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건강한 '자의식'
우리는 보통 자의식이 강한 사람을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자의식이 약하면
‘주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쉽게 판단한다.
그런데 삶을 살다보면 강하게 느끼는 것은
자의식은 강하다고 늘 건강한 것도 아니고,
유연하다고 항상 자유로운 것도 아니라는 걸.
문제는 그 자의식이 나를 살게 하는지, 묶어두는지에 있다.
자의식은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자기 인식이다.
생각, 감정, 욕구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고,
타인에게 비쳐지는 나의 모습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이 인식은 삶의 기준이 된다.
무엇을 선택할지, 어떻게 행동할지,
어디까지 버티고 어디서 멈출지를 정한다.
하지만 이 문장이 너무 단단해질 때 문제가 생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 정도는 돼야 해.”
이 말들이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방패가 되는 순간,
우리는 지금의 나를 보지 못한다.
"지켜야 할 것이 많을 때 우리는 불안하고 더 힘들어진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이런 나’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느라
불안한 나, 흔들리는 나, 초라한 나를 밀어낸다.
현재의 감정보다 자의식을 먼저 지키게 된다.
그 결과, 마음속에서는
계속해서 방어가 일어난다.
그리고 방어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래서 자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겉으로는 단단해 보여도
속으로는 쉽게 지치고 소진된다.
"자의식이 강할수록 편도체가 과잉활성되어 위협을 많이 느낀다"
자의식과 현실이 어긋나는 순간,
마음은 즉각 경계 상태로 들어간다.
“이건 내가 생각한 내 모습이 아니야.”
“이런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어.”
이때 불안은 커지고,
방어와 회피에 에너지가 쓰인다.
현실을 유연하게 해석하고 대응할 여유는 사라진다.
자의식은 이렇게 조용히
우리의 에너지를 빼앗는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자의식은 얼마나 강해야 하고, 얼마나 유연해야 할까?
자의식의 강도만 높고 유연성이 낮으면
→ 고집이 되고, 경직이 되고, 관계에서 갈등이 늘어난다.
유연성만 높고 자기 인식의 기준이 없으면
→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고, 쉽게 자기 자신을 잃는다.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이 정도는 해야 괜찮은 나’
‘이런 모습이어야 존중받는 나’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순간,
자신을 실망시키고 비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자의식은 나를 지키는 힘이 아니라
나를 옥죄는 틀이 되고 감옥이 된다.
세상이 원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려 할수록
마음은 더 많은 방어를 필요로 한다.
그 결과는 익숙하다.
과도한 자기과시, 타인과의 비교,
불안으로 인한 관계 회피, 현실 부정.
이 모든 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자의식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건강한 자의식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식하고 수용하면서도
상황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자신을 허락한다.
자의식이 유연해질수록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더 넓게 연결할 수 있다.
" 자의식은
지켜야 할 성벽이 아니라
열어두어야 할 문이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릴 때,
삶은 훨씬 덜 힘들어진다.
수용
나의 부족함과 변화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객관화하여 받아들인다.
수용은 가장 건강한 자의식을 만드는 베이스 라인.
연결
'나'라는 좁은 틀을 허물 때
비로소 세상이라는 더 넓은 통로 연결된다.
굳이 '자의식 해체'라고 강조할 필요 없다.
세상과 연결되기 위한 유연한 내가 될 뿐.
흐름
자의식이 유연해지면 감정의 풍랑이 잦아들고,
그 평온한 수면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의식'이란 혈전에 나의 혈류를 막지않도록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지'라고 유연성을
높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