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의 서사에서 여행을 외치다

by 혜윰


여행이 내게 주는 설렘은 낯선 상황이 주는 생경함, 그로 인한 나의 무능력,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일말의 성장 소설적 자부심에 가깝다. 버스를 타는 것, 식사비를 지불하는 것, 부당함에 항변하는 것 등 모든 성인의 하루를 빈틈 없이 메우는 일상적 요소들을 다시금 아이가 되어 배우는 듯한 묘한 향수와 그끝에 느껴지는 자신감이 금새 나를 판타지 모험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니 말이다. 그러니 여행을 떠나는 심리를 결코 일상에 대한 불만족 내지는 권태라고 해석하진 말자. 진정한 모험가는 기꺼이 권태의 한가운데로 뛰어들 준비도 되어 있으니.


군대에서 처음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지휘관이 해준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군대는 사회의 축소판이야. 왜냐면 가장 낮은 이등병부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병장까지 싹 다 경험할 수 있잖아. 게다가 아무 노력 없이 그저 시간만 흘러도 권력이 생긴다는 부조리까지 사회랑 쏙 빼닮았지. 그러니 너무 걱정마. 비록 부조리하긴 해도, 시간은 비웃듯 빠르게 흐를 거고, 그러니 너가 2년 내내 이등병일 리도 없을 거고, 금새 권력에 취해 비틀대다보면 내쫓기듯 사회로 던져질 거야."



많은 남자들이 지난히도 괴로웠던 군시절을 술자리 단골 안주거리로 삼을 수 있는 배경엔 어쩌면 모종의 성장감(?) 따위가 녹아들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2년 내내 이등병이었다면 그 시절을 그리 좋게 회상하는 예비군들은 없지 않을까..?) 가장 밑바닥으로 시작해 가장 높은 계급에 올랐다는 사실, 또 그것이 가져오는 각종 외부 상황의 변화--이를테면 늦잠을 자거나, 점호에 빠지거나, 핸드폰을 몰래(?) 써도 되거나 등등--를 통해 느끼는 성장 의식 말이다. 비록 그것은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그저 '시간만 흘렀다는 이유로' 거저 얻은 성장일지라도, 어지간한 사람들이 결코 사회에서 체험할 수 없는 '행복한 사다리'였을 테니 말이다.


게임의 마지막 보스까지 깬 후 새로이 '부캐'를 키우는 심리도, 철지난 문화를 복고로 소비하는 것도, 여행을 통해 느끼는 성취감을 애호하는 것도, 모두 행복한 사다리를 오르내리고픈 우리들의 소박한 소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적에 유튜브도 한 번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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