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사랑을 한다
“여보 언제 월차 좀 내봐!” “월차?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당신이랑 데이트하고 싶어서…” “오케이 콜!!!” 너무 뜬금없이 월차를 내라는 소리에 눈 똥그랗게 뜨던 남편은 병원 투어를 해야 하는 7월 1일로 월차를 내겠다고 했다. 게다가 그날은 아이가 등교하는 날이니 데이트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그런데 전날부터 갑자기 열이 올라 컨디션이 바닥을 친 남편.. 힝… ‘데이트하고 싶은데..’와 ‘병원만 다녀와서 쉬라고 하자’ 사이에서 난 길을 잃었다. 밤 새 컨디션이 괜찮아지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아이가 학교를 가고 우리 둘은 오랜만에 느긋한 아침을 먹었다. 어제보다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고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고 데이트하러 가자며 씩 웃는다. 7월의 시작인데 너무 덥다. 한낮의 태양은 살갗을 다 태울 것 같은 맹렬한 기세로 내리쬐고 있었다. 어서 카페로 이동을 해서 카페인 샤워를 하고 싶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스피드!! 그리고 아이스아메리카노!! 남편과 차를 타고 파주로 이동을 한다. 평일 대낮이라 그런지 도로도 한산하다. 볼 빨간 사춘기의 노래를 틀고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내 맘도 얼굴도 빨갛게 변한다. 마음이 일렁일렁~ 운전에 집중한 남편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급 장난을 치고 싶어 진다. “오빠앙~~~~” (일단 이렇게 말을 하려면 혀 3cm는 삼켜야 한다.) 갑자기 남편이 긴장을 한다. “응… 왜에…??” “왜 오빠라고 부르는 거 싫어?” “아니.. 좋아.. 근데 이상해” “뭐가 이상해. 연애할 때 맨날 오빠라고 불렀는데~” “그때도 이상했어.” “어떻게 이상한데? 싫은 느낌이야?” “아니, 온몸이 막 간질간질해~” 이젠 혀를 5cm 정도 삼킨다. “오빠~ 오빠~ 오빠~~” 때마침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다. “우리 뽀뽀할까?” 구불구불한 국도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너무도 생뚱맞게 카페가 있다.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이런 곳에 위치해 있다니 신기했다. 주말마다 사람으로 미어터진다고 하는데 정말 여기까지 오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물론 나도^^ 평일이니 역시 카페도 한산하다. 맛있는 빵과 시급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자리를 잡는다. 예쁜 카페 배경 삼아 찍으려던 책 네 권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일단 커피부터 마신다. 바로 이 맛이다. 식도를 타고 위까지 재빠르게 내려가는 이 시원하고 짜릿한 느낌!! 텀을 주지 않고 연타로 입 안으로 들어오는 꾸덕하고 달콤 쌉싸름한 브라우니까지.. 완벽한 조합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커피를 마시다 남편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게 남편은 늘 물어본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오늘은 기분이다 찍혀주자!! “여기 와서 앉아봐! 그리고 나를 봐. 잠시만!!” 그렇게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 걸어가는 모습, 커피 마시는 모습.. 사람 없는 카페를 놀이터 삼아 사진을 찍고 또 찍으며 놀다 야외로 나갔다. 한낮의 태양은 뜨겁지만 사진을 찍는 우리의 열정도 만만치 않았다. “여보, 나 찍고 싶은 사진이 있는데.. 타이머 설정하고 이리 와봐!!” 무슨 사진을 찍는 줄 모르는 남편은 타이머를 설정하고 온다. 어떻게 포즈를 취하면 되냐고 물어본다. 뽀뽀해!! 그렇게 남긴 뽀뽀샷!! 뽀뽀샷을 마지막으로 사진 놀이는 끝났다. 그리고 카페 데이트도. 조금 있으면 하교를 할 아이를 맞으러 가야 한다. 그리고 또 오후에 있을 병원투어도 준비해야 한다. 초기 감기 기운이 있는 남편을 쉬게 할 타이밍이다. 약 한 시간을 운전해서 집에 도착. 그렇게 우리의 데이트는 끝났다.
사랑은 사람마다 다른 모양으로 생겼다. 그리고 그 모양대로 사랑을 한다. 데이트를 하고 싶은 마음도 데이트에 응하는 마음도, 컨디션이 안 좋지만 가고자 하는 곳에 같이 가 주는 마음도, 쑥스럽지만 찍자고 하는 대로 사진을 찍는 것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남편에게 쉼을 주는 것도, 다 쉬고 나와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도, 오늘은 날도 더운데 밥 하지 말고 시켜 먹자고 해 주는 배려도, 그리고 수고했다며 머리를 쓰담쓰담해주는 행동도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처음 연애를 시작하던 2006년의 6월처럼 그렇게 뜨겁게 평생을 연애하듯 살고 싶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뜨겁게”였다.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이 일상으로 들어가는 순간, 촛불이 사그라들 듯 우리의 사랑이 꺼져간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 일상을 그 권태를 난 견디기가 힘들었다. 잠깐이라도 보고 싶어 먼 길을 달려왔던 그 사람은 사라지고 어느새 생활인으로의 남자만이 남은 내 삶은 쓸쓸하기만 했다. ‘돈 버느라 힘든 건 아는데 나 좀 봐주면 안 돼?’ 철없는 투정을 부리고 또 부렸다. 어떤 일을 계기로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쑥스러워하지 못했던 말들, 바빠서 힘들어서 일에 치여서 타이밍을 놓쳤던 모든 말들까지.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우리가 사는 일상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안다. 조금은 권태로울 수 있지만 그 권태마저 끌어안는 게 사랑이란 것도… 또다시 그 권태로움을 견디기 힘든 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럼 난 다시 이 시간을 돌려볼 것이다. 그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날 사랑했던 것도. 그리고 그날 밤 그 사람이 해 준 말도.. “널 처음 만난 15년 전 그날, 첫눈에 반했어. 그날처럼 넌 늘 예뻐. 나한테 지금도 넌 늘 예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