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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와 만족의 함수, 비교하는 관성을 넘어

본능적으로 비교를 통해 얻는 만족의 관성을 넘어

by 김권수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비교 시스템이 우리의 인식과 만족을 좌우한다.

물론 우리의 삶도 지배한다.


비교가 습관이 된 사회, 비교의 덫

어느 대중 상담 강연에서 비교하는 습관 때문에 괴로움을 토로하는 사람을 봤다. 학창 시절에도 비교하며 공부했고 배우자를 고를 때도 그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남과 비교해서 더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비교하면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쏟고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치기 어렵다고 했다. 여기에 모든 답이 다 있다.


비교가 습관화된 이유는 비교하는 것이 쉽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빠른 경쟁사회에서 반복되고 학습된 탓이다. 뭔가를 쉽고 빠르게 인식하는 체계가 비교다. 그런데 비교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효율적 일지는 몰라도 주변 환경과 비교 대상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휘둘여야 한다. 그래서 여유도 없고 지친다. 자신의 존재는 점점 나약해지고 주변에 휘둘리는 심리적 노예가 되기 쉽다.

비교는 반복된 자기 소외의 흔적이고 자기수용을 못한 부작용에서 악순환된다. 자신의 가치를 상대적 평가를 통해 확인받아온 흔적들이다. SNS로 소통은 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 많아졌지만 스트레스가 많아지고 일상에서 심리적 탈진이 늘어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고 비교되기 때문이다. 분명히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력이 말한 것처럼 ‘비교는 삶의 즐거움을 빼앗아 가는 도둑’이다.



우리가 비교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사람의 인식은 기본적으로 비교하고 차이를 인지하면서 만들어진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도 쉽게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비교다. 비교는 효율적으로 인식하는 시스템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의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비교하면서 인식의 체계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이런 인식의 효율성은 비교하는 대상이 달라지면 사실이 변한다. 그리고 표면적인 결과 외에 숨겨진 가치를 알아차리는 능력을 빼앗아 간다. 비교를 통해 쉽게 인ㅅ기하다 뇌는 싸늘하고 건조하게 식어갈 수 있다.


비교는 쉽게 우리의 의욕과 동기를 만들어 낸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지치고 누더기가 되더라도 비교하는 습관을 놓지 못하는 것은 비교를 통해 얻는 심리적 쾌감이 중독적이기 때문이다. 비교는 쾌감을 만들어 내는 동기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은 개인마다 문화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 개인이 느끼는 행복감도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의 엄마는 비교 정보에 만족을 느끼고 미국 엄마는 자신의 기준에 만족을 느낀다. EBS 다큐멘터리 마더쇼크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한국과 미국 엄마 11명이 카드게임을 하고 뇌에서 만족을 느끼는 보상회로의 반응을 살펴봤다. 한국 엄마는 아이가 상대방보다 더 많은 점수를 냈을 때 보상회로가 활성화되었다. 반면에 미국 엄마는 아이가 그저 좋은 점수를 받았을 때 보상회로가 강하게 활성화되었다. 한국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들이 높은 점수의 성적을 얻었을 때보다 비교하는 상대 아이들보다 등수가 높았을 때 비로소 만족하고 기뻐한다.


한국의 엄마는 비교를 통해 만족과 동기를 느끼는 뇌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행복지수에서 OECD 청소년 중에 한국이 꼴찌를 차지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볼 수도 있다. 잘하는 것보다 끝없이 비교되는 상대와의 경쟁에서 지치기 때문이다. 비교를 통해 쉽게 얻는 동기 시스템은 결과 외에 다양한 곳에서 즐거움과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한다. 우리의 만족은 주변에 의해 반응적으로 변해간다.


가진 것조차 누리지 못하게 하는 비교

비교는 끝없이 자신의 약점에 집중하도록 한다. 자존감이 낮고 만성적 열등감과 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말이다. 성취하고도 가진 것에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도 비교하는 습관에 있다. 정상에 올라 편안히 쉬고 즐길 여유도 없이 눈에 더 높은 정상이 보인다. 성취하고 가진 것은 작아지고 보완해야 하는 약점이 긴장감을 높인다. 비교는 끝없이 주의를 외부로 돌려 자신을 흔들어 약점에 집중하도록 한다. 감사함보다는 긴장과 조바심의 노예가 된다.


비교는 상당히 효율적이고 명확한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와 손실이 더 많다. 비교하는 기준이 달라지면 당장 만족의 기준도 달라진다. 지금은 비교한 결과에 만족하고 비교를 통해 성취할 의욕을 가질지 몰라도 인생 전체로 볼 때는 지치기 쉬운 삶과 타인의 삶을 쫒아 공허감을 느끼기 쉽다. 가진 것에 만족할 틈도 없이 새로운 비교 대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긴장감 높은 시간을 이어나가야 한다. 비교는 상당히 효율적인 것 같지만 인생 전체로 볼 때는 결코 효과적인 시스템은 아니다. 자신이 가진 것도 활용하고 누리지 못하게 방해할 수 있다. 더구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명확하지 않을 때는 비교는 자신을 집어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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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되지 않는 자신의 만족에 박수 보내기

살아오면서 비교되고 비교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것을 누리고 음미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비교하는 가속도에 희생되어 자신의 피를 먹고 달리고 있는지 모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구를 이해하고 실천하기가 참 버거워지는지 모를 일이다. 비교하느라 쫓기고 지쳐서 이곳저곳 살피며 만족할 인지적 유연성을 잃어버리고 사는지 모른다.


비교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비교하지 않는 것은 또한 불가능하다. 다만 비교의 굴레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모르게 장착된 비교 시스템을 변화시킬 의지가 필요하다. 자신도 모르게 비교당하고 비교지수의 칸을 채우기 위해 본능적으로 하루를 아등바등 지내지는 않는지 자신을 보살필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고 점점 나아지고 있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에 만족하는 센스를 길러야 한다. 비교의 영역에서 벗어나 ‘내 스타일’, ‘내 가치’이기 때문에 좋고 만족스러운 순간을 늘려야 한다. 제주도의 돌담은 튼튼한 담과 비교하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강한 바람에 견디는 것은 엉성한 돌담에 틈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힘은 비교에 있지 않다. 그저 비교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만족에 좀 더 박수를 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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