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비난은 자기 인정과 위로 다음에 자리해야 하는 마음의 서열
우리의 감각은 원하지 않게 자기비난에 익숙해져 있다. 자기비난은 발전이라는 명분에 가려져 앞으로 나가기 위한 ‘합리적인 채찍’으로 우리의 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자기비난을 통해 실수나 실패의 원인을 찾고 스스로에게 보다 나은 행동과 책임을 요구한다.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 강점보다는 단점의 극복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 있다. 약점이나 실패를 극복하고 발전하기 위해 자기비난을 동력 삼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위로 없는 비난이 문제다. 스스로 선택한 비난이기보다는 끝없이 몰아붙이는 외부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비난이 문제다. 그래서일까? ‘자존감’이란 단어만 들어가도 히트를 치는 것을 보면 우리에겐 자기비난의 상처가 많은 것 같다. 혜민 스님의 “괜찮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라는 말에 위안의 눈물이 흐르는 현실은 분명히 위로가 필요한 시대임을 반증하고 있다. 부족한 삶이라도 내 것으로 누리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기비난과 자기위로의 균형이 필요하다.
자기비난에 익숙해진 감각은 자기소외의 반복된 흔적들이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사고방식이 자기비난(Self-criticism)이다. 실수와 실패, 후회를 반복적으로 되새김질하며 자신의 불완전함과 약점, 부족함을 반복적으로 비난한다. 처음의 의도는 좀 더 잘해보자는 의도였지만 점점 자신의 힘을 약하게 만든다. 이러다 보면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던 것이 “난 안돼!” 또는 “나는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이야”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비난하게 된다. 위로할 틈을 잃어버리고 의도하지 않게 자신을 소외시키고 파괴하는 것을 반복하게 된다. 자기비난에 발목이 붙잡혀 행동을 개선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우울해지게 된다. 스스로를 비난하고 용서하기 힘든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불안과 우울이 높고 덜 행복하다. 자기비난은 죄책감, 부끄러움, 무기력, 절망과 연결되기 쉽다. 그래서 자기비난은 자신에 대한 인정과 위로 다음에 자리해야 하는 마음의 서열이다.
위로 없이 반복되는 자기비난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발전하려는 자신을 방해하고 정체 상태를 만들기 쉽다.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고 냉정하게 비난하면서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기위로가 필요하다. 비난에 앞선 자기위로는 보편성에 대한 인정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럴 수 있어!”,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럴 수 있어!”라는 보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을 비난할 만큼 중요한 상황에서는 이런 보편성조차 인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스스로 비난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안타까워하면서도 “파이팅”을 외치며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기위로의 능력이다. 자기위로가 없다면 자기비난은 열등감이나 수치심, 죄책감으로 쉽게 전락하고 만다. 자신의 가치를 믿고 존중하는 마음도 사라진다.
예전에는 사회와 관계 속에서 위로 시스템이 많았다. 경쟁과 파편화된 관계 속에서 비난은 강해지고 위로는 엉성해졌다. 그래서 자신을 위로하는 능력이 별도로 필요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심리학자들은 불안이나 긴장, 불쾌감으로부터 스스로 돌볼 수 있는 능력을 자기위로능력이라 불렀다. 스스로 토닥이며 자신의 감정을 달래줄 알고 힘든 일을 타인에게 고백하고 타인이 보내는 위로를 수용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자기위로능력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부정적 정서를 조절하고 심리적 소진을 막아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심리적 고통을 적게 경험한다. 이런 방어막이 형성되어야 자신의 내적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일상의 역경에 대한 회복력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자기위로는 자기비난을 상쇄시킨다. 외부의 밀려오는 비난에는 저항감이라도 있지만 자기비난은 자신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에서 인정하고 학습되기 쉽다. 그래서 자기비난의 습관 속에 갇히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때 자기위로는 강력한 자기비난의 힘을 약화시키고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다.
자신을 위로하는 능력은 위로를 받아 본 경험이 중요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위로하고 격려해 준 사람들의 토닥임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런 경험이 부족하여 자기비난이 강화된 사람들은 자기인정의 연습이 필요하다. 반드시 인정이 아니라도 자기 비난의 생각과 감정을 “그렇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그런 감정이 드는구나! 괜찮아!”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보다 친절하게 대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생각과 느낌을 가까운 사람에게 고백하듯 말하며 드러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기비난에 휩싸인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다. 비난의 갑옷을 벗어던지는 방법은 자신을 좀 더 친절하게 대하고 인정하고 드러내는 일이다. 이것도 어려운 사람들은 친절하게 자신을 위로하는 글을 쓰는 것은 어떨까? 글쓰기를 통해 부끄러움, 죄책감, 열등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인식하고 허용하는 기회를 늘려나갈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과 말들을 키워낼 수 있다. 학자들은 비난을 하더라도 비난이나 죄책감 등 부정적인 감정의 대상을 자신의 존재가 아닌 행동에 한정하기를 주문한다. “난 역시 안 돼”보다는 “이번 일은 기간 결정이 잘못됐어!” 또는 “행동하는 우선순위가 맞지 않았어” 등으로 바꿔보자. 그리고 “파이팅”, “기간이 길어지면 잘 될 거야!” “괜찮아!?”, “성공을 위한 경험 하나가 늘었잖아!”, “너 잘못이 아니야!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잖아” 등 수많은 긍정과 낙관의 자기 대화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스스로에게 위로받을 때 좋으면 좋은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삶을 누리고 음미하는 시간은 늘어나게 된다. 누구나 ‘위대한 오늘’을 살고 있다. 그런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위안이다. ‘위대한 오늘’이 항상 즐겁고 행복할 수만은 없다. 실수든 잘못이든 큰 성공보다는 작은 실패를 더 자주 경험하는 일상들이다. 아무리 열심히 하고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거나 실수는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그래도 각자의 삶에서 오늘은 소중한 순간들이다. 억척같은 오늘이라고 하더라도 소중한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위안의 작은 자리라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완벽주의자인 내가 가장 변화하기 힘든 것은 자기위로였다. 위로받고 위로하는 반복된 시간이 위로 근력을 키운다.
이런 것 녹음하지 않으려 했는데요. 부족한 점이 많거든요. 그래도 혹 도움이 될까 녹음해서 조심스럽게 올려봅니다.
https://youtu.be/zMAUBIrobLw [자기위로와 친절을 위한 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