다는 의미에서 붙게 된 별칭이다. 아무튼 이 시기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의 과외 선생을 하는 등 꽤 잘 나가는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아테네 내부에서 반 마케도니아 운동이 발발하게 되며, 아리스토텔레스도 덩달아 고소를 당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곳으로 망명을 떠나고, 곧 위장병으로 눈을 감으며 다소 초라하게 말년을 마무리한다.








오늘날 고전 논리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말을 잘 한다는 게 과연 무엇일지 일찍이 탐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소피스트들이 화려한 수사와 언변만을 앞세운 채 그리스 일대를 주름잡는 모습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눈에는 꽤나 못마땅해 보였던 것이다. 그런 광경을 목격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과연 질적으로 좋은 말이 무엇일지 연구하며 책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고전 논리학의 교과서라고도 불리우는 오르가논이다. 여기서 오르가논이라는 제목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지은 것은 아니고, 후대의 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중 논리학적 성격을 지닌 책만 엮은 후 붙인 이름인데, 그 뜻은 본래 도구나, 기관 등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오르가논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다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라는 뜻을 갖고 있다 말할 수 있다. 더 쉽게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논리학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 다른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예비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오르가논의 구성은 크게 다음의 다섯권으로 나뉜다.


범주론, 명제론, 분석론(전/후), 변증론, 소피스트 논박


가장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을 통해 낱말들의 속성을 탐구하며 그에 걸맞는 범주로 각 낱말들을 나눈다. 이후 명제론에서는 이를 확장하여 낱말과 낱말의 모임인 명제에 대해 탐구한다. 나아가 분석론과 변증론에서는 주어진 명제로부터 특정한 결론을 추론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며, 끝으로 소피스트 논박에서는 소피스트들이 흔히 사용하는 논리적 오류들을 소개한다. 참고로 소피스트 논박에 등장하는 오류들은 대학교 교양 논리 수업에서 단골 소재로 다뤄지는 '~에의 호소' 등이다.


이제 소개는 이쯤해두고 < 범주론>에 대해 살펴보자. 앞서 이야기했듯 <범주론>은 오르가논의 가장 첫 파트에 위치해있다. 다만, 그렇다고해서 범주론이 오르가논 중 가장 먼저 쓰인 책은 아니다. 그저 후대학자들이 보기에 범주론을 가장 처음에 두는 것이 오르가논의 논리적인 구조상 적절하다고 여겨졌을 뿐이다. 그들이 그리 생각한 이유는 범주론에서 다루는 주된 내용이 낱말과 낱말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즉 이후의 오르가논 저서들은 문장을 다루고 있는 반면 범주론은 문장의 요소인 낱말에 초점을 맞춰 그 기본적인 성질을 분석하고 있으니 <범주론>이 오르가논의 가장 첫머리에 위치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범주론의 구성은 크게 15장으로 나뉘어 있다. 이 중 1장부터 3장까지의 내용은 이후의 범주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 개념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4장에서는 낱말들이 속할 수 있는 범주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개괄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때 열거되는 범주는 총 열가지가 있는데, 이 열 가지 범주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5장부터 9장의 내용이다. 끝으로 '후범주들'이라고도 불리는10장부터 15장까지의 내용은 10가지 범주에는 들지 못하지만 낱말을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개념들이다. 물론 오늘날 몇몇 학자들은 후범주들에 속하는 내용, 즉 10장부터 15장까지의 내용이 정말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것이 맞는지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기도 하지만, 딱히 그렇지 않다는 명백한 이유도 없기 때문에 누락되지 않고 범주론의 내용으로 인정 받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주론을 집필하게 된 배경은 소피스트들의 궤변이 불러오는 혼란을 방지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당시 소피스트들은 각 낱말들을 그 속성에 알맞은 범주에서 사용하지 않고 자기들 좋을대로 사용함으로써 이런 저런 궤변을 내뱉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을 통해 각 낱말들을 그 속성에 알맞게 열 가지 범주로 구분하며 각각의 사용법을 친절하게 설명했고, 그 기대효과로서 사람들이 올바른 형식으로 말하길 바랐던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범주론>은 우리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에 대한 규범을 제시하는 문법적 기능을 맡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그가 제시한 열 가지 범주는 다음과 같다.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시간, 위치, 소유, 능동, 수동


물론 외울 필요는 당연히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본인도 자신이 제시한 범주가 엄밀한 기준에 따라 구분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그의 다른 저서들에서는 각 범주들이 추가되기도, 또 생략되기도 하는 등 다소 불규칙한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중 첫번째 범주인 실체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을 파악하기 위한 필수 개념이자 스승이었던 플라톤과의 극명한 견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실체에 대해 파헤쳐 보도록 하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실체란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해 '무엇이다' 라고 답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리킨다. 예를들어 내가 지나가는 누군가를 가리키면서 '저게 무엇이냐' 하고 질문했을 때 따를 수 있는 답변들, 이를테면 '사람이다', 혹은 '소크라테스다' 라는 그 답변이 바로 실체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실체들은 다시 제일실체와 제일실체로 나뉜다--바로 이 지점이 아리르스토텔레스 철학의 중요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제일실체란 그 어떤 것으로도 쪼개질 수 없는 하나의 것, 즉 개별자를 뜻한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와 같이 하나의 특정한 사람이 바로 제일실체에 해당하는 것이다. 반면 제이실체란 소크라테스와 같은 개별자들이 들어있는 보편적인 집합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 유형은 크게 유와 종으로 나뉜다. 가령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라는 집합, 혹은 동물이라는 집합에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서 바로 사람이 유, 동물이 종에 해당한다. 이러한 제이실체는 개별자였던 제일실체와 대비되어 보편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금까지 논의된 이야기를 정리하면 간단하다.


실체란 어떠한 무엇을 가리키는 말로서 제일실체와 제이실체로 나뉘며, 제일실체란 소크라테스와 같은 개별자를, 그리고 제이실체란 사람이나 동물과 같은 보편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는 이처럼 간단해 보이는 이론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 플라톤과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가졌는지 읽어낼 수 있다.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의 물체들은 사실은 진짜가 아니라고 한다. 이게 무슨 얘길까. 가령 우리 눈 앞에 컵 하나가 놓여져 있다고 해보자. 우리는 분명 이 컵을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지만 플라톤은 이 컵이 진짜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진짜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데아 속에 존재하는 본질로서의 컵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이데아란 현실 세계 너머의 감각되지 않는 세계를 가리키는 관념적인 표현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참된 공간인 것이다.


이데아를 통해 플라톤이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이데아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모사한 모방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이데아 세계로 설명하려 했던 플라톤이 얼마나 관념적인 입장을 취했는가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관념적인 이데아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주하여 계승했다. 그것이 바로 앞서 살펴본 제일실체와 제이실체의 구분이다. 누차 얘기했듯 이들은 각각 개별자와 보편자에 해당한다. 이들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먼저 개별자란 우리 눈에 보이고 감각되는 실제적이고 특정한 것이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라는 한 사람이라던가, 혹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특정한 물체 등이 여기 포함된다. 반면 보편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다소 관념적인 개념이다. 가령 사람이라던가 동물 등의 제이실체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들은 우리 눈에 결코 보이지 않는 실체들이다. 혹여나, 옆에 앉아있는 친구를 보며 "어? 사람이 왜 안 보인다는거지? 바로 옆에 보이는데?" 하고 생각했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당신이 보고 있는 친구는 하나의 특정한 개별자이지 사람 일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자가 보편자에 선행한다라고, 즉 제일실체가 제이실체보다 앞서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쯤되면 아마 눈치 빠른 사람들은 벌써 플라톤과의 차이를 느꼈을 것이다. 플라톤은 현실 세계에서 감각되는 것들 이전에 이데아가 먼저 존재한다고 했다.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해석한다면 플라톤은 제이실체가 먼저 존재한다고 봤던 것이다. 즉 사람 일반이라는 보편적인 관념이 먼저 존재하고, 우리 눈에 관찰되는 개별자들은 사람이라는 것의 속성을 나눠 받아 나중에 파생된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자가 제일실체로서 먼저 존재하고 그것들의 공통된 속성이 모여서 사람이나 동물이라는 제이실체가 사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관념론적인 입장에 비해 훨씬 현실주의적인 관점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에서와 달리 형이상학이라는 또 다른 저서에서 실체라는 개념에 대해 조금 다른 입장을 밝히기도 하는데, 그 차이는 나중에 형이상학을 다루게 된다면 그 때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로써 우리는 범주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리키는 실체라는 개념이 무엇을 뜻하는지, 또 어떻게 나뉘며, 플라톤의 이데아론과는 어떻게 다른지 등을 살펴봤다. 다시 상기해보자면 실체란 '어떠한 무엇'에 해당한다고 했었다. 이제 개념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보자. <범주론>에서 말하는 실체란 '서술될 수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어디 한 번 예를 들어보자.



'소크라테스는 똑똑하다' 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에서 중요해보이는 두 낱말이 무엇인가. 하나는 소크라테스, 또 하나는 똑똑하다 라는 단어다. 그렇다면 두 낱말 중 어떠한 것이 먼저라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가 먼저 존재하기 때문에 똑똑하다라는 속성이 소크라테스에 대해 서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이처럼 무언가에 의해 서술될 수 있다는 점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실체를 서술하는 낱말들, 즉 술어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소크라테스는 똑똑하다/멋지다/사람이다' 등등 말이다. 이처럼 술어들의 다양한 종류가 바로 10가지 범주 안에 속한다는 것,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다.


다시 말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구분한 열 가지의 범주 중 첫번째인 실체는 술어에 의해 서술될 수 있는 낱말이며, 나머지 아홉 가지 범주에 해당하는 낱말들은 실체를 서술할 수 있는 술어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후 범주론의 나머지 내용들은 각 범주들의 자세한 사용법과 각각의 범주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 등 다분히 문법적인 내용들이므로 이후의 모든 내용은 과감히 생략하고 이쯤에서 짧은 감상을 남기며 포스팅을 마무리하려 한다.


앞서 계속 이야기했듯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실체가 가장 우선하는 것이며 제이실체는 그 다음에 뒤따르는 것이라 사유했다. 즉 존재하고 실재하는 것은 개별자이며, 이들이 가진 동일성에 따라 뒤따르는 것이 사람이나 동물 등의 보편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회에서 관찰되는 수많은 갈등 양상을 보고 있자면 낱낱의 개별자들을 그 자체로서 인정하지 않고 단지 하나의 보편자로 환원하기만 바쁘진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령 한 명의 특정한 일본인 A가 있다고 해보자. 이 때 A는 다른 일본인과는 구별되는 개별적 존재다. 그는 케이팝을 너무도 사랑하는 한류 팬일 수도 있고, 혹은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캠페인에 해마다 기부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개별적 존재들이 지니는 차이성을 송두리째 잘라내고 오로지 동일성의 원리에 따라 일본인 이라는 보편자로 무작정 환원한다면 우리에게 남는건 혐오와 증오 뿐일 것이다. 이는 오늘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비난하고 짓밟는 사회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누누이 얘기했듯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이실체 이전에 제일실체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보편자에 대한 이유 없는 혐오와 증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을 역행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갈등을 이 사회에서 조금이나마 줄여가기 위해선 개별적 존재들이 지닌 차이성에 조금 더 주목해야 하진 않을까.


개별적 존재들을 일일이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지만, 그들을 동일한 범주로 묶어 한 덩어리로 사유한다면 미워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쉬이 깨닫는다. 단언컨대, 평화로 가는 길은 좁고 험난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 전자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선택하라. 어떤 길을 걸을지.



여전히 보편자를 따르고 싶은가.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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