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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May 24. 2016

내 삶을 음미한다는 것은

소비할 것인가? 음미할 것인가?

음미하는 순간의 순수주의

한 참을 일에 빠져 있다가 찻물을 받으러 거실로 나가는데 식탁에 엄마와 막내딸이 앉아 너무 즐겁게 장난치고 수다를 떨고 있다. 둘의 눈은 사랑스럽게 떨어질 줄 모르고 마치 친구처럼 그 자체로 행복해 보인다. 근심 하나 없이 해맑은 얼굴로 웃는 아이를 보며 감사한 마음과 함께 흐뭇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고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일상생활에 잠시 멈춰서 그 순간을 그대로 음미할 때가 있다. 지나치면 모르고 사용하지 않을 나의 감각과 감정은 그 순간에 온전히 빠져 녹아든다. 아이의 얼굴이나 자연이나 나의 마음이 가기 때문에 대상도 나도 모두 ‘순수한 주의’로 대면하게 된다. 음미하는 순간에 주의는 온통 그 속에 빠져 다른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잡음이 제거되어 대상과 상황에 몰입하게 된다. 

    

기억과 순간을 음미할 때 행복감은 올라가고 뇌의 보상회로가 활성화

긍정심리학에서는 긍정성을 확장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음미하기’를 권한다. 우리는 행복한 순간의 사진이나 기념품을 걸어 놓고 그 순간들을 추억하며 음미하곤 한다. 지금 생각하면 흔한 문화 속의 행위들이 긍정과 행복을 확장하기 위한 의식적 활동이었던 것이다. 미국 로욜라대학의 프레드 브라이언트(Fred B. Bryant) 교수와 미시건대 조셉 베로프(Joseph Veroff) 교수는 음미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 《인생을 향유하기Savoring》을 펴냈다. 이들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나 좋은 경험을 기억하며 음미하는 사람과 이런 경험을 음미하되 기념품을 보며 음미하는 사람, 아무 기억도 음미하지 않은 사람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어 행복도를 실험했다. 행복도가 가장 높았던 사람은 기념물을 보면서 기억을 음미하는 사람들이었다. 적극적으로 음미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긍정적인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고 여기에 가치를 부여하며 긍정성을 확장하려는 사람들이다. 미국 럿거스 대학교 마우리치오 델가도Mauricio Delgado 교수 팀은 ‘과거 음미하기Savoring the Past’ 연구를 통해 우리 가 실제로 행복한 과거를 음미할 때 기분이 좋다고 느끼는 것 은 물론이고 우리 뇌의 보상회로가 작동해 우리를 보다 긍정 적이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지만 얼핏 당연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순간순간을 음미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소외된 주의와 감각은 일상에서 존재감을 빼앗아 공허감을 만든다. 

 소외된 주의와 감각은 일상에서 존재감을 빼앗아 공허감을 만든다. 빠르게 지나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는 우리의 주의도 빠르게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빠른 속 도는 우리의 감각과 느낌을 차분히 느껴볼 기회를 빼앗아간다. 맛으로 따지면 깊은 맛을 볼 여지가 없어진다는 것이고, 감각이 소외됨을 의미한다. 현대인들의 공허감은 이런 소외 의 일상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더 강하고 많은 감각적 자극 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평소 10년 이상을 출퇴근하며 지나던 길을 주말에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재미있고 호기심 넘치는 장면들과 만나게 된다. 빠른 출퇴근에서 신호등에 멈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 우리의 주의와 감각, 느낌, 기억을 가동시켜 볼 기회가 없었다. 자신의 주의와 감각이 소외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멈춰서 자신이 스스로 주의를 선택하고 주변에 빠져들어 보자. 그러면 자신의 감각기관과 느낌들이 상호작용하며 그 자체로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주의와 감각기관이 주변을 관찰하며 빠져 들었던 순간에 잡음은 제거되고 그 순간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며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소외된 주의와 감각으로 세상을 대하기 때문에
주변에 널린 긍정과 행복의 사건을 지나쳐야만 했다.

급속한 속도전의 세상 속에서 성취는 쉽게 만족감을 연속시켜 주지 못한다. 강요되고 주어진 일들, 선택할 수 없는 일들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소외시켜 왔기 때문에 음미하는 주의와 감각을 잃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런 소외된 주의와 감각으로 세상을 대하기 때문에 주변에 널린 긍정과 행복의 사건을 걸러내지 못하고 멈추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멈춰서 일상의 사소한 기억과 장면을 음미하는 것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해 굳었던 손의 감각을 깨우는 것과 같다. 잊었던 모국어를 더듬어 찾아내는 것과 같이 기쁜 일이다. 음미한다는 것은 더 바쁘게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군중의 심리에 급하게 반응만 하다 빼앗겼던 자신의 주의와 감각, 존재감을 찾는 일이다.      


멈춤, 선택, 관찰과 몰입 그리고 존재 그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

멈춰야 음미할 수 있다. 그래야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 상태라야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다. 그 몰입 속에서 온전히 나의 감각과 느낌, 존재마저도 군더더기 없이 활용될 수 있다. 자신이 전체가 되는 것이다. 음미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순수한 주의를 활용하는 상태다. 음미의 순간에 느끼는 가치는 내가 존재하는 가치와 일치된다. 나만의 숨겨둔 가치와 행복이 있을 때, 퍽퍽하게 밀려다니는 순간에도 여유를 만들어 현실을 밀고 나갈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음미는 자신과 자신의 존재를 소외시키지 않고 몰입하도록 한다. 음미한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을 동기부여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보상회로를 자극해서 원한다면 언제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스위치를 만들어 역경 속에서도 회복력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주변의 일상, 빈약한 자원 속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찾고 누릴 수 있는 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해지는 노을이나, 주변 친구들의 웃음이나, 햇빛을 받으며 살랑이는 풀잎이나, 여행지의 풍경이나, 깔깔한 이부자리 등등 찾아서 느껴보자. 온전히 나만의 힘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이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 수 있으니까!



어떻게 음미할까?

음미는 천천히 느끼는 기분을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주의를 그 기분에 충분히 젖어들게 하는 것이다. 현재에 온전히 존재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현재를 즐겨라(카르페 디엠; Carpe diem), 이런 것이다. 


1. 느리게 감각과 감정 누리기

음미한다는 것은 수용적으로 천천히 감각과 감정을 느끼는 것에서 출발한다. 의자에 앉아 나만의 스타일은 만든 밀크티를 한 잔 들고 천천히 마신다. 홍차의 맛과 우우의 맛 그리고 이 둘이 어우러진 맛에 귀기우리는 나의 감각을 느낀다. 피부에 와 닿는 바람과 피부의 느낌, 차 잔의 따듯함 또는 시원함! 이어지는 추억..이렇게 느린 수용적 감각은 긍정적인 감정과 연결되고 자연스럽게 기억과 어우러지는 것을 누린다. 단지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몰입할 때 우리는 누린다는 행복감을 느낀다. 느리게 감각과 감정을 느낄 그 어떤 재료라도 음미하기에 부족한 것은 없다. 


2. 목적 없는 활동에 몰입하기

음미하며 누리는 것과 일반적인 몰입은 목적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음미하는 것은 목적없는 몰입의 순간을 요구한다. 그저 좋아서 한다. 마치 존재하거나 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는 일을 적어도 일주일에 하나씩은 하는 것이다. 잘 되어도 좋고 잘 못 한다고 해도 상관없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걷는 일, 목공이나 서각, 악기연주, 태극권, 명상 , 화단 다듬기 등 자신의 주변에서 천천히 활동하면서 몰입하는 일이면 무엇이나 가능하다. 그 활동은 몰입을 만들고 활동을 하는 과정 자체에서 긍정적인 감각과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일이면 충분하다. 이런 활동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3.  감동적이고 긍정적인 순간 추억하기

누구에게나 의미있고 감동적인 순간은 참 많다. 단지 그런 일이 있었지라는 '사실'로 인지하고 지나갔을 뿐이다. 긍정적인 순간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천천히 그려보는 것이다. 위로 받고 위로 했던 순간, 힘겹게 노력해서 성취했던 순간, 영화나 일상에서 감동을 느꼈던 순간, 버킷 리스트를 실행했던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서 심취해서 상세히 설명하듯이 회상하며 느껴본다. 일기를 쓰듯이 그 순간을 글로 표현해도 좋고, 사진이나 기념물을 정리하거나 꾸미며 회상해도 좋다. 영상이 있으면 다시 보는 것도 좋고 추억할 수 있는 장소나 공간을 방문하는 일도 좋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을 위해서 회상하고 정리하면서 그 순간을 추억하고 누리는 것이다. 


4.  감사하고 표현하기

우리는 감사를 통해 삶의 긍정적인 면을 의식하게 되고 몸과 마음의 평온함을 찾을 수 있다. 감사함을 통해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가치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고마움과 당행스러움을 수용하게 된다.  감사할 때 심장과 뇌파가 공명을 하며 심신이 안정적이게 되고 더욱 건강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과 회복력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감사할 자연과 사람, 조건을 찾아 표현하는 적극적인 행위가 감사의 기도다. 아침이나 자기 전에 감사함을 찾아 기도하는 행위는 현재에 존재하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누리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를 통해 현재에 존재하고 느끼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의미를 찾는 행위이기도 하고 현재를 수용하고 젖어드는 계기를 마련한다.  나아가 감사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며 감사함을 나누는 적극적인 행위도 삶을 음미하는 만족스런 방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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