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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진한 브라우니 Jun 27. 2024

투명인간(성석제)

책 이야기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마포대교의 정경들.. 자살을 막으려는 여러 글귀나 조형물들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데 등장인물을 파악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각자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으레 생각하는 1인칭,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 등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화자가 바뀌면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이번엔 누가 이야기를 하는 건지 파악하느라 읽었던 페이지로 다시

돌아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읽다 보니 어느새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형식의 미덕이라면 누가 대신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직접 말함으로써

여러 입을 통해 전달되어 생기는 오해, 오독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게 전부 진실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생각을, 느낀 바를 직접 말하는 것이니... 아무리 대신 이야기를 해주는

능력이 뛰어난 이가 이야기를 해도 최소 2%는 그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을 하고 싶어서 근질거릴지도

모르는데 일단 그런 문제는 접어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김만수'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소설 제목처럼 한 치 오차도 없는

투명인간이란 말인가?


만수의 할아버지는 고학력의 지식인이었는데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집안의 많은 재산을 빼앗기고

어머니와 아내, 아들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다. 그래서 정착한 곳이 화전민들이 모여 사는 개운리였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흔한 양반의 삶에서 농사를 짓고 근근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게 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충현은 이런 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가 이러지만 않았다면 편하게

살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한가득이다.

그는 아버지와 달리 천상 농사꾼의 기질을 타고났다. 공부만 하던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타고난 성정으로 농부로서 제법 잘 살아간다. 화전민의 딸과 결혼하여 6남매를 둔다.

장남 백수를 비롯하여 금희, 명희, 만수, 석수, 옥희를 낳았다.


백수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마음이 너그럽고 공부도 잘하는 장남의 표본 같았달까?

개운리 두메산골에서도 학업에 두각을 나타내어 중학교부터 좋은 곳으로 유학을 가고..

그러다 보니 농사를 지어 근근이 살아가던 백수의 아버지는 학비를 대느라 힘겨워한다.

그렇게 대학도 서울 유수의 사립대에 합격했지만 돈 없는 가난한 농부의 자식은 학비며 하숙비를

감당하기가 힘들다. 당시엔 피를 팔아서 빵과 우유를 얻고 돈을 벌기도 했나 보다.

가뜩이나 허약한 몸을 매혈과 공사판 아르바이트로 혹사한다.


서울 공장에 취직한 친구의 편지를 받은 금희는 시골에서 답답하게 사느니 친구처럼 공장에

취직해서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공부해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갈 생각으로 상경했다.

물어물어 오빠가 하숙하는 집에 찾아갔다. 저녁이 다 되어 돌아온 백수는 금희를 반갑게 맞이하고

주인집에 양해를 얻어 자신이 먹을 저녁을 금희에게 양보한다. 그리고 씻으려고 수돗가에 가다가

그만 쓰러진다. 이후 월남전에 참전을 한다. 학비를 벌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곳에서 번 돈으로 재봉틀을 사서 부친다. 금희에게 이 재봉틀로 열심히 기술을 익히고 돈을 벌어

동생들을 서울로 데려오라고 편지를 남긴다.

월남에서 오히려 잘 먹고 지낸다고 하면서... 그러던 그는 고엽제에 자신도 모르게 중독되어

병사를 하고 만다. 집안의 대들보 장남이 전쟁터에서 전사를 한 것도 아닌, 병사를 한 그 사실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절망케 한다.


금희는 오빠가 사준 재봉틀로 열심히 기술을 익혀서 돈을 번다.

시골에서 살기엔 자식들의 앞날이 갑갑하여 할아버지의 결단으로 모두 서울로 오게 된다.

아버지와 명희, 만수, 석수, 옥희, 그리고 금희가 월세를 살고 전세를 살고.. 그렇게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다가도 아버지의 무책임함과 폭언, 폭행, 딸들에게 돈벌이를 전가시키는 행동거지로

펴졌던 형편이 쪼그라들기도 한다.

만수는 중학생이 되고... 그렇게 석수도 학교를 가고 옥희도 금희, 명희보다 학업을 더 많이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6남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게 되는데 태생부터 유난히 머리만 크고 팔다리는

가늘어서 이 아이가 제대로 살 수나 있을까? 싶었던 만수가 수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장남의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게 된다.

그는 어찌 보면 세상 낙천적이고, 어찌 보면 의뭉스럽고 또 어찌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사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표현되는

만수라는 인간은 그 자신이 스스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음에도 너무나 잘 알 수 있도록..

그렇게 책이 쓰였다.

사람의 삶이란 어찌 보면 모두 비슷비슷하다.

시대를 탈 수밖에 없다.

전쟁의 처절함으로 보수성이 짙어지고

군부 정치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부르짖고

딸 아들의 차별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시대의 상황에 꿰어 맞추어야만 살 수 있을 것처럼 살았다.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탄을 주로 떼던 시절에는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많았다.

아침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일이 동네에서도 자주 일어났다.

어느 아침, 옥희는 일어나고 싶어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간신히 만수에게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말을 했는데 그때 퍼뜩 일어난 만수는 금희와 명희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한 사람씩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치료 시설 부족으로 금희와 명희중 한 사람만 먼저 치료실로 들여보내야 했다.

안타깝게도 치료가 늦어진 명희는 그만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된다.

누구를 먼저 들여보내야 할지.. 그 갈림길에서 울부짖던 만수 옥희에게 이입되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장녀로서의 책임감으로 미싱을 돌리던 금희, 공장을 다니며 주경야독을 하리라

꿈을 꾸던 명희.. (그 희망마저 장애를 입어 이룰 수 없었다.)

막내 옥희는 만수의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고 대학생이 된다.

그리고 운동권이 된다.


넷째 석수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다소 이기적이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어부지리로 운동권에 얽혀 끌려가서 고문을 당한다. 이후 그의 이기성은 더욱 견고해진다.


주요 인물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해도 모자란 것 같다. 책을 천천히 읽으면 더 많은 것들을

접하면서 생각이 많아질 것이다.

세상에 완전한 인간이 있을까?

무두가 나름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그 안에서 서로를 애틋해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소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만수도 실제로는 존재할 것이다.

피상적인 면만 보면 모를 것들을, 이 책으로 말미암아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만수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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