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의 꽃말은?

엄마의 사랑? 뒤늦은 깨달음?

by 헤세드

“혜진아, 마늘 가져갈래?”


늘 무언가를 주고 싶어 리스트업까지 해 놓으시는 어머니는 리스트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하시더니 물어보신다.

간 마늘을 꽁꽁 얼려 주신 것만 받다가 생마늘을, 그것도 껍질도 안 깐 마늘을 가져가라고 하셔서 조금 망설이다 “네, 주세요.”하고 갖고 왔다.


갖고 오긴 왔지만 바로 마늘을 까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일단 다용도실에 있는 채소 바구니에 넣었다. 언젠가의 혜진이가 깔 것이니 그때를 기다리자는 심정으로. 며칠 안으로 마늘을 정리할 것 같았지만 며칠 안은 자꾸만 늘어나고 있었다. 하루이틀은 어림도 없었다. 늦어도 일주일 안으로 정리할 줄 알았건만 귀차니즘이 엿가락마냥 쭉쭉 늘어나고 있었다.



마늘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세탁기, 건조기를 돌리고, 눈이라도 마주칠라치면 급히 눈을 돌렸다. 마치 빚쟁이를 길거리에서 만난 것처럼 눈을 피하고 급히 다용도실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왜 하필 그날은 다용도 실에서 말라가고 있는 마늘이 눈에 들어오던지.


“날 정말 이대로 둘 심산이야?” 하며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하는 마늘과 눈이 딱 마주쳤다.

“날 이대로 두면 그냥 말라비틀어질 테야!!!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들면 먹을 것도 없을 걸!!” 하며 내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듯했다. 미안한 마음에 마늘이 들어있는 채소 바구니를 바라보았더니….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서 작아진 초라한 모습의 마늘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허리가 90도로 굽어진 할머니의 등처럼 보였다. 그나마 공기가 통하는 바구니에 넣어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벌써 썩었을 마늘. 미안해 마늘아….



커다란 양푼에 마늘과 물을 넣었다. 물에 불리면 마늘 까기가 수월하니까. 마늘이 촉촉해지길 기다리면서 저녁 준비를 한다. 나물을 다듬고 밥도 안친다. 시간 절약은 필수니까! 물속에서 유유히 수영을 하던 마늘은 이제 제법 부드러워졌다. 노기가 풀린 것도 같구먼!

마늘을 까니 알싸한 마늘 향이 나기 시작한다. 마늘에서 나오는 끈끈한 마늘 진액이 손가락에 묻어 마늘 껍질이 달라붙길 시작한다. 잠깐 몇 개 깠을 뿐인데 손끝에는 마늘 향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진한 마늘 향은 멱살 잡고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간다.



송파구 삼전동. 내가 일곱 살 봄까지 살던 동네였다. 한 지붕 세 가족이 살던 그 자그마한 셋방. 공동 수돗가, 공동 변소, 공동 장독대 등이 나란히 있던 곳. 엄만 그곳에서 별의별 부업을 하셨다. 그중 마늘 까기 부업을 하신 것만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방 한가운데 빨간 대야에 마늘 몇 접이 물에 둥둥 떠있었다. 맨 손으로 마늘을 몇 접씩 까던 엄마의 손끝은 늘 아릿한 마늘향이 배어있었다. 손이 쓰리고 아프다고 했던 엄마의 소리가 가끔 들려오는 듯도 하지만 어린 나이였던 나는 엄마의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마늘 까는 행위가, 물에서 마늘을 꺼내 하나하나 까는 모습이 재밌어 보였을 뿐이다. 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엄마 극구 말리셨다.


‘이걸 네가 왜 해. 굳이 이걸 왜. 넌 그냥 편하게 살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나는 잠깐 몇십 알을 깠을 뿐인데도 며칠 동안 손가락 끝에서 마늘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몇 접을 깠던 엄마는 어땠을까. 손에서 나는 냄새를 맡다가 아이 코에도 대 준다. “엄마 손에서 무슨 냄새나게?”

퇴근하고 들어오는 신랑을 보자마자 신발을 벗지도 않은 신랑의 코에 손가락을 들이민다.

“여보, 나 마늘 깠더니 손가락에 마늘 냄새가 뱄오. “

엄마에게 이르듯, 또는 자랑하듯 그렇게 마늘 깐 소식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랬오?” 하며 웃는 내 남자. 당신은 알까? 마늘에 담긴 그렁그렁한 사연을?



손가락 끝에 냄새가 배고 진액 때문에 손이 아리도록 마늘을 까서 받은 돈으로 엄마는 무얼 하셨나. 나라면 무엇을 했을까? 부업을 했으니 커피 한 잔 마실까? 돈을 모으고 모아 읽고 싶던 책을 샀을까, 신고 싶던 신발을 샀을까. 내 엄마는…… 자식들 입에 밥을 넣어주고, 몸에 옷을 입혀주셨다. 쪼개고 쪼갠 돈으로 전집도 넣어주셨다. ‘나는 못 먹지만 너희는 먹어. 너희는 책도 읽고 공부도 해서 가난하게 살지 마.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미안하다. 부모 잘못 만나 너네가 너무 고생이 많아.’ 엄만 속으로 그렇게 되뇌지 않으셨을까? 그렇게 난 컸다. 가난하지만 따뜻하게.



어릴 때는 가난이 싫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 그만그만하게 사는 환경이어서 그랬을지도. 조금 불편하고 갖고 싶은 걸 가질 수 없고 먹고 싶을 걸 맘대로 먹을 수 없어 속상하긴 했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기에 괜찮았었나 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 우리‘가 그걸 다 같이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지. 나만이 겪는다 생각하면 화가 나고 분노가 치솟았을 테지만 같이 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화도 분노도 줄어들기 마련이니까. 그땐 라면 한 그릇에도, 밥에 김, 김치뿐인 밥상만으로도 좋았다. 가족이랑 같이 먹는 따순 밥이니까.



엄마는 가난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부딪치셨다. 그랬기에 자식인 나는, 셋째 딸인 나는 정면으로 마주할 일은 그다지 없었을 것이다. 엄마가 100이란 강도로 맞았다면 나는 20 정도로 맞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 시절을 ’ 좋았다 ‘고 추억한다. 그 정도 강도의 펀치라면 지금도 맞을 수 있겠다고도 생각해 본다. 특별한 게 필요하지 않은 나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배만 곯지 않으면 됐던 시절. 갖고 싶은 장난감은 가질 수 없었고, 늘 남이 버린 팔, 다리가 없는 로봇 장난감을 갖고 놀았지만 그래도 좋았던 시절이었다.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 가끔 그렇게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상황들을 마주한다. 오늘처럼 마늘을 까다가 통닭을 먹다가 과자를 먹다가…….



문득 마늘에도 꽃말처럼 의미를 붙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애틋하고 소중히 여기려는 마음을 담고 싶어졌다.

물망초는 나를 잊지 말아요, 미나리아재비 (버터컵)는 천진난만이라는 의미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마늘은….. 엄마의 사랑? 뒤늦은 깨달음은 어떨까. 마늘을 까고 갈아 냉동실에 넣으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자식을 먹이기 위해 지금도 마늘을 사다 직접 까고 간 마늘을 만들어 꽁꽁 얼렸다가 주는 양가 어머니의 사랑을. 그러니 엄마의 사랑이 맞을 테다. 엄마의 사랑이 안 들어간 것이 어디 있겠냐만. 그걸 중년의 나이에 깨달았으니 뒤늦은 깨달음도 맞는 것 같고.


삶은 그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이 없다. 마늘 한 알에도 사랑과 정성이 깃든다. 내 호흡 하나에도 생명을 주신 분들의 노고가 스며있다. 그것을 볼 수만 있다면 느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감사다. 오늘은 마늘이 귀한 깨달음을 준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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