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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 새 Aug 12. 2021

그래, 아들에겐 튜브와 조끼가 있어!

제주 단상 2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독립적이고 씩씩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그나마 나를 좀 아는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고, 나와 제일 가까운 남편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생활을 하며 지냈고 입시와 취직, 결혼의 과정에서 누구와 깊이 상의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며 살아왔으니 그렇게 보일만도 하다. 겁 많은 내가 독립적이고 씩씩하게 살아오느라 참 고생한 것 같다.          


사실 나는 겁이 참 많은 사람이다. 무서워하는 게 참 많은데 아닌척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아닌 척하며 살아와야만 했다. 나는 특히 물이 참 무섭다. 물에 빠질 까봐 너무 무섭다. 내가 물을 무서워하니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모든 순간에 내가 지나치게 긴장을 하고 불안해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주 여행 처음으로 물놀이를 하던 날이다. 금능 해수욕장에 도착해 나와 남편은 돗자리를 깔고 튜브 바람 넣기 등 물놀이 준비를 시작했다. 8살 아들은 도착하자마자 그냥 물속으로 직진했다. 수영복을 입고 있었고, 본인 튜브는 바람이 들어가 있었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거침없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바다가 에메랄드빛이라고 해서 일부러 찾아간 바다였지만, 바다 색깔 따위는 보이지 않고, 또또이의 혼자 바다로 뛰어가다가 물에 빠질까봐 너무 걱정이 되었다. 또또에게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앞으로 계속 나가기만 했다. 나는 또또가 무슨 죽을 위험에 처한 것 같은 위험을 느꼈다. 겨우 물을 가르며 뛰어가서 또또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마구 혼냈다. 여기가 어딘데 그렇게 혼자 멀리 가냐고!!! 그리고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바다 깊이를 보니, 어이가 없었다. 밀물 때라 물이 다 빠지고 내 무릎까지 겨우 물이 차있는 정도였다. 위험하기는커녕, 놀기에 시시한 물 높이였다. 또또이가 마구 뛰어갈 만도 했다. 또또가 물에 어느 정도 잠기는 지를 보면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평소 물을 너무 무서워하니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 어이가 없고 아들에게 부끄러웠다.     



이틀 뒤에는 함덕 해수욕장으로 출동했다. 또또는 그날따라 더 신이 난 아빠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넘지 말라고 경계선을 쳐 놓은 곳 바로 앞까지 아빠와 함께 튜브를 타고 갔다. 아빠도 그런 곳을 좋아하는 걸 보니, 아들은 아빠를 닮은 것 같다. 아빠가 해변에서 쉴 때도 8살 아들은 혼자 거기까지 가서 놀았다. 물은 아들의 겨드랑이까지 오는 정도였고, 아들은 구명조끼를 하고 튜브도 타고 있긴 했다. 그래도 나는 불안했다. 혹시나 물놀이를 하다가 뒤집어져서 허덕일까봐.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물의 두려워하는 나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처음 발령받았던 학교에서 교사 연수 갔을 때다. 래프팅을 하려고 보트를 타고 있는데 나와 전혀 친하지도 않는 아저씨 선생님이 나를 밀어서 물에 빠졌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서 물에 뜨긴 했지만 너~무 무서워서 사색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소리도 엄청 질렀다. 다른 선생님이 도와줘서 금방 보트 위에 올라오긴 했지만, 정말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때 수영을 배울 때도 나는 물을 참 무서워했다. 물에 빠질까봐 걱정하니 몸이 경직되어 몸에서 힘을 빼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물도 참 많이 먹었고, 그래서 물을 또 싫어하는 악순환이었다. 물안경을 끼고도 물속에서 눈을 뜨지 못했다. 물속에서 눈을 뜨지 못하고 첨벙거리다가 놀라서 누군가의 수영복을 잡아당긴 기억도 있다. 팬티를 벗길 뻔해서 미안하고 당황스러웠다.      



튜브 타고 노는 아들 옆에 가만히 서서 물을 무서워하는 나를 느끼고 있을 때, 아들이 나와 물놀이를 하자며 더 깊은 곳으로 가려했다. 내가 무섭기도 했지만 아들이 걱정되었다. (아니, 내가 무서워서 아들이 걱정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또또, 너무 깊은 곳까지 가면 엄마는 네가 빠질까봐 걱정이 돼. "     



또또가 말했다.

 "튜브를 꼭 잡으면 되지."     



"그래도 엄마는 걱정이 돼."  

   

"구명조끼도 있자나."     




아,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갑자기 뭔가 띵~ 했다.     



내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혀

아들이 충분히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깊이인데도

못 가게 막고 있는 것처럼

일상에서도 내 불안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가려는 아들을 뒤에서 잡아당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래, 아들의 말처럼

아들에겐 아들의 튜브가 있고 구명조끼가 있다.    


      

아들아, 너의 인생에는

걱정 많은 엄마도 있지만

네가 가지고 있는 튜브와 구명조끼도 있지.


엄마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너는 이미 너가 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구나.

엄마만 알아주면 되는 거였는데...

    


엄마는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너는 물에 대한 무서움 따윈 없지.     

너와 나는 이렇게 다르구나.     



네가 가지고 있는 튜브와 구명조끼를 믿고

너의 인생을 살아가렴.     


엄마도 엄마 인생에 비추어

너를 걱정하는 것을 멈추기 위해 노력할거야.     


엄마 걱정은 엄마의 것!

너의 인생은 너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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