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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리원 Aug 19. 2024

삶은 여행이니까

도쿄 산책


도쿄 JR 다마치역에 내렸다.

환승역인 시나가와 다음 이라 기억하기도 좋았다. 거리의 풍경은 평범해 보였다. 미나토구가 도쿄의 강남구라더니 뭐 대단한 것도 없어 보였다. 여느 전철역 입구에서나 보일법한 가츠동 보였다. 점심때가 지났던지라 때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아이 낳고 처음으로 아이를 떼어놓고 친구들과 온 여행이었다. 숙소는 후배 H의 집이었다. 당시 그녀는 에스기업 지역 연구원이었는데 마침 그 주에 홋카이도에 가 있을 예정이라며 흔쾌히 집을 내주. 지금 다시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다.

     

 H가 도쿄에서 살던 집은 2014년 당시 월세가 30만 엔, 원화 300만 원이 넘었다. 웬만한 직장인 월급이다. 비로소 미나토구 한복판에 있는 게 실감났다.

     

 건물은 멀리서도 찾기 쉬웠다. 높게 솟은 두 개의 빌딩은 그 위엄만큼 경비가 엄했다. 프런트의 직원이 우리 얘기를 전달 받았다며 여권을 확인하고 방 키를 내주었다. 일본에서는 이런 곳을 고급 맨션이라고 부르던데, 레지던스 같은 시스템이었다.

    

  안은 작지만 주방 거실 침실 목욕탕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공간 활용을 어찌나 잘했는지 구석구석의 쓰임을 보니 그저 감탄만 나다.

  

"월세 300짜리 집도 별거 없이 좁구나." 

"뷰는 좋다. 베란다는 옆 집으로 갈 수 있겠는데? "


우리는 저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걸 들키고 싶지 않았는지 부지런히 떠들며 부러워했다.

  

H의 방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도쿄의 부촌은 도쿄만으로 흘러가는 운하를 끼고 산책길 조성이 잘 되어 있었다. 내가 만약 러너라면 저 물가 풍경을 끼고 달렸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도 어김없이 달리는 하루키처럼.  



         


 다음 날 아침 일찍 산책에 나섰다. 머리 위로 도쿄의 모노레일이 지나간다.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서 여행자로 산책하는 기분만큼 짜릿한 게 또 있을까. 해방감이 속에서 뜨겁퍼져왔다.






그때 나는 는게 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자가면역질환이 발병한지 6년차, 겨우 30대 중후반을 지나던 나는 평생 호르몬제 복용해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다.  이 지병은 인생 최고의 체중과 우울감까지 데려왔다. 할 수만 있다면 칼로 나를 찢어내고 나오고 싶은데,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던 때였다. 자신을 향한 수긍과 이상한 안도, 혐오가 간헐적으로 찾아들었다. 그럼에도 삶은 살아나가야 했다.


 

 발병 전의 나는 활기가 넘쳤다.

6시20분 기상, 7시 출근, 8시 회의준비가 아침 루틴이었다. 퇴근 후에는 매일 헬스장에 갔고 10시까지 운동해도 체력이 남아돌았다. 발병 후 E성향은 자연스레 I성향으로 바뀌었다. 난 이제 모임이 많으면 매우 피곤하고 기가 빨린다.  출 준비를 할 때부터 집에 가고 싶어진다.

   




 



 앞 대로변 오른쪽에 피코크라는 슈퍼마켓이 있었다. 아침 시간, 두부나 작은 조미료를  사러 나온 동네 주부들 급한 발걸음이 눈에 띄었다.  서울에 가족의 아침식사를 두고 온 도쿄 아침은 낯설고 달콤했다.  생소한 골목과 도시의 이색 간판들을 보며 걷는 게 뭐라고 이토록 홀가분하고 설레는지.


여행자의 마음으로  삶을 경험한다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매사 이렇듯 설렐 수 있을까?  




 삶은 히들 여행이라고 한다.  천상병 시인은 소풍이라고 했던가.  소풍이든 여행이든 삶을 그저 잠시 다니러 온 즐길거리로 생각한다면 좀 더 온화하고 느긋하게 살 수 있겠.  (그러려고 자꾸 여행 가고 싶다는 건 아니다)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여행이고 인생이니까..  그러니까 더 이상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길, 조금 더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길...



도토루 커피에 들러 빈 속엔 커피를,  마음 속엔 연민을 들이부었다.  커피는 생각 외로 별 맛이 없었지만,  꽤 오래 머물렀던 기억인 걸 보면 알바생이 잘생겼었나 보다.




 도쿄의 아침을 산책하며, 좋았던 시절은 모두 흩어졌노라고 자조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 시절도 좋았다. 치란 짓궂어서 움켜 쥔 그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상승한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고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듯이.













지금 당신은 어떤 삶을 여행하고 있습니까?


어떤 여행이든 그저 당신이 고단하지 않길.


언젠가는 이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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