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이 뜨거운 건…
연말, 연초가 되면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달력에 가족 생일을 표시하는 것이다. 내 생일을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크게 동그라미와 별표를 해 가면서 표시한다. 난 양력 2월 8일, 오빤 음력 4월 28일, 언닌 음력 6월 1일, 아빤 음력 9월 17일, 엄만 음력 11월 8일. 다 적었다!! 나만 양력이라 큰 숫자에 표시를 하고, 나머지 가족의 생일은 작은 숫자를 찾아가면서 표시를 한다. 모든 음력이 다 표시돼 있는 게 아니어서 날짜를 세어가면서 표시하는 내 노력을 다른 가족은 알랑가 모르겠다.
생일이 온다고 해서 특별할 게 뭐가 있겠는가. 새해에 대한 설렘이 조금 잦아들 쯤이 내 생일이다. 늘 겨울 방학 때가 생일이라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아본 기억도 없다. 그나마 나의 생일을 기억해 주는 건 가족뿐. 작은 선물을 주는 사람도 없이 미역국에 좋아하는 반찬 올라오면 그걸로 생일 축하는 끝이었다. 먹고 싶은 이쁜 케이크도 없다. 나이만큼 초를 꽂고 ”생일 축하합니다 “ 노래도 부르고 소원을 빈 후에 후~~~~~ 하고 촛불을 끄고 싶지만 그건 언감생심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 그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한 걸 사서 뭐 하냐? ”
퉁박을 주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치!! 아빤 뭘 몰라!!!‘ 말은 속으로 삼키지만 입은 댓 발 나왔다. 그리고 얼굴은 불만이 가득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빤 상을 물리고 담배를 뻐끔뻐끔 필뿐이다. 담배 끊고 그 돈으로 케이크 좀 사 주지…
흥! 칫! 뿡! 아빠 미워!!!
“엄마, 왜 나만 생일이 양력이야?”
“네 음력 생일이 1월 2일 이잖어.”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내 생일이 음력 1월 2일이면 1월 2일이지, 나만 굳이. 혼자. 외롭게. 꼭. 주워온 아이마냥 양력으로 할 것은 뭐란 말인가! 작은 글씨 안 찾아도 되고 매년 생일이 같은 날이니 그건 편하네. 그게 내 생일에 대한 진실을 알고 난 후 내 생각이었다. 아주 심플하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설 명절을 보내기 위해 시가와 친정을 번갈아 방문한다. 양가 부모님에게 궁금한 것은 ’애네들이 언제 올까?’이다. 명절 전 날인가, 당일 날인가, 그다음 날인가… 내가 보기엔 그냥 그날이 그날 같은데 부모님께는 뭔가 다른가보다.
어떤 해는 친정을 먼저 가기도 하고, 시가를 먼저 가기도 한다. 차례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전을 하루 종일 부치거나 하는 집이 아니니 부담이 없다. 그러니 그저 가뿐한 마음으로 방문하면 그만이다.
몇 해 전 설 연휴의 일이다. 명절 음식으로 속은 니글니글하고 더부룩하다. 기름 칠갑을 한 명절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갓 지은 밥에 김치 하나만 척 얹어서 먹고 싶은 날이었다. 예전에야 먹고살기 힘들고 음식이 귀해서 명절 아니면 먹기 힘든 음식이 태반이었으나 이제는 그 귀한 음식이 흔해지기 시작했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갈비찜, 잡채, 전, 튀김… 너무 먹어 탈인 시대이다. 그러니 산해진미 앞에서도 심드렁할 수밖에 없다. 부족해야 귀해지는 법이니까. 설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내 앞에 생일상이 차려져 있었다.
‘미역국? 설 명절에 미역구욱???’
이건 뭔가 좀 생뚱맞다.
“엄마, 웬 미역국이에요?”
“오늘이 네 ‘진짜’ 생일이잖아!”
아……………
그 순간 생일의 비밀이 밝혀졌다. 왜 나만 양력이었는지…… 없는 살림이라 누구 생일이라고 해도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준 적 없던 엄마였다. 미역국이 올라오면 누구 생일인가 보다.. 했던 게 다였던 시절.
명절이라고 뭐 달랐을까 싶지만, 명절에 묻혀 막내딸 미역국도 못 끓여주는 엄마이고 싶지는 않았던 마음.
갖고 싶어 하는 선물은 못 사주고 비록 케이크도 없는 생일상이지만 미역국은 꼭 먹이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오늘이 네 진짜 생일이잖아.’ 그 말씀에 담긴 엄마의 진심. 그동안 진짜 생일 못 챙겨줘서 미안해하는 마음까지 미역국 한 그릇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갖가지 나물, 겉절이, 잡채에 미역국까지. 케이크는 없지만 없어도 되는 상이었다.
이젠 하도 먹어 물리고 살만 찌는 케이크니 없는 게 더 고맙기도 한.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시어머니도 어느 해 음력 1월 2일에 며느리 생일상을 차려주셨다.
“생일 축하한다, 혜진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오랜 시간 생각했었다. 이런 집구석에 태어난 내 삶을, 생을 저주했었다. 어린 눈과 마음으로는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하는 게 많은 삶이었다. 남의 마음 따위 내 안중에는 없었다. 나만 아프고 나만 힘들고 나만 괴롭다고 생각했으니까.
진짜 생일을 챙겨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미역국과 실수 많고 욱하는 며느리를 환대해 주시는 시부모님의 마음까지 알던 날은 내가 이렇게 사랑을 받아도 되나 싶어 어리둥절했다.
난 생각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구나 느꼈다.
낳으려고 해서 낳은 아이가 아니라던, 스치듯 들었던 말 한마디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살았던 한 소녀는 마흔 중반 중년이 돼서야 엄마의 진심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엄마, 할머니가 엄마만 생일 양력으로 해 주셨다고 했잖아요. 엄마 설날에 미역국 못 먹을까 봐. 그 얘기 다시 해 주세요.”
생일 주간이 되면 몇 번이고 이 얘기를 해 달라고 하는 아들. 듣고 또 들어도 재밌고 감동적인가 보다.
올 해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더니 “할머니,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까지 한다.
야.. 너 내가 낳았지만 너무 감동인데..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혼자 슬퍼하던 아이는 이제 그 사랑을 느끼며 산다. 아니 느껴지지 않아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사랑이 지금 나를 살아가게 하는 기본값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산다.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내게 설날 밥상에 올라온 미역국은 단순한 미역국이 아닌 사랑 그 자체였다. 김이 폴폴 나는 미역국이 뜨거운 건 단지 펄펄 끓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막내딸을 향한 애끓는 마음이 담긴 미역국 한 그릇. 그 뜨거운 마음이 오늘도 내 삶에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