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윰 Apr 24. 2020

인간 관계의 웨이팅

<음식점 웨이팅으로 본 인간 관계의 철학>


식당 앞에 한참 늘어선 줄을 기다려 먹어본 적이 있는가. 한 연구에 따르면 기다린 뒤에 먹는 음식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대개 극단적인 경향이 있다고 한다. 왠가하면 '기다림'이라는 자신의 투자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 치뤄졌는지 아닌지 더 냉철하게 판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란다. 가령 음식의 맛이 평균 이상일 경우엔 기다림이라는 자신의 투자를 매우 성공적인 투자라 평가하기 쉽고, 음식의 맛이 평균에 못 미친다면 이 경우 소비자는 자신을 잘못된 '음식'에 투자하도록 인도한 식당을 원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는 맛없는 식당을 마치 실속 없는 펀드를 판매한 은행 직원처럼 여기는 모양새다.



위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음식의 절대적인 맛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해당 음식에 대한 극단의 평가는 오직 평균에 대한 상대적 우열로 판단될 따름이니 말이다. 즉 해당 식당이 웨이팅 손님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딱 평균 이상 만큼만 맛있으면 되고, 또한 부정적인 평가는 평균에만 못 미쳐도 쏟아진다. 평균으로부터 다소 간의 격차만 벌어지더라도 웨이팅 손님들은 자신들의 '대기 시간'을 근거로 그 차이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리하여 음식은 대단히 맛있거나 대단히 맛없지 않더라도, 웨이팅 손님들에 의하여 대단히 맛있거나 대단히 맛없게 된다.



이러한 식당의 우화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투자를 상당히 가치있고 중요한 것으로 과대 해서갛는 경향에서 기인한다. 무려 '나'라는 사람이 바쁜 시간 내어 기다려준 곳이니 만큼 맛있어야 할 거라는 과대망상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인간 관계에서 오는 대부분의 피로도 이와 같진 않을까. 이를테면 우리는 상대방에게 내가 베푼 몇 가지의 선행들을 근거로 상대방이 내게 보인 행동을 야박하게 평가하지는 않는가. 하지만 이는 필연적인 불행이 담보된 위태로운 비극의 서막이다. 식당에 늘어선 줄은 필시 음식을 먹기 위함이지만, 타인에 대한 우리의 선행은 바랄 것이 없을 때만 가능한 법이니 말이다.



그러니 자문해보자. 타인에게 베푼 나의 사랑과 배려는 의도가 담긴 웨이팅이었는가.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작가의 이전글  "오만한 분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