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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ug 02. 2020

그들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

조직 내 성희롱, 성차별에 대응하는 자세

얼마 전 존경하던 여자 선배가 퇴사했다.


남초 대기업에서 우수한 여자 엔지니어로 인정받으며 같은 여자가 봐도 존경스러운 선배였는데 갑작스러운 퇴사 소식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다. 여자 엔지니어가 귀한 곳인 데다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아주 드물기에 개인적인 충격은 더 컸다.


비가 오던 평일 저녁 어렵게 만난 선배로부터  듣게 된 퇴사 원인과 과정은 기가 막혔다. 일대일 면담 자리부터 시작된 어느 부장의 성희롱, 성차별 언행은 점점 수위가 더해지고 과감해져 부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도 자행되었는데 심지어 그 부서의 부서장이 있는 자리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성차별성 발언을 해도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업무적인 지적이면 개선안을 내거나 다른 부서원들과 논의가 가능한데, 이렇게 인격 자체에 대한 희롱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상처를 남긴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말도 안 되는 언행에 시달리고서 사내 상담센터와 전문의가 상주하는 병원의 상담을 한 후에야 이 사안은 앞으로 비슷한 일을 겪을 수도 있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인사처리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았고, 부서 내에서 자행되는 그런 언행을 담당 임원에게 알렸을 때 그 임원의 반응은 오히려 가해 부장을 두둔하며 마치 대변인인 것처럼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고졸에, 살아오면서 고학력 여성을 자주 접해보지 않은 그 나이대의 남성들은 그런 발언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부서 내 인사처리 담당자의 미숙한 일처리로 그 가해 부장이 선배를 따로 불러내 독대까지 하며 본인의 그동안 회사 생활에 오점이 남을 수 있으니 윗선에게만은 알리지 말아 달라며 반 협박성 부탁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러고 얼마 후 선배는 휴가 중 갑자기 해외법인 파견이 결정되었고(정확히는 휴가지에서 출장을 통보 받음), 가해 부장은 아무런 인사조치 없이 계속 근무를 했다. 당시는 미투 운동 발생 전인 데다, 해당 임원은 이슈가 커지면 본인의 다음 인사에 지장이 있을 것 같으니 덮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임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 법인으로 발령이 났고 그 법인에서 또 조직 내 문제 (무능력한 주재원과 그것을 악용한 출장자들)가 발생하자 이번엔 오히려 문제점을 알린 사람에게 협박까지 하며 그 내용을 덮었다고 한다. "나도 그 문제점 알고 있어, 그런데 관리자들은 보통 알고 있는 문제라도 이렇게 밑에서 이슈를 제기하면 좋아하지 않지. 그게 현실이야. 그리고 이러면 너는 앞으로 좋을 줄 알아? 너도 이제 끝이야. 앞으로 밝진 않아"


최대한 부서 내에서 처리를 하려 했지만, 두 번씩이나 같은 관리자의 무책임한 행동을 보고 그 선배는 그동안의 면담 기록 및 녹음파일 자료를 가지고 인사과를 찾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민감해야 할 인사과 담당 직원마저도 건성으로 일처리 하며 지금이 임원인사이동 기간인데 이런 시기엔 조심해야 한다느니 하며 제대로 된 보고나 조사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선배에게 부서이동을 권유했다고 한다. 퇴사할 각오까지 하며 신고한 것인데 이런 인사과의 태도에 오히려 답답함과 회사에 대한 실망감만 커졌다고 했다. 게다가 무책임한 그 인사과 직원이 마지막에 덧붙인 말은 "이 임원은 어차피 올해가 끝일 것 같으니 안심하세요. 지금 집이 OO 동네라고 하셨죠? 와~ 부자시네. 나가시면 의전원가시게요? 아, 저희가 이런 분들은 경쟁사로 가는지 아닌지 조사도 해야 해서..ㅎㅎ" 하며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고 한다.


이런 일까지 겪고는 진절머리가 나서 더 이상 회사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 가해 부장과 승진에 눈먼 담당 임원도 심각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화가 나는 건 이런 언행들이 자행되는 것을 옆에서 버젓이 보고 들었지만 모른척하던 남자 동료들이었다고 했다. 듣던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몇 번이고 일어서다를 반복했는데, 그런 일을 다 겪고도 주위에 내색하지 않은 선배가 더 대단해 보였다. 혼자 그 상황을 오롯이 견디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심지어 올해가 끝일 거라던 그 임원은 그 선배가 퇴사한 이듬해 전무로 승진하며 해당 법인장까지 맡으며 여전히 근무 중이다.


해가 갈수록 정상인 사람들은 없어지고, 비정상인 사람들만 회사에 남아서 좀비처럼 버티는 느낌이라 소름이 돋는 요즘이다. 그러면서 선배가 추가로 덧붙여 준 말은 매달 인사과에서 내려오는 성희롱 관련 교육보다 더 도움이 됐다.


. 성희롱, 성차별 발언은 꼭 증거나 증인을 남겨라. (시간과 장소 등 구체적 기록, 녹음, 메신저 캡처 등)

. 부서 내 윗 선에 보고하지 말고, 인사과 성희롱 담당 직원에 알려라.

. 만약 인사과도 믿지 못할 경우, 고용노동부 신고센터를 이용하라.

. 가족 외 회사의 그 누구도 믿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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