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성장통
각자가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밤 열 시. 배경 음악처럼 낮고 조용하게 드르렁거리는 신랑의 코 고는 소리가 안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들의 방에서는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연필소리가 들린다. 사각사각. 멈췄다, 썼다, 풀었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소리를 들으며 난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제를 다 풀었는지 아이가 방에서 나와 내 옆에 조심스럽게 앉는다. 얼굴에 뭔가 편치 않은 기운이 흐른다. 수학 숙제가 힘들었던 걸까?
“문제 다 풀었어?”
“네.”
“이제 이 닦고 가서 자야지. “
”네. 엄마, 나 학교가 너무 힘들어요. “
학교가 너무 힘들다는 말을 이전에도 들은 적이 있기에 속으로 ‘이 녀석 또 공부하기 싫군’하며 아이의 마음을 단정 짓고 있었다.
”어떤 게 우리 시우 마음을 힘들게 할까? “
”친구요. “
‘어? 친구?’
이건 내 답안지에 없던 답변이었다. 치인구?
펼쳐져 있던 책을 덮고 아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친구들하고 무슨 일 있었어? “
아이가 말을 고르는 모습이 보인다. 생각이 많은 것 같은 얼굴이다. 얼굴 근육과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이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중학교 2학년 반편성이 발표되던 날 1학년 단짝 친구와 모두 흩어졌다며 2학년 생활은 망했다고 볼멘소리를 내던 게 기억이 났다.
‘단짝 친구가 없어서인가? 아닌데. 얼마 전에 마음 맞는 친구 사귀었다며 좋아했는데…’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엄마, 내가 만만해 보여요? 내가 호구로 보여요?
내가 말라서 우스워보이나? “
아이 입에서는 자조 섞인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발생하는 힘겨루기가 시작된 모양이다. 170cm에 몸무게 45kg을 갖고 있는 아들은 또래에 비해 많이 말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배웠던 태권도와 수영 이외에는 운동을 배워 본 적도 없고 운동을 즐겨하지도 않는다.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 쇼맨십도 있어서 1학년 때는 학교 행사 때마다 사회를 볼 정도로 주목받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그런 아이를 우습게 보는 몇몇 아이들이 생긴 것 같았다. 아이가 하는 말을 비웃고 그게 재밌냐며 욕설을 내뱉는 아이도 있다고 했다.
통합 수업 시간에는 친구랑 앉고 싶다며 이미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아이에게 명령조로 비키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다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께 말씀드렸어?”
“이야기하면 뭐해요. 사과하고 친하게 지내라고 할 게 뻔한데….”
“언제부터 그랬어?”
“한 달 정도 됐어요.”
아이는 불안해 보였다. 자기는 혼자라 혹시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보복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이의 말을 듣는데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심장이 두근두근 손은 바들바들 떨린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엄마마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저 차분하고 조곤조곤 아이의 마음과 학교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한참을 안아주었다. 아이는 안긴 상태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누가 이렇게 이쁜 내 새끼를…”
겨우 달래고 방으로 들여보냈지만 아이는 자정이 다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뒤척이는 소리, 낮게 내 쉬는 한숨소리가 내 마음을 계속 때리고 있었다.
평상시와 똑같은 아침이 찾아왔지만 마음은 바로 어제 아침과는 180도 달랐다. ‘학교를 보내, 말아?’ 사이에서 계속 갈등을 하고 있는 나. 당장 학교로 찾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보태져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학교 갈 준비를 마친 아이는 소파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양손에 양말 한 짝씩을 들고… 생각해 보니 이런 모습을 본 게 오늘만이 아니었다. 학교 가기 싫어 늑장을 부린다고만 생각했더랬다. 왜 이리 꾸물대냐며 지각하겠다고 조용히 나무라던 내 모습이 눈물과 함께 겹쳐 보였다. 조용히 아이 발 밑에 앉아 양말을 신겨줬다.
”오늘도 통합 수업 있는 날이야? “
”네. “
”많이 불안해? “
”네. “
.
.
.
.
.
”학교 갔는데 마음이 너무 힘들면, 마음이 너무 불안하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조퇴하고 와도 돼. “
”조…퇴.. 해도 돼… 요? “
”그럼. 불안한 맘을 어떻게 견뎌. 그건 견딜 수 있는 마음이 아니야. 불안한 마음은 안전한 곳으로 와서 쉬고 달래줘야 하는 마음이야.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하면 엄마가 이야기할게. 학교보다 네가 먼저야. 알았지? “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억지로 활짝 웃으며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언제 전화가 올까 싶어 마음이 불안했다. 괜히 보냈나 와 괜찮을 거야 사이에서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의자에 앉아있지만 엉덩이가 5cm는 붕 떠있는 느낌이다. 하루가 너무 길 거 같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표정이 밝지가 않다. 간식을 먹으며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조용히 물어본다.
“오늘도 또 비키라고 명령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싫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어제처럼 욕은 안 하더라고요. 그냥 걔는 자기 자리로 갔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왜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던지… ‘네가 조금은 단단해졌구나. 맞설 용기가 생겼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짠하면서도 대견했다. 한편으로는 상대방 아이도 아직은 어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지. 너희들도 자라느라 마음이 몸이 힘들겠구나 ‘ 하는 마음도 함께…
그 후로 20여 일이 지났다. 진했던 불안의 농도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는 거 같다. 한숨을 쉬는 횟수도 줄었고, 통합수업이 있는 날도 밝은 표정으로 학교에 간다. 웃는 낯으로 학교를 가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던 내 마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내가 평범하다 생각하는 하루란 시간도 결코 평범하지 않고 기적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 온다. 아이와 함께 나도 자란다.
아이가 단단해지는 동안 나도 단단해지고 있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시간, 서로의 하루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귀하고도 귀하다.
아이 나이가 부모 나이이기도 하다. 아이가 크느라 겪는 부침을 같이 겪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두 번째 겪는 사춘기는 유연하게 여유 있게 보낼 거라 생각했으나 외려 더 힘들다. 해 줄 수 있는 게 생각보다 없어서이다. 마냥 어린아이가 아니니 무턱대고 나설 수만은 없다. 지켜보기와 나서기의 균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부모의 지혜와 인내가 필요한 시간이다. 내게 부족한 것이 지혜와 인내이거늘… 부침을 겪었던 마음을 딛고 한 뼘 더 자란 아이를 본다. 그 아이와 함께 나도 자란다. 그 시간 동안 지혜와 인내의 스킬이 늘어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